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처럼 슬픈 눈을 가진 그녀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6월 28일 서울 안국동의 집회 현장에서


그녀가 거기에 서 있었다.
사슴처럼 슬픈 눈을 가진 여자였다.
종로에서 안국동으로 올라가는 길,
방패를 든 경찰들이 시위대의 걸음을 막아서더니
사람들을 멀찌감치 밀어내고 거대한 벽을 이루었다.
그러자 건장한 체구의 경찰들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작은 여자,
그녀가 그들의 앞에 버티고 섰다.
그녀는 청와대까지 걸어가 외치고 싶어했다.
“비정규직 철폐하라!”고.
그러나 그녀의 걸음은 거기까지 였다.
방패로 길을 막은 경찰들에게 사람들은 밀려나고
그녀는 그 경찰들의 앞에 서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시청앞에서 단식하고 있는 기륭전자의 노동자냐고.
그녀는 아니다고 했다.
자신은 동조 단식에 동참한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이름을 알려줄 수 없냐고 했다.
그녀는 말했다.
그냥 시민이라고 해두면 안되겠냐고.
나는 그녀의 뜻에 동의했다.
그녀는 기륭전자의 노동자들과 뜻을 같이하여
동조 단식에 나선 시민의 하나였다.
오직 작은 체구와 목소리 하나밖에 가지지 않은 여자,
그 목소리로 청와대 앞에 가서
“비정규직 철폐하라”를 외치고 싶어한 여자,
그렇게 목소리 하나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듯한 바보같은 여자,
사슴처럼 슬픈 눈을 가진 여자였다.
그 슬픈 눈으로 노동자에게 마음을 나누어준 그녀가
경찰의 벽 앞에 우뚝 서 있었다.
우뚝 선 그녀의 비옷 아래쪽에서
그녀의 마음이 외치고 있었다.
“비정규직 폐지하자”고.

6 thoughts on “사슴처럼 슬픈 눈을 가진 그녀

  1. 같이 일하는 직원들도 비정규직이 몇명있습니다.
    같이 근무하는 제가 너무 미안하더군요…–;
    정말 비정규직이라말이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2. 훌륭한 경찰들이 그녀의 든든한 배후세력 같아 보입니다.
    마주보면 방패로 길을 막은 것이지만 그녀가 돌아서자 지지자가 됐습니다.

    1. 그렇다면 그녀가 돌아선 것은
      경찰들에게 그녀의 지지자가 되라는 온몸의 명령이었군요.
      나무님의 이 탁월한 해석을 이용하여
      블로그 내용을 다시 써야 할 것 같습니다.
      경찰들은 당장 방패를 내려놓고 그녀의 명령에 따르라!

  3. 대구에서는 ‘최저임금 인상’ 을 가지고 시위를 벌이고 있던데 말입니다.
    바쁜 길이라 시선만 살짝 던지고는 지나왔습니다…

    소위 선진국 이라고 하는 국가들 중에서 최저임금이 대한민국보다
    낮은 국가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요.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소녀와 같이, 함께 어떠한 형태로든 동참하지 못하는 제가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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