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종종 소파에서 잠이 들곤 합니다.
잠을 잘 때면 꼭 이불을 덮습니다.
날씨가 좀 덥다 싶을 때면 두께가 얇은 이불을 찾긴 해도
그냥 몸만 눕히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자리에 누우면 몸도 또 하나의 눈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몸만 누워있으면 눈을 감아도
몸이 말똥말똥 눈을 뜨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이불로 몸을 덮고 눈을 감아야
몸도 편안하게 잠자리에 든 느낌입니다.
게다가 이불은 그냥 단순한 덮개는 아닙니다.
난 이불을 덮고 있노라면
이불을 덮고 자는게 아니라
이불과 함께 자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내가 내 체온으로 슬며시 이불을 덮혀주면
이불은 그 체온을 또 나에게 나누어 줍니다.
작은 사탕 몇 개 가지고,
니가 먹어, 아니 니가 먹어 하면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느낌입니다.
이불은 그러다 내 가슴에 자신을 묻고 잠이 듭니다.
항상 내 가슴에 묻혀 나와 함께 잠드는 것이 이불입니다.
그런데 잠자리에서 일어난 뒤끝을 보면
나의 잠과 그녀의 잠이 좀 다릅니다.
나는 내 잠만 훌훌 털어내고 일어날 뿐,
여전히 잠들어 있는 이불은 깨울 생각을 않습니다.
잠에서 일어날 때면 나만 쏙 빠져나오고
내 이불은 잠결에 그대로 팽개쳐 둔다고나 할까요.
그때면 내 품에서 잠에 취한 나의 이불은
구겨진 그대로 소파에서 스르르 바닥으로 흘러내리고
아직도 비몽사몽인채로 잠결을 헤맵니다.
그녀의 잠은 좀 다릅니다.
그녀는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잠든 이불을 토닥토닥 도닥이며 반듯하게 펴주고
조금 정신을 차렸다 싶으면
차곡차곡 접어서 방의 한쪽 구석으로 자리를 잡아줍니다.
그럼 이불은 아직 잠을 완전히 털어내진 못해도
정좌를 하고 정신을 차리려 애를 쓰는 구석이 역력합니다.
우리 둘이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면
내 잠은 소파에서 흘러내리며 여전히 소파에 머리를 박은 채 잠결을 헤매고 있고,
그녀의 잠은 방의 한쪽 구석에서 정좌를 하고 반듯한 자세를 취합니다.
잠에서 일어날 때면 나는 나만 잠에서 빠져나오고,
그녀는 이불의 자리를 차려주곤 잠에서 빠져나옵니다.
그녀와 같이 자고 나면
우리가 잠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내 잠도 반듯한 자기 자리를 찾곤 합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나와 같이 자고 나면
우리가 잠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그녀의 잠은 내 손에 질질 끌려가는 딱한 신세가 되곤 합니다.
그러곤 방의 한쪽 구석에서 여전히 잠결 속으로 구겨집니다.
나는 언제나 잠을 구겨놓고
그녀는 반듯하게 접어서 자리를 잡아줍니다.
잠도, 나의 잠이 있고, 또 그녀의 잠이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잠을 자며, 함께 살고 있습니다.
15 thoughts on “나의 잠, 그녀의 잠”
하하 ^^;;
아무리 말을 해도 고치지 못하는 사람은 못고치더군요;ㅁ;
그게 설령 여자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Orz
누에고치 양말과 뒤집힌 바지 등등…댓글애서 공감이ㅠ
서로 고치려 들지 말고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밥먹고 먹은 그릇 싱크대에 갔다 놓으라고 해서 한동안 주거나 받거니 했었지요. 느리면 느린대로, 빠르면 빠른대로… 그냥 그대로 그렇게… 살았으면 싶어요.
제 남편은 출장 자주 가는데..
입던 옷도 새로 산 와이셔츠 같이 개어서 와요
잠옷도 개어 놓고 나가고…입던 옷도 가지런히 접어 놓고요
남편이 제 옷 개어 주면, 백화점에서 전시하는 옷 같이 변해요…
제 딸이 아빠 같은 남자가 어디 있냐고 감탄하죠…ㅋㅋ
아마 호텔 이불도 개어 놓고 나왔다는…
아주 반듯한 분이신가 봐요.
저는 언젠가 결혼식에 가려고 양복을 입었던 적이 딱 한번 있었는데 아빠가 이상한 옷 입었다며 딸이 빨리 벗으라고 한 적도 있어요. 매일 청바지에 티셔츠 입은 모습만 봤으니…
동원님 이불이 참 솔직한데요? 흐흐^^
친한 언니가 집에 와서 이불을 개놓고 갔는데,
각이 제대로 잡혀 있어서 언니랑 나랑
감탄한 적이 있어요. ㅋ
forest님이 보고는 기가막히다는 듯이 웃었지요. ㅋㅋ
세상을 보는 시선이 참 멋지세요~ ^^
재미있나요?
아내도 이제는 구겨진 이불보면 참 걸작하나 만드셨네 하고는 지나간답니다.
동원님의 관찰력은 예리함 플러스 서정적입니다. ㅎㅎ
이불은 덥는 게 아니라 이불과 함께 자는 느낌이라…
저도 그렇거든요.
아무리 더워도 이불을 덮어야 잠을 자는 느낌…
아내의 이부자리가 정갈합니다.
아마도 성격이나 내면도 그렇게 같은 모습이지요…
결혼 분명 잘 하신 것 같아요…
따님도 맑고 깨끗한 얼굴에 지적인 느낌이 뚝뚝 흐르던데요…
아내와 딸, 모두 목욕탕에 들어가면 왜 그렇게 오래도록 안나오는지… 자주 씻는 건 말할 거두 없구요… 가끔 전 제가 지저분한게 아니라 항상 깨끗해서 별로 씻지 않아도 잘 살고 있는거 아냐하는 생각을 하곤 하지요. ㅋ
크~ 제 신랑은 이불과 더불어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다닌답니다.
보일러 온수는 기본으로 켜져있고 화장실 불은 끄면 큰일나고..
가끔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마시고 문을 열어두는데
다음날 제가 퇴근해서야 그걸 발견하고 나면 머리가 뜨끈뜨끈해지지요.
아~ 한번은 퇴근해서 보니 화장실에서 김이 모락모락 새어나오는 거예요.
들여다보니 욕조에서 온수가 졸졸 넘쳐 흐르더군요.ㅡ.ㅡ^
그럴때마다 전 그러지요.
날 너무 사랑해서 찬물에 손시려울까봐 걱정이고
겁 많은 성격에 화장실가기 무서울까봐 불켜놔줘서 무진장 고맙다구요.ㅋㅋ
우리 집은 거의 모든게 거꾸로 돼서 그녀가 물을 졸졸 흘려놓는 경우가 더 많지요. 저는 잔소리는 안하는 편인데… 잔소리를 들으면 그때부터 열받아서 잔소리하기 시작하지요. 건드리지 않으면 가만히 있는데 건드리면 꼭 갚아주는 못된 성격이랄까…ㅋㅋ
참 재미있게 표현 하셨습니다.
간단명료하게 말하자면… 오늘도 그에게 이렇게 말 합니다.
“자고 일어나면 이불한번만 휙 펼쳐 반듯이 해 놓으면 안될까??”
두루말이 이불은 누에고치 바지와 도넛 양말과 함께 저에게는 작은 전쟁입니다~ ^^:
폰넘버좀 알려 주시죠~ 017-489-7043입니다.
그냥 며칠 놔두면 본인이 치우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