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또 모이자고 합니다.
청계광장을 메우고,
시청앞을 메우고,
광화문을 가득 메웠던
그 촛불을 들고 다시 모이자고 합니다.
6월 28일 오후 2시에 광화문으로 모이자고 합니다.
그동안 그 자리에 모였던 사람들,
먼저 여기 이 자리에 하나둘 모았습니다.
촛불들은 처음에는 청계천에서 모였습니다.
촛불들이 모이기 전까지만 해도
복원된 청계천은 그 누군가의 치적 홍보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곳에 모여 촛불을 들고
누군가의 홍보물이었던 청계천을 광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그 전까지만 해도 몰랐습니다.
그가 청계천을 자신의 홍보물로 꿀꺽 삼켰다는 사실을.
촛불은 그 청계천을 되찾아 우리의 광장으로 돌려 주었습니다.
2008년 한국의 광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촛불을 밝힙니다.
촛불을 밝히면 그곳은 광장이 됩니다.
한국의 촛불은 밝히면
그곳을 광장으로 만드는 신비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광화문의 거리에서
아이가 촛불을 밝힙니다.
얼굴의 미소가 해맑갔습니다.
아이의 미소도 또 하나의 촛불입니다.
서울의 시청앞에는 너른 광장이 있습니다.
그 광장은 평상시엔 광장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놀이터입니다.
흥겹고 즐겁게 노는 곳이랄까요.
광장이 되면 그 놀이터가 우리의 주장을 펼쳐놓는 넓은 무대가 됩니다.
광장이란 이름에 값하기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비가 언듯언듯 비치는 궂은 날,
젊은 청년이 시청앞의 잔디밭에 앉아 촛불을 밝힙니다.
잔디밭이 광장이 됩니다.
아버지와 딸이
나란히 앉아 촛불을 밝힙니다.
놀기 좋은 잔디밭에 불과했던 곳이 또 광장이 됩니다.
차들이 가질 못하고 멈추면
거리는 거대한 주차장이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 거리에 눌러앉으면 거리는 광장이 됩니다.
엄마와 같이 나온 어린 숙녀가 거리에 눌러앉았습니다.
아이가 눌러앉은 그만큼 거리가 또 광장이 됩니다.
광장의 한 가운데서 아이 둘이 게임을 합니다.
광장에서 하는 게임은 그 느낌이 아주 색다릅니다.
광장에선 게임을 해도 눈치볼 필요가 없고, 눈치 주지도 않습니다.
2008년 한국의 거리 광장에선 종종 함성이 울려퍼집니다.
“이명박은 물러가라.”
아버지가 딸을 무등태우고 함께 외칩니다.
광장에 함성이 가득합니다.
광장에서 촛불은 우리의 외침입니다.
촛불은 매번 자신을 불사르며 우리의 외침이 됩니다.
광장에선 따로 자리가 없습니다.
그냥 어디나 앉으면 그곳이 자리가 됩니다.
가족이 모두 나와 함께 둘러 앉아 촛불을 밝힙니다.
아이가 촛불을 밝힙니다.
광장에선 아이의 촛불도 똑같이 세상을 밝힙니다.
사람들은 거리를 광장으로 만들었다가
다시 거리로 되돌려 줍니다.
우리의 목소리를 담을 때만
그곳을 잠시 광장으로 만듭니다.
거리를 광장으로 만들기 전,
손에 손에 우리의 목소리를 든 사람들이 거리로 모여듭니다.
아빠, 저기 사는 그 사람은 도대체 귀가 먹은 거야?
왜, 이 거대한 함성을 못듣는 거야?
마치 아이가 그렇게 묻는 듯 합니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나와 광장에 자리합니다.
어머니가 광장에 서서 외칩니다.
“이명박 OUT”을.
두 아들이 아빠의 손을 잡고 광장으로 나옵니다.
다정한 연인이 나란히 광장으로 나옵니다.
엄마와 딸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옵니다.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광장으로 나옵니다.
연인이 거리에 앉아
거리를 광장으로 만들어갈 준비를 합니다.
그 넓은 텅 빈 도로에
홀로 우뚝 앉아 촛불을 밝힙니다.
어디선가 단체로 우르르 몰려나와 거리를 광장으로 만드는게 아닙니다.
엄마와 딸이, 아버지와 아들이, 혹은 그냥 홀홀단신으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그 넓은 거리를 광장으로 만듭니다.
그리고 행진을 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목말 태우고
촛불을 들고 행진합니다.
청소도 촛불이 합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귀막고 눈막습니다.
저 컨테이너의 뒤에선 이 모든 사람들이 보일 리가 없습니다.
김밥 장사 아닙니다.
이 무적의 김밥부대는 거리 광장의 한가운데 서서
사람들에게 물과 김밥을 공짜로 나누어 주고 있었습니다.
자기 돈으로 마련해온 물과 김밥으로
사람들의 목을 축여주고 배를 채워줍니다.
그렇게 서로를 나누며 함께 합니다.
청계천을 광장으로 만들어 우리에게 되찾아준 촛불은
광화문 거리로 모였습니다.
멀리 숭례문까지 모든 거리를 가득 메웠습니다.
촛불이 광화문 거리를 밝히자 그 거리는 광장이 되었습니다.
광화문 거리가 거리일 때 그곳은 이명박 정권의 세상입니다.
이명박 정권의 세상일 때,
그곳은 차들만 다닐 수 있는 도로교통법의 공간입니다.
이명박 정권은 말합니다.
촛불이 그곳을 점유하는 순간, 그것을 불법이라고.
그러나 촛불이 그곳을 밝히면 그 순간부터 그곳은 광장이 됩니다.
거리가 광장이 되면 그때부터 그곳은 도로교통법이 아니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의 바로 아래 놓입니다.
그때부터 대통령은 광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얘기를 들어야 합니다.
2008년, 대한민국의 촛불은
거리에 모여 거리를 광장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서울의 거리는 온통 광장이었습니다.
광장의 목소리가 외쳤습니다.
“이명박은 물러가라”
***오늘 나가려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만
일 때문에 못나갈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사람들 부추겨놓고 나가지 못하는
이 이율배반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전에 부리나케 번역 한꼭지 끝내고 나갑니다.
광화문으로…
10 thoughts on “거리를 광장으로 만든 사람들”
eastman이 누군가 했는데.. 동원님이셨군요…
“동인”이 되셨는데요? “동남”씨가 더 정확한 해석이긴 하겠지만…
촛불집회에 열김시 참여하시는 것 같네요.
바쁘실텐데, 참 활동적으로 생활하시는 모습이 부럽습니다.
배울게 하나 또 늘은 것 같네요.
즐거운 한주 보내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참가 못하고 있어요.
지난 달엔 일이 좀 한가했는데 이번 달에는 일이 여러 개 겹쳐있거든요.
주중에는 꼼작을 못하겠어요.
닉은 여러 개 쓰고 있어요.
가끔 제가 꼭 여러 사람으로 세포 분열을 한 듯한 느낌도 들어요.
한국 있을 때 얼굴 한번 봐요.
헛, 9시 뉴스에 나오셨군요 ^^;
시위 자체가 폭력화 되어가는 와중이,
대한민국에 도움이 될런지 해로 끝날런지 참…
이제 나갈 때는 완전 무장하고 나가야될지도 모르겠어요 ㅠ
여기저기서 봤다고 하더군요.
시위 자체는 여전히 평화적인데 좀 예민해진 측면은 있어요. 50일을 시위를 했는데 매일 거짓 사과만 하니 예민해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방패로 마구 밀어부치는 경찰들 보고 있으면 비폭력이란 구호가 어찌나 공허한지요. 지난 토요일은 경찰과 대치한 시위대가 거의 연약한 여성들이라 그저 밀지마만 외칠 수밖에 없는 내 처지가 어찌나 무기력하고 비참했는지…
일 때문에 주중에는 못나갈 것 같고… 7월 5일 토요일에 또 머릿수 보태러 가려구요.
저도 문화방송 9시뉴스에서 동원님 봤어요.
처음 뉴스 시작할 때 중요뉴스 보여줄 때도 나오고 뉴스 중간에 촛불행진할 때 마지막에 몇초 나왔어요. 만난적없어서 긴가민가했는데…ㅋㅋ
넘 반가워서 도루피님께도 알려드렸네요.ㅎㅎ
일 때문에 20일만에 나간 거였어요.
전문시위꾼들이 주도한다는 정부말에 어떻게나 화가 나던지요.
시위라고는 미선이 효순이 때 이후로 처음 나간 것 같습니다.
열심히 일해놓고 7월 5일날 또 나가야 겠습니다.
비가 와서 걱정이네요.
이스트맨님 바쁘신 와중에도 참석하셨군요.
방금 MBC 9시 뉴스에서 이스트맨님 봤습니다.^^
전 오늘 꼭 나가보려 했는데 일이 있어서 못갔네요.
낼은 가능하면 꼭 나가볼려구요~
허걱, 밤 11시에 집에 돌아왔는데 동네 상점 아저씨가 오늘 촛불집회 나가셨죠 하더라구요. 깜짝 놀라서 그걸 어떻게 아세요 했더니 뉴스에 나왔다구…
이건 많은 사람이 모이는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경찰의 진압이 폭력화하고 있어요. 가더라도 조심하시길. 오늘도 물대포에 소화기에 다 나왔어요. 방패로 마구 밀고…
대한민국 경찰, 폭력 유발자들이었어요.
머릿수 하나 보태주시면 큰 힘이 될 거예요. 아니, 참 둘이시지… ^^
손에 손에 든 촛불들…
집회라기 보다는 소풍을 나온 듯한 사람들의 모습들이 편안해 보입니다.
‘광장’으로 몰려 몰려 나오는 사람들에게서 자유의 깃발이 펄럭이는 듯합니다.
6월 항쟁이 헛되지 않았음을 요즘 거리의 사람들에게서 느껴집니다.
촛불은 광장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아닐까요.
마음의 촛불은 꺼지지 않으리라…
그동안 바빠서 못나가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오늘은 나갔습니다.
시위가 폭력화하는 것이 아니라 진압이 폭력화하고 있더군요.
어떤 분은 일본에 계신데 올 수는 없고 하니까 자신의 고향인 대전에서 한국오는 비행기값으로 버스를 대절시켜 주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누굴까,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알고 보면 그게 인터넷으로 아는 사람인 경우가 있었거든요.
갈 때마다 희망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