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과 장미 꽃잎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5월 29일 우리 집 마당에서

마당엔 언제나 회색빛 표정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화창한 날, 쨍한 빛을 그 마당에 널어놓으면 표정이 환해졌습니다. 비오는 날, 젖은 빗물로 덮어두면 표정이 진해지곤 했습니다. 마당의 회색빛 얼굴은 그렇게 밝았다 진해졌다 하며 두 표정의 사이를 오고 갔습니다. 그래도 회색의 낯빛은 여전했습니다.

한창 때를 넘기자 장미 꽃잎이 하나둘 마당으로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마당이 붉게 물듭니다. 며칠 동안 그대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회색빛 얼굴 하나로 밝은 표정과 진한 표정 사이를 오가던 마당이 한해에 한번 그렇게 장미 꽃잎을 받아들고 붉은 표정으로 며칠을 지냅니다.

생각해보니 연인들이 사랑할 때, 예쁜 꽃을 선물하는 건 무슨 다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살다보면 사랑으로 뜨거웠던 그 짧은 순간이 지나고, 그 자리를 매일매일 먹고 살아가야 하는 일상이 채워가겠지요. 아마 그때쯤 우리들의 얼굴엔 무덤덤한 잿빛 표정이 머물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명암의 변화만 있고, 사랑할 때 우리의 얼굴에 머물던 그 뜨거웠던 열정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겠지요. 꽃을 선물하는 건, 그런 삶이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삶이더라도 가끔 그 옛날 뜨거웠던 사랑의 색을 찾아주며 살아가겠다는 다짐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올해도 마당이 떨어진 장미의 꽃잎으로 잠깐 붉었습니다.<

6 thoughts on “마당과 장미 꽃잎

  1. 마당의 회색빛과 꽃잎이 극명하게 대비되어
    장미 꽃잎이 더욱 화사해 보이는군요……
    사랑은 역시 열정이 있을때가 좋죠^^.

  2. 지난 달에 어느 만남을 가졌다가
    여자분께서 대뜸 꽃다발을 한아름
    안겨주셨어요.
    벅차게 기뻤답니다.
    그렇게 일상에서건,
    가끔은 나도 꽃을 사야겠단 생각을
    문득 해봤어요.
    일상의 상큼한 활력소만 같지요^^*

    1. 오, 그것도 좋은 생각인데요.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우리 집 마당에 장미 꽃잎을 가득 뿌려놓으리다.
      가시는 걸음마다 그 꽃을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그랬더니 결국 가지 못하고 바람은 마당에 주저 앉았다.
      바람은 그렇게 장미 꽃잎과 함께 마당에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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