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갈나무와 바람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8월 15일 경기도 양평군 단월의 소리산에서


소리산을 오른다.
바람은 없고 무덥다.
“아, 덥다 더워.”
인상 구기면서 불평한다.
불평이 계속 이어지자 영 보기에 딱했던지
신갈나무가 그 넓은 잎을 일제히 흔들어
바람을 부쳐준다.
시원하다.
하지만 잠깐이다.
“에이, 조금만 더 부쳐주지.”
그러자 신갈나무가 내게 조용히 속삭인다.
‘그냥 참고 올라가.
어젯밤 산이 뜨거웠어.
그 열기 식히느라
밤새 부치면서 잠을 보살폈더니
지금 팔아파 죽겠어.’
나무 아래를 보니
여기저기 신갈나무의 잎이 도토리를 안고 떨어져 있다.
정말 밤새도록 잎을 부채처럼 흔들어 산을 식혔나 보다.
팔이 떨어질 정도로.
그때부터 조용히 입닥치고 산을 올라갔다.
그래도 나무들이 간간히 잎을 흔들어
바람을 부쳐 주었다.
그때마다 고마웠다.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8월 15일 경기도 양평군 단월의 소리산에서

11 thoughts on “신갈나무와 바람

  1. 백중날 통방산에 갔다가 망명당을 지나 산책을 했는데
    저런 도토리 혹은 상수리들이 많이 떨어져 있어 좀 안타까웠습니다.
    가을에 떨어졌으면 신나게 주우면서 산책할텐데 싶어서요.
    신갈나무, 졸참나무 등 참나무 구분하는 방법을 노고단을 오르면서 배웠는데
    그새 다 잊어버렸네요. 참나무 잎 중 제일 커서 신발로 써도 될만하여 신갈나무,
    참나무 잎사귀 중 가장 작아서 졸참…등등…다른것은 기억이 안나요.

    1. 아무래도 통방산을 한번 가던가 해야 겠어요.
      너도바람님께 그 산이름을 자주 들었더니 꼭 가봐야 할 산처럼 느껴집니다.
      나무가지가 아주 약한지 바람이 조금 불면 발밑에 툭툭 저렇게 떨어지더군요.
      저도 참나무 구별법 좀 공부해야겠다고 생각 중입니다.

  2. 산에 가면 나무 명찰을 달아놓은 곳이 종종 있었습니다.
    월악산에서도 그랬고, 군포의 수리산도 많이 달아놓았더군요.
    그때마다 눈여겨 보면서 공부는 하는데
    어떤 때는 이게 도대체 무슨 나무인가 들여다보다가
    그게 밤나무란 것을 알고 허망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밤없으면 잎과 줄기만으로는 나무를 잘 모른다는 얘기가 되는 거죠.
    그래도 하나하나 익혀가는 재미가 아주 좋습니다.
    자연은 참 편안하고 즐거운 얘기를 많이 얻어올 수 있는 곳 같습니다.

  3. 지난 주말에 산 타면서
    도토리아기 여럿 보았네요~
    살랑 바람이 가을을 느끼게해요.
    곧, 가을이지합니다.

    1. 오늘도 아주 날이 좋네요.
      오늘 일을 마감하면
      내일 산이나 하루 나갔다 올까 생각 중입니다.
      하늘과 구름이 좋은 계절이 점점 다가오고 있군요.

  4. 언젠가 용현산에 갔을 때 숲해설가를 따라다니며 귀동냥한 바로는
    요거이 상수리나무가 아니구 신갈나무 같은데요.
    참나무에는 종류가 여섯가지가 있는데 그중 상수리는 잎이 길고 날씬하거든요.^^
    저희 클 때나 예전에는 소나무가 주였지만
    이제부터는 참나무가 우리나라 숲의 주 나무가 될거래요.
    소나무는 햇빛을 좋아해서 그늘이 생기면 안되는데
    참나무들이 이제 소나무들의 키를 넘어서는 바람에 클 수가 없다는군요.
    우리로서는 섭섭하지만 자연의 이치로 아이들도 그만큼 익숙한 숲이 될거라네요.

    1.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산 중턱에서 만난 나무이니 신갈나무가 맞을 것 같습니다.
      나무 구별하는 것도 재미난데 잘 구별을 못하겠네요.
      까마중에 이어 또 도움을 받네요.
      고마워요.

    1. 처음엔 다람쥐 짓인가 했는데
      바람이 흔들 때마다 툭툭 떨어지더군요.
      바로 제 앞에서도 한두 개가 떨어졌어요.
      도토리나무는 도토리 때문에 산에 갔을 때 제가 알아보는
      몇 안되는 나무 가운데 하나예요.

  5. 숲 속에서 불어오는 바람,
    팔이 아프도록 산을 식혀주는 나무들….
    고마운 자연입니다.
    땅에 떨어져 있는 상수리나무 잎새들이 편안해 보입니다.
    할 일을 다 마치고 푹~~ 쉬고 있는 느낌이요…
    소리산 사진들이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태양을 시원하게 식혀주고 있네요.
    감사~~ 드립니다.

    1. 나무랑 눈을 익혀놓으면
      나중에 산에 갔을 때 반갑더라구요.
      그런데 그 나무가 그 나무 같아서 얼굴 익히기가 쉽질 않아요.
      오늘도 들러주셔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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