병과 달리 캔은 속을 들여다 볼 수 없다.
병은 색으로 물들어 있는 경우에도
투명을 버리지 않는다.
때문에 병은 언제나 그 속이 어렴풋이 내비친다.
그래서 병은 흔들면
그 속의 일렁임과 끓어오르는 기포의 움직임을 그대로 보여준다.
병과 달리 캔은 절대로 속을 엿볼 수 없다.
캔꼭지를 따도 속이 보인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병은 속의 것을 다 마시고 나면 속이 비면서 더욱 투명해 지지만
캔은 속의 것을 다 마시고 나면 그 속에 어둠이 가득찬다.
어느 정도 속을 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그 속의 것을 마시는 사람에게
병이 안전하긴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병은 속을 비워도 자신의 무게를 어느 정도 그대로 지킨다.
그에 비하여 캔은 속을 보여주지 않는 대신
한번 속을 비우면 자기 무게를 거의 다 버린다.
무게를 버리고 난 캔은
그 속을 바람으로 채우면 바람이 될만큼 가볍다.
누가 마신 맥주일까.
그 속의 맥주를 누군가에게 털어준 뒤, 캔은 속을 비우고 버려졌다.
누가 마신 실론티일까.
요건 우리(나의 그녀와 나)가 마셨다.
그 속의 홍차를 우리에게 털어주고, 캔은 속을 비웠다.
가끔 내 안의 나를 모두 다 털어내고 싶다.
비워내고도 자기 무게를 그대로 지키는 병이 아니라
비우고 나면 캔처럼 그냥 자기 무게를 모두 다 잃을 정도로
내 안의 나를 모두 다 털어내고 싶다.
강변에 버려진 빈 맥주캔과 우리가 마시고 비운 실론티 캔이
그 속을 바람으로 채우고는
바람결이 좀 세진다 싶을 때마다
가볍게, 그리고 위험하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비워지면 가벼워지고, 그래서 자유로워지지만
그러나 위험해진다.
2 thoughts on “캔”
어쩌면 비우는 것과 채우는 것은 같은 의미일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요.
비워지지 않거나 채워지지 않아서
집안의 묵은 때나 지우고 있답니다. 에혀~
바로 그게 인생의 묘미란 거죠.
상반된 양극이 뚫려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