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주 오래 전,
용산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며
플랫폼의 의자에 앉아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내 옆엔 곁눈질로 흘낏 스쳐간 눈길에도
그 미모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던,
그러나 전혀 모르는 새파란 젊은 여자가 앉아있었다.
지하철이 들어오는 낌새를 보이자
그녀는 무엇인가를 손에 꺼내들었다.
그건 담배였다.
그녀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나는 곁눈으로 그녀가 담배를 피워물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시선을 그녀쪽으로 돌리진 못했다.
그러나 나의 온신경은 이미 그녀에게 몰려가 있었다.
그때 내가 분명하게 본 것은
바르르 떨리고 있는 그녀의 손가락이었다.
그건 미세한 떨림이어서
한걸음만 물러나도 눈치챌 수가 없는 것이었지만
바로 곁의 나는 그 떨림을 분명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나는 그녀의 손끝에 실린 완연한 긴장이
담배 한가치의 무게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담배 한가치의 무게는 지극히 가벼워
그녀가 몇시간이라도 자신의 손끝에서 감당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그 날 그녀의 손끝엔 지하철의 차창에서
일제히 그녀에게로 모인 사람들의 시선과 그 시선의 무게가 함께 얹혀 있었다.
그녀의 손끝에 실린 팽팽한 긴장과 미세한 떨림은
바로 그 시선의 무게에 대해 완강하게 저항하면서도
그 무게를 무시하지 못하는 그녀의 현실에서 오는 것이었다.
담배가 몸에 좋은 것은 못되니
그것을 적극적으로 권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날 그녀에게 모인 시선이
그녀의 건강을 걱정해서 모인 것이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그녀가 내 앞에서 담배를 피웠다.
그녀의 손은 전혀 떨리지 않았다.
용산역의 그녀는 세상 속의 그녀였지만
오늘의 그녀가 내 앞에서 담배를 피워물었을 때
나는 그녀 세상의 나였다.
그녀가 담배를 피울 때
그녀를 세상 속에 두면 그녀의 손끝이 떨리지만
내가 그녀의 세상으로 가면
그녀의 손끝은 떨리지 않는다.
그러니 만약 그녀를 사랑한다면 그녀를 세상 속에 두지 말고
그녀의 세상으로 가라.
8 thoughts on “그녀와 담배”
담배는 안피워봐서 모르겠고 술은 참 묘해요?
어느땐 아주 많이 마셔도 취하질 않는데
또 어느땐 두세잔으로도 취해서 빙빙.^^
술취하지 말라 하셨는데.^^
술취해서 가끔 실수하는 것도 괜찮은 듯.
너무 잦으면 곤란하지만.
손가락의 떨림은 전날의 지나친 과음이 수반되었을때 생기죠. 크윽~
절연하고 절주하는 생활을 해얄듯.
사실 담배가 기호라고는 해도 백해일익은 하니까 금하는 것은 좀더 차후에…
난 지나친 음주는 거의 없었는데
올해 들어 벌써 지나친 음주가 두번째네요.
두번다 후회.
역시 술은 적절하게 마시면서 얘기나 실컷 나누어야 하는데…
아는 사람일까여?
어떻게 다시 만났을까??
근데, 담배피는 것은 둘째치고 지하철 역사안은 금연인디..
용산역은 개방되어 있나요? 그럼 금연이 아닌가??
주제를 빗나갔네.. 다시 만난것이 어떻게 된건지 궁금하네여~~
시선/편견/……..
지금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겠는데
예전 용산역은 바깥에 있었어요.
노천역이랄까.
사진의 여자분은 내가 아는 사람이예요.
신상은 비밀이구요.
그래도 내 블로그를 드나드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다 아는 사람이예요.
그냥 새로 시작하는 글 시리즈 <세상 속의 그녀>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렇쿠낭~~ ^^
손가락의 떨림~~
남자였다면 지하철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보진 않았겠쪄~~
….@@ ….
한 테마를 차지하신 세상속의 그녀가 궁금하네여!
동워니님의 그녀 말고 또 다른 그녀네염~~
사실 내가 사진과 글 속으로 엮어넣으면
상대방이 많이 힘들어해요.
그래서 내 사진과 글 속으로 들어오길 주저하죠.
그런데 오랜만에 그걸 허용해준 사람을 만난 거예요.
알고 지낸지는 오래되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