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다르면 충돌이 잦아지고 갈등이 깊어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인 경우가 종종 있다.
다른 사람의 다른 생각이 오히려 길을 열어주는 경우이다.
가령 요 며칠 나는 마당에 떨어진 장미 꽃잎의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고
그 사진들로 글을 엮고 있었다.
그 중엔 마당에 떨어져 비에 젖고 있는 장미 꽃잎의 사진도 있었다.
그건 내게 바람에게 버림받은 뒤,
그 비를 다 맞고 마당에 서 있는 실연의 장미였다.
그런데 방문객 중 수아님이 그 사진을 보고
후라이팬에 기름 두르고 장미 꽃잎을 맛있게 볶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진을 찍던 날 사실은 비가 오면서 해가 떠 있었고,
그 때문에 햇볕이 마당을 적신 빗물에 어른거리고 있었다.
그 하얀 빛이 비치면서 비에 젖은 마당은 좀 번들거리는 느낌이 났다.
그게 아마 기름두르고 볶고 있는 후라이팬의 느낌을 가져온 듯 하다.
어쨌거나 수아님이 받은 색다른 느낌은 내게선
실연에 대처하는 전혀 다른 자세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바람이 버리고간 장미 꽃잎,
비가 후두둑 후두둑 경쾌하게 두들긴다.
야, 가다가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나 콱 나라고 해라고 말하며
비는 그 실연, 빗물을 기름처럼 두르고 고소하고 맛있게 달달 볶아 주었다.
하긴 며칠 전에 들으니 뜨거운 열기로 가득찬 골목 끝에서
그 바람 숨막혀 죽었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 소문 곁들여 볶았더니 더욱 고소했다.
실연의 슬픔에 시선을 맞추면
그저 시간에 기대어 상처가 아물길 기다리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하지만 그 실연, 후라이팬에 볶아 먹으면
슬픔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다시 살만해진다.
실연했을 땐 비맞지 말고 후라이팬을 들어야 한다.
그게 실연을 마주하는 이 시대의 자세이다.
그 다음 날도 사진은 마당에 떨어진 장미 꽃잎의 사진이었다.
나는 마당에 떨어진 장미 꽃잎에서
장미의 마음을 흔들어놓고는 그 마음을 버리고 떠난 바람을 보았다.
그러니 마당에 떨어진 장미 꽃잎은 버림받은 마음이다.
또 슬플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바니님이 지나가면서 그 사진을 보고 진달래를 떠올렸다.
나는 또 비극으로 흘러간 나의 결말을 뒤집지 않을 수 없었다.
장미의 붉은 마음 흔들어놓고 바람이 떠난다 했을 때,
장미는 그 붉은 마음, 마당으로 내려 마당에 붉게 깔았다.
붉기로는 약산의 진달래보다 더 붉었다.
마당으로 내려놓은 그 붉은 꽃잎,
바람의 발목을 슬그머니 잡았다.
바람은 못이기는 척 마당에 주저 앉았다.
그리고는 그 바람, 마당에서 잠들었다.
붉은 꽃잎 위에 엎드려.
가네 못가네 울고 불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와선 이것들이 어디서 염장질이야,
싹쓸어 둘 다 내쫓을까도 생각했지만
내 걸음은 달콤한 잠을 깨우지 않으려 조심조심 걷고 있었고,
마당의 의자와 탁자도 그들의 자리로 내주고 있었다.
며칠 동안 마당에 사랑의 꿈이 가득했다.
사실 꽃을 볼 때,
그것이 떨어져 있을 때도 슬프다기 보다 즐겁고 좋았다.
그 즐거운 감정이 슬픔에서 온 것은 아니었으리라.
그 감정은 슬픔보다는 어떤 행복에서 온 것이 분명하다.
두 사람 덕에 비극으로 흘러간 장미의 얘기를 해피엔드로 다시 고쳐쓸 수 있었다.
비극에 막혔던 내 장미의 길을 다른 사람들이 새롭게 열어주었다.
역시 사람은 소통하면서 서로 어울려 살아야 한다.
6 thoughts on “해피엔드로 다시 엮은 장미 이야기”
대학 시절. 가을이 되면 은행잎을 바닥에 잔뜩 깔아 놓은 카페가 생각납니다.
거리의 낙엽을 즐길 새도 없이 치워 버리는 우리의 무심함이
그곳에 가면 작은 기쁨을 되찾곤 했었답니다.
저는 숲길을 좋아하는데 그건 낙엽이 한해내내 쌓여있기 때문인듯도 싶어요.
장미의 붉은 빛이
회색, 흰색, 엷은 브라운과 두루두루 잘 어울리는군요.
덕분에 며칠 그 조화로움을 잘 즐기고 있습니다.
참, 바람, 빗물, 햇빛하고도요..
트리안이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네요.
우리집 트리안이 갑자기 시들시들해져서 여긴 어쩐가 궁금했거든요.
트리바깥에 두면 시들시들해지고 트리안에 두면 잘 사는 듯도…ㅋ
조금 시들해 졌어요. 일에 바빠서 forest님이 잠시 신경을 못썼거든요.
설정이 아니라 바람이 만들어 놓은 작품인가요?
멋지기도 하면서 꽃주인으로서는 살짝 마음이 아플 것 같기도 하네요.
이따 뵐께요.. 드뎌 뵙는군요..
순전히 바람의 작품이죠.
지는 꽃은 언제나 쓸쓸하긴 해요.
이따 봅시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