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에 소리산에 간 적이 있다.
그때의 기억을 찾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그 추억은 2003년 10월 31일에 날짜를 맞추고 있다.
신문에 난 소리산의 기사를 보고
그녀와 함께 차를 몰아 소금강에 버금간다는 그곳을 찾아갔었다.
역시 신문기사는 믿을게 못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신문기사의 과장에 따른 섣부른 기대만 아니었다면
아주 만족스럽게 오르고 내려올만한 산이었다.
올해 8월 15일과 16일에 이틀 연이어 다시 오른 소리산은
5년전과는 산의 색깔이 판이하게 달랐다.
한여름이라 역시 이번엔 온산이 초록 일색이었다.
이틀 동안 쌓았던 초록 추억의 뒤끝에
오래 전에 마련해 두었던 가을 추억을 꺼내 다시 들여다 본다.
소리산 소금강이라 불리는 계곡을 건너 산으로 들어갔었다.
가을이라 계곡의 물은 많지 않았다.
산으로 들어가기 전에
계곡에서 올려다 본 소리산의 모습이다.
산이 울긋불긋하다.
낙엽이 바삭바삭 밟히는 길이다.
아마도 여름이라면 무성한 잎들 때문에
하늘을 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가을이 되면 빈 나무 사이로 하늘이 내려와
올라가는 길을 함께 해준다.
이미 단풍은 많이 진 상태였지만
그러나 드문드문 붉은, 혹은 노란 단풍이 남아있었다.
남아있는 단풍따라
시선을 드문드문 여기저기 뿌리며 올라갔다.
올라가는 초입의 길은 좀 가파랐다.
같이 간 그녀가 올라가다 잠시 숨을 고른다.
숨을 고를 때는 숨만 실컷 쉬고 끝내면 안된다.
입도 숨차기 때문이다.
쵸코파이로 입을 달래주어야 한다.
달콤한 그 맛으로 입을 달래주고 나면 산행이 더욱 즐거워진다.
그녀가 쵸코파이 배어 물었다.
물은 적지만 계곡이 물소리로 작은 음악을 곁들여준다.
사실 여름에도 비가 왔을 때만 계곡의 물이 풍성하다.
계곡에서 많은 물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사실 그리 흔치 않다.
평상시에 물이 전혀 없는 계곡도 많다.
그러니 가을에도 이 정도로 꾸준히 물이 흐른다는 것은
그래도 이 계곡엔 물이 항상 있다는 얘기가 된다.
산에서 내려올 때,
계곡의 물소리는 그냥 소리가 아니라
이제 거의 다 내려왔다는 신호가 되기도 한다.
수리바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오후 시간이라 서쪽 하늘이 빛으로 하얗다.
보이는 산들은 모두 완연한 가을색이다.
바로 저기 아래쪽에 내려다보이는 골짜기에서 산으로 오는 첫걸음을 떼었다.
소리산의 등산로 가운데서
시작한 곳을 산에 올라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은
저 곳밖에 없는 듯하다.
이 날 그녀는 수리바위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힘들어서 못가겠다고 수리바위에 주저앉았다.
아마 지금 같았으면 독수리가 잡아간다고 놀렸을 것이다.
그녀를 수리바위에 남겨놓고 나만 정상으로 향했다.
사실 수리바위까지가 급경사이고 나머지 정상까지의 길은 거의 평지였다.
바람같이 정상까지 갔다.
정상에서 북쪽으로 바라본 모습이다.
하늘이 청명하다.
정상의 표지석이다.
이 표지석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올라가는 길목의 안내판은 새롭게 정비를 해놓았다.
소리산엔 구불구불 하늘로 길을 낸
웅장한 자태의 소나무들이 많다.
전나무의 경우에는 곧게 길을 내지만
소나무는 이렇게 구불구불 길을 낸다.
소나무나 전나무가 하늘로 낸 길은 다람쥐의 길이다.
거의 다 내려왔다.
계곡의 위쪽에선 물이 저 혼자 발걸음을 재촉하며 먼저 내려가더니
계곡 아래쪽으로 내려와보니
계곡을 내려온 물이 우리와 함께 가려고
웅덩이에 모여 기다리고 있다.
물의 마음이 곱고 또 맑다.
소금강 계곡의 단풍이다.
저녁 햇살이 단풍잎 위에서 곱게 부서지고 있다.
계곡물이 물표면을 말끔하게 닦아
맑은 거울을 만들더니
그 예쁜 자태를 비춰주고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소리산 바로 인근의 마을에 들렀다.
추수를 끝낸 논에서 볏단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이번 여름에 찾아갔더니 산에서 만난 분이 이곳이 경기도의 오지라고 했다.
오래 전 마을에 들어가 사진을 찍을 때,
경기도에도 이렇게 후미진 곳이 다 있나 하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다.
서울에서 가까운 곳은 아무리 오지라도 점점 관광지화되어 간다.
그냥 사람들이 농사짓고 살아가고 있는 마을 풍경을 찾으려면
더 멀리 가야 하는 시대인 것 같다.
도시를 벗어나 먼 곳으로 자주다니고 싶다.
오래 전에 쌓아놓은 추억 속에선
자연이 자연으로 그대로 머물러 있다.
오래 전의 추억이 좋은 이유이다.
10 thoughts on “소리산의 가을 추억”
푸르디 푸르던 산이 60일만 넘기면
저렇게 색시하게 옷을 갈아입는군요.
짧은 삶이지만, 아직까지 가을산은… 가본적이 없는 거나,
갔던곳이 기억에 남을 만큼 인상적이지 못했던 것 같아요.
가을도 봄처럼 빠르게 스쳐가는 순간이기 때문일까요?
낙엽으로 가득한 길을 뿌뜩뿌득 소리내며 걸어보고 싶습니다.
국화주 한잔에 나물안주가 그리워지는 밤이네요.
글과 사진을 감사히 보고, 마음에 찬바람 실컷 불어넣고 갑니다.
행복하세요. 넙죽~
그렇잖아도 월요일날 젊은 친구들 만나 술한잔 했지요.
한 친구가 전화 연락이 안돼서 열심히 촛불집회 하나보다고 생각했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 잡혀갔더라구요.
항상 시위를 앞쪽에서 이끄는 열정적인 친구입니다.
아마 박대리님도 한번쯤 보셨을 수도 있을 듯 합니다.
미안하기도 하고… 그 친구에게 위로주 한잔 사야할 것 같습니다.
사진으로 잠깐 눈이라도 식힐 수 있다면 저야 큰 행복입니다.
산에 오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점점 계곡물이 없어지는 것 같더군요. 어릴 적 기억에는 냇가에만 가도 한 길 넘는 물이 부지기수인 것 같았는데 이제는 복숭아뼈라도 담글 물은 귀하더라고요. 이러다 산에 있는 계곡을 모두 청계천처럼 만든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그럴 것 같습니다.
이 맹바구 정권은 계곡도 이제 청계천에 비견할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나올 것 같습니다.
마지막 논에 낟알을 떨군 후 줄지어 세워둔 짚가리를 보며 좀 아련해졌습니다.
유년, 둠벙샘에 가서 빨래를 하고 나면
샘 곁에 있는 저런 짚단들을 태우며 곱았던 손을 녹이곤 했지요.
ㅎㅎㅎ 꼭 성냥팔이 소녀나 소녀가장같이 말했네요.
엄마 몰래 빨래 바구니 들고 동네 아이들 따라 나선 주제에…
우린 동네는 저런 산 아래에는 밭이 있었고, 논은 산과 좀더 떨어져 있었지요.
동네마다 추수하고 난 뒤의 논풍경도 다른지
제가 자란 강원도와는 좀 달랐어요.
강원도에선 한데 모아 둥글고 높게 쌓아두거든요.
아마도 저 짚들은 봄에는 다시 논바닥에 깔려
기름진 양분이 되어 주었겠지요.
정말 벌써 가을이가 보네요.
저도 벤쿠버에 도착해서 선풍기 샀는데
이틀만에 쌀쌀해졌네요… 참을껄..
시원한 주말 보내시길요.
3일 동안 일하고 오늘은 근처의 산이나
연꽃있는 곳에나 가볼까 했는데 비가 오는 군요.
빗소리 들으면서 쓰다만 글을 정리해야 겠어요.
벌써 문을 거의 다 닫고 살 정도로 날씨가 가라앉았습니다.
항상 건강하고 빨리 색시와 함께 살게 되시길.
이곳은 벌써 가을이군요.. 몇 년 전 사진도 잘 간직해두고..
요즘은 카메라가 거의 찬밥 신세인데..
조그만 캠코더를 구입하려고 하는데.. 왠지 동원님이 잘 아실듯..
추천 좀 해 주세요.
아쉽게도 캠코더는 잘 몰라요.
작은게 좋더라구요. 손안에 쏙들어오면서 HD도 되는 것도 있더군요. SD 카드가 워낙 싸니까 그 카드 쓰는 것으로 하나 장만하시면 어디 놀러갈 때 휴대성은 끝내줄 거 같습니다.
사진은 1000회 포스팅 때 아는 분의 축하로 500기가 외장 하드를 장만해서 거기에 보관하고 있어요. 몇년치가 고스란히 다 들어있는데다가 데이터베이스화해서 찾아보기 좋게 해놓고 있어요. 워낙 사진을 많이 찍다 보니 관리도 신경을 써야 하거든요.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