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은 매일 군자가 된다

Photo by Kim Dong Won

딸이 종로로 학원을 다니고 있다.
학교 수업 끝나고 토플 강의 들으러 다닌다.
종로는 학원이 좀 싸다.
학원 선생이 그랬단다.
종로에서 학생 100명을 가르쳐서 벌 수 있는 돈을
강남에선 20명 정도 가르치면 벌 수 있다고.
그런데 그 선생, 강남은 가기 싫다고 했단다.
그곳 애들이 꼴보기 싫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딸은 종로가 좀 싸서 그곳으로 학원을 다닌다.
밤늦은 시간에 들어온다.
들어올 때마다 매번 지하철로 데리러 나간다.
딸은 군자에서 저희 엄마에게 문자를 보낸다.
그때 나가면 지하철에서 딱 맞추어 만날 수 있다.
문자가 오면 그녀가 내 방으로 소리친다.
“문지 군자래.”
나는 궁시렁거린다.
군자는 무슨, 아직 어린 애구만.
그래도 그녀는 항상 문지가 군자라고 소리친다.
군자되기 참 쉽다.
우리 딸은 그렇게 매일 군자가 되고 있다.
강남에서 한달 학원을 다녔는데
내가 많이 힘들어 했었다.
그리고 나선 책 사갖고 혼자 공부했는데
아무래도 혼자 공부하는 건 어려운가 보다.
부모 생각해서 싼 동네 고르고
종로까지 나가서 배우는 걸 보면
군자가 다 된 거 아닌가도 싶다.

18 thoughts on “우리 딸은 매일 군자가 된다

  1. 저도 압구정에서 토플 학원을 고등학교때 다녀봤는데..
    사실 독학으로 배운 것이 더 많았던 것 같네요.
    처음에는 점수가 잘 오르는데, 점수 이상의 것은 배울 게 없는 것
    같아서 멀고, 귀찮아서 그냥 안다녔죠.
    동네에서도 한 달 정도 다녔고.
    점수도점수지만…
    저도 유학생이긴 하지만, 일부 유학생들의 작태는 못 봐주겠더군요.
    먼데로 학원 다니는 따님이 진짜 군자네요.. 전 지금도 멀리는 안가는데요.. =)

    1. 잘됐으면 좋겠는데 뒷바라지가 걱정이예요. 공부만 하지 말고 소설책도 좀 보라고 소설책을 사주긴 했는데 마음에 여유가 없는 거 같아요.

  2. 학원에서 가르치는 토플은 점수에 영향을 많이 미칠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영어실력 자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많습니다.

    갓 고등학교 졸업했을 무렵 ‘느리게 사는 방법’ 이라는 책이 엄청난 유행을
    탔었던 적이 있었지요. 시간이 가면 갈 수록 한국에서는 ‘느리게’ 라는 말이
    ‘게으른’ 이나 ‘돈이 많지 않은’ 이 되어버린 듯 하여 가슴이 많이 아픕니다.

    김동원님도, 따님도, 저도, 그리고 모든 분들도
    아무쪼록 진정한 ‘윈-윈’ 의 세계에서 승리하길 바랄 뿐입니다. ^^

    1. 제가 늘상 하는 얘기가 그거지요.
      왜 영어 공부를 하지 시험 공부를 하고 있냐는…
      시험 공부로 한 영어는 저도 시험 끝나자 마자 홀라당 다 까먹었던 것 같습니다.

  3. 전 수지 맞을까 해서 분당에서 수지로 이사 왔지요..
    같은 분당에서 강남으로 이사 한 친구는 대치동 학원 땜에 갔는데…
    전 공기 좋다고 더 안으로 들어 왔어요
    그랬더니…요즈음 3대 바보가 집 팔고 수지로 이사 한 사람들이라나요
    바보라는 게 우습다가도 강남 친구들의 입에서…친구들이 말하면 속상해요
    그동안의 손해는 말도 못해요
    뭐 팔지는 않았으니…아직은 모르겠지만 갭이 너무 벌어 졌네요
    전 친정 시집 다 강남에서 살았던터이라 그리 좋은지 모르겠는데요
    사람들이 강남…강남 하니…
    그리고 강남에서 공부 더 잘 한다지만..
    이웃 수원에서도 일류대 많이 가거든요
    강남에서 좀 기회가 주어진다 뿐이에요
    강원도의 힘..동원님은 강남에서 살지 않으셨어도
    이렇게 글도 잘 쓰시고…감성이 뛰어 나신걸요
    저도 눈 앞에 산이 펼쳐 진 우리 집이 좋아서…집 안에선 행복해요
    따님은 좀 고생한다 싶어도..분명 많은 것을 가진 아이로 보이네요
    물질로 황폐한 사람들보다 참 행복한 가정인걸요
    아이 고3 때에는 더 좋은 것 해 주고 싶은 부모 욕심이지만
    떠 먹여 주어도 못 받아 먹는 아이들도 있어요
    좋은 대학 나와도 사람들 잘 만나야 하는 것도 실감해요
    우리에겐 입시정책으로 그런 소양 가르치는 힘도 부족한 듯…
    제 딸은 미대 나왔는데…고3 과외 열심히 시켰는데…
    “엄마 나 과외 할 때에 졸았어..”하는데…넘넘 기가 막혔어요
    문지는 참 예쁜 군자네요…^*^;;

    1. 워낙 예민하다 보니까 그것 때문에 같이 사는 사람도 좀 힘들게 하고, 저도 힘들고… 그래요… 글은 그런 예민함 속에서 나오는게 아닌가 싶어서… 제 팔자려니 하고 있어요… 딸은 그냥 자유롭게 키우고 싶어요… 그런데 제 스스로 경쟁에 뛰어드는 면이 좀 있어요… 안타깝기도 하고… 어떨 때는 대견스럽기도 하고 그래요.

  4. 참 위트 넘치는 글 입니다.
    그런데…공부하러 종로까지 나간다는게…좀 비효율적이라는 생각.
    다음에 뵈면…저렴한 돈으로 전교1등 만드는 비법을 꼭 전수해 드릴게요^^

    1. 그 방법이란게 궁금하긴 한데…
      저는 딸이 오늘 시험 문제 두 문제 틀렸어요 하면 설마 문제가 두 문제는 아니었겠지 하고 묻는 아빠라 은근히 걱정이…
      그리고 종로로 공부하러 가는게 학교 공부는 아니예요. 학교 공부는 이미 포기한지 오래라는…ㅋㅋ

  5. 정답을 찾을 수 없다면 교육정책만은 최소한 10년은 유지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유행가도 아닌데 매년 바뀌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예비고사, 본고사, 학력고사, 수능고사, 논술고사…
    음모론으로 비틀어 보면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적응할 만하면 획하고 바꾸는 걸 보면 교육부 장관과 학원장들이 서로 짠 것 같습니다. 강부자들이 부동산 정책을 주무르듯이 교육정책도 분명히 야로가 있어 보입니다.

    가끔 수양을 위해 군자에서 전화를 걸어야겠네요.
    “어디야?’
    “나 군자야.”

  6. 사진으로만 뵈었지만 따님 분위기는 동원님을 쏘옥 닮은 듯 해요?
    딸은 아빠 닮아야 잘 산다 하지요?ㅎ
    저희집도 딸이 고 3 인데……
    전…
    딸 아이 또래만 보면 모두 제 딸처럼 느껴지니… ㅎㅎ
    미래는 미래가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 온다 하니…
    모든 우리 아이들이 행복했음 좋겠어요.

    1. 공부까지 경쟁으로 내모는 교육이 좀 답답해요.
      우리 아이는 재수좋게 그 경쟁체제의 교육을 비켜서 공부를 한 것 같은데… 지금은 초등학교도 우열반 편성을 하기 시작했다더군요. 왜 교육을 통해 상처를 주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아요.
      공존을 향해 나가도 시원찮을 마당에 경쟁을 부추기니… 1등만 행복한 사회는 나중에 그 1등도 불행해 진다는 생각을 좀 했으면 좋겠어요.

  7. ‘문지 군자래’ ㅎㅎㅎ
    처음에는 군자가 무슨 뜻일까… 고개를 갸웃갸웃…
    군자역이라는 뜻이지요??
    한참을 웃었습니다.

    강남 아이들이 싫어서 종로에 머물고 있다는 선생님, 이해가 될 것 같아요.
    몇 년 전인가, 한국에 나갔을 때, 친구가 강남 살아서 대치동 근처에서
    만난 적이 있었지요. 언니가 사는 곳은 강동구였는데… 어찌 그렇게 다를 수가…
    같은 아파트인데도 값의 다름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1. 생각하기에 따라선 이게 편견이 될 수도 있는데
      만나서 나누는 얘기의 내용이 다르다 보니
      자꾸만 이게 편견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해요.
      오래 간만에 만나선 어디 땅을 사는게 좋네 마네 하니까
      나중에는 한 동창이 쪽팔린다고 그런 얘기 하지 말자고 하더라구요.
      의식이 돈에 묶여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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