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와 바다

Photo by Kim Dong Won
2004년 10월 21일 제주 섭지코지에서


바위 하나가 물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바다가 파도를 일으켜 바위의 머리맡으로 몰려들었다.
바위의 머리끝까지 바닷물을 옴팍 뒤집어 씌웠다.
바위는 어푸푸, 어푸푸, 물을 뱉았다.
바위와 바다가 하루 종일 그러고 놀았다.

내가 물었다.
지겹지 않니? 하루 종일 그렇게 하고 놀면.

바위와 바다가 말했다.
연극도 매일 똑같은 걸 공연하잖아.
보는 사람이 달라지면 똑같은 공연도 매일이 새롭다.
똑같은 삶이라고 지겨워하지마.
매일을 다르고 새롭게 살아갈 순 없는 거니까.
또다른 사람 앞에 서면 매일 떠오르던 아침해도 새로와진다.
매일 똑같이 지루하게 출근하고 퇴근한다 생각지 말고
매일 새로운 관객들 앞에서 출근과 퇴근 공연을 한다고 생각해.
그럼 지루하게 반복되는 모든 삶이 갑자기 매일 새로와 질꺼야.

말을 나누는 사이,
또 새로운 사람들이 바닷가를 지나갔다.
바위와 바다는 지겨울 겨를이 없었다.

6 thoughts on “바위와 바다

  1. 쳇바퀴 도는 다람쥐 같은 1人은 바다에 가서 배워야겠습니다.
    정작 지척에 바다가 있을 때는 가질 않았답니다.
    바다에 가는 것도 일이라고 느끼면 가기가 싫더군요.

    1. 그게 참 알 수 없는 일인 듯 합니다.
      정작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도시 사람보다 표정이 밝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시골 사람들은 또 청계천에서 더 즐겁게 웃고 다니시더군요.
      인생 참 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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