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 2

Photo by Kim Dong Won
서울 한강변에서

난 그대에게 버림받으면 캔이 될 거다.
그대가 내 속을 다 가져가고
무게마저 거두어가고 나면
내게 남는 것은 바람만 불어도 여기저기 마음대로 떠돌 수 있는 가벼운 몸뚱이 뿐.
그대가 나를 버리면
나는 바람이 불 때마다
소리가 요란할 듯한 콘크리트 바닥을 골라서
여기저기 굴러다닐 거다.
떨그렁 떨그렁, 떨그렁 떨그렁.
쉼없이 콘크리트 바닥을 굴러다니며
세상 모두의 귀가 따갑도록 시끄럽게 떠들어 댈거다.
누군가 시끄럽다고 걷어차면
땅에 떨어질 때쯤 더더욱 심하게 곤두박질을 치며
우당탕 궁탕 더 큰 소리로 시끄럽게 떠들거다.
나는 병처럼 무참하게 깨어져 그 자리에 주저앉지 않을 거다.
나는 그 자리에서 깨어져 아픔을 삭히고
그 아픔의 추억을 조용히 지우며 치유해 가기 보다
속이 비어 더욱 소리가 요란한 캔이 될 거다.
그리고는 소리가 울리기 좋은 콘크리트 바닥을 골라 구르며
그대 목구멍을 넘어갈 때,
시원하고 짜릿했던 내 안의 나를 세상에 말할 것이며,
그대 속에서 뜨겁게 뒤섞였던 나를 세상에 말할 것이다.
누군가는 캔이 바닥을 구를 때의 그 시끄러운 소리를
빈소리라 했지만
그대가 날 버리면, 그때부터 그건 빈소리가 아니다.
나는 이제 텅텅 빈 내 속을
그대와 나누었던 사랑의 기억으로 꽉꽉채워 세상 모두에게 떠들고 다닐 거다.
똑같은 내 운명을 만났을 때
잠시 풀밭에서 머리를 맞대고 조용히 서로의 얘기를 나누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바닥이 딱딱한 곳을 골라 시끄럽게 소리를 높일 거다.
사랑이 떠난 빈자리를
나는 결코 눈물이나 슬픔으로 채우지 않을 거다.
나는 함께 있을 때 속삭이며 목소리를 낮추었던 우리의 사랑을 기억해 두었다가
내가 버림받으면 그 사랑의 볼륨을 잔뜩 올리고
시끄럽게 떠들며 살아갈 거다.

Photo by Kim Dong Won
서울 한강변에서

4 thoughts on “캔 2

    1. 블로그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죠.
      내 맘대로 글쓰고, 그걸 발표할 공간이 있으니 가능한 거 같아요.
      좀 감각을 예민하게 세우면서 살아보고 싶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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