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거리와 숨바꼭질

Photo by Kim Dong Won
2005년 8월 24일

보도 블럭의 좁은 틈사이,
풀들이 자리를 잡고 삶의 둥지를 틀었다.
내려다 보며 정말 질긴 생명력이네 뭐네 한마디 했다.
풀들이 나를 힐끗 올려다보더니 숙덕거린다.

-뭐니, 저 사람?
-그러게 말이야.
-우린 눈만뜨면 매일 삼거리서 만나는 즐거운 삶인데.
-누가 아니래.
-우리 또 내일 여기 삼거리서 만나자.
-알써.

나 졸지에 무안해졌다.

담장 위의 작은 틈, 옹색한 자리에
작은 풀이 하나 있다.
역시 또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참 자연의 생명력은 질기네 뭐네 한마디 했다.
풀이 쉿, 내 입을 막는다.

-아저씨, 조용.
나 지금 숨바꼭질 중이거든요.
바람이 술래예요.
여기서 나 봤다고 꼰질르기 없기예요.

순간 나는 입을 닫고 고개를 끄덕였으며
발끝을 세우고 살금살금 걸었다.
바람이 옆을 지나쳤지만 먼하늘만 바라보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05년 8월 24일

9 thoughts on “삼거리와 숨바꼭질

  1. 두번째 사진에 있는 모님.

    지난번에 제가 찾아 뵈었을때는..
    척척한 도시생활 20여년만에
    마당도 있는 신축 고층 아파트에 입주했다고,
    마냥 좋아하시던데.

    같이뵈었던 옆집 이웃은
    그새를 못참고 어디론가 이사가셨나 봅니다.

    하기사,
    사람들이 지나가다 한번씩 쳐다보며 스토킹중이니…
    소리소문없이 떠날만도 합니다.

    행복하세요. ^____^;

    1. 오늘 댓글은 좀 해독이 어렵습니다.

      두 사진이 모두 서울서 찍은 사진이 아니라서…
      잘 기억은 안나지만 팔당변에서 찍었던 것 같습니다.

      행복이 박대리님 앞에 주단처럼 깔리길.

  2. 삼거리에 있던 다방은 없어졌나 보네요.
    요구르트라도 하나씩 돌리세요.

    풀은 술래가 오지 않아 온종일 숨어 있을 것 같네요.
    아님 바람 혼자 삼거리 다방을 찾아 앉아있던지…
    오늘은 바람도 에어컨 앞에서 쉬고 있나 봅니다.

    1. 서울선 다방이란 간판 보기도 어려운 것 같아요.
      빵집도 죄다 베이커리가 몰아내고…
      하긴 부르긴 별다방, 콩다방이라고 하더군요.

  3. 작은 풀 하나에도 마음을 나누어 주는 모습 아름답습니다.
    지붕 위에도 풀씨는 자라고 있고, 깨어진 보도블럭 틈바구니에서도 알콩달콩
    저희들끼리 삶을 나누고 있군요. 저들의 살아 있음, 생명력이 지쳐가는 여름에
    생기를 주고 있네요. 고맙습니다.

    1. 알고는 있었지요.
      나는 계속 방구석에 묶여 있을 거 같아요.
      이상하게 어디나가고 싶은 생각 반, 집에 그대로 쳐박혀 있고 싶은 생각이 반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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