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빈집

Photo by Kim Dong Won
그녀의 어머니.
나는 장모님이라 부르기도 하고 어머니라 부르기도 한다
2008년 9월 7일 돈암동, 그녀의 친정집에서

근처에 볼일이 있어 간 김에
그녀가 잠깐 돈암동의 친정집에 들렀다.
들르기 전, 전화를 했지만 받지를 않는다.
그녀가 집으로 들어가는 계단을 올라가면서
바깥에 이불이 널려 있는 걸 보니 집에 계신건데라고 한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돌리니
문이 스르르 열리면서 그녀를 맞아준다.
그녀가 들어가고 “엄마, 나야”라는 소리가 이어진다.
“아이쿠, 깜짝이야. 아니, 연락도 없이 뭔 일이니?”
그녀가 근처에 왔다가 들렀다고 말했고,
그 뒤에 짜잔하며 내가 나타났다.
“저도 묻어왔어요.”
전화를 받지 않은 것은 전화 코드가 뽑혀져 있기 때문이었다.
자리에 앉아 잠시 옛날 얘기 들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신다.
누구 누구의 이름을 하나 하나 짚어내며
그들에 대한 기억을 선명하게 불러낸다.
그녀가 자랑한다.
“우리 엄마 엄청 총명하시지?”
그렇게 오래 앉아 있지 못했다.
자리에서 일어서려니까 어머님이 그냥 가면 어쩌냐고 하신다.
밥할테니 먹고 가라고 했다.
그녀가 일이 있어 가야 한다고 자리를 일어섰다.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아니, 이렇게 가면 어떻게 하니. 어찌 빈집에 왔다 가듯이 가니.”
귀속으로 들어온 그 빈집이란 말이 마음 속을 깊이 파고든다.
어머니가 계시고,
어머니 얼굴을 본 것으로 딸의 마음이 가득찼을 텐데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빈집 다녀가듯이 간다고.
딸은 어머니가 집에 있고, 어머니 얼굴을 본 것만으로 마음을 채워가지만
어머니에겐 딸에게 밥 한그릇 먹여보내지 못하는 집은
아무도 없는 텅빈 빈집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렇게 딸에게 내놓는 따뜻한 밥 한그릇으로 자신을 채우신다.
딸을 그냥 보내는 어머니의 집은
어머니에겐 어머니가 하루 종일 안을 채우고 앉아계서도 빈집이다.
연락 못하고 지나는 길에 들른 어머니의 집에서 알게 되었다.
어머니의 빈집이 우리가 생각하는 빈집과 크게 다르다는 것을.
생각해보니 그녀도 항상 다른 무엇보다 딸을 잘 먹이는 일에 가장 열심이다.
공부 못한 것보다 딸이 거르고 지나간 한끼의 끼니를 가장 안타까워 한다.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딸의 도시락을 싸야 한다며
시장에 들러 반찬거리를 장만해 가지고 들어왔다.
그녀의 어머니에게 배웠나 보다.
따뜻한 밥으로 딸의 한끼를 채워주지 못하면
그녀의 집이 텅비어 버린다는 것을.
그녀의 어머니도 어머니이고,
이제 생각해보니 그녀도 어머니이다.
어머니의 집은 어머니로 채워지지 않는다.
어머니의 집은 딸에게 해주는 따뜻한 밥으로 비로소 채워진다.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 어머니의 집을 채우는 것이 어머니가 아니란 사실을.
어머니의 집은 어머니의 딸, 그녀가 채우고 있었다.
그리하여 알게 되었다.
나의 어머니가 항상 내게 채워주었던 그 세끼 식사의 뜻을.
이 세상 어머니의 집은 모두 어머니가 아니라
그들의 아들딸들이 먹는 세끼의 식사로 채워진다는 것을.

15 thoughts on “어머니의 빈집

  1. 핑백: 나무사이
  2. 며칠동안 좀 바빠서 글을 제대로 다 못 읽어서 리플도 못달고 안타까웠는데
    오늘에사 포토아카데미 듣고 와서 찬찬히 읽어 내려갑니다.
    역시 많이 남네요…. 이스트맨님 글은 가끔와서 다시 한번 더 읽게돼요~ ^^

  3. 아이 키우는 것도 힘들지만 부모님 잘 모시는 것도 열심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내리사랑이라지만 요즘은 부모님 생각에… 눈물이 찔끔..
    주말에 아이 유치원 파파스쿨에 갔다가 내내 두 생각에 아무일도 못하겠습니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1. 특히 제 경험엔
      하느님이 모든 일을 할 수 없어 세상에 어머니를 보냈다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장모님은 살아온 얘기하시는 걸 어찌나 좋아하시는지…
      하루 종일 사진을 찍으며 얘기만 들어도
      좋은 다큐가 한편 나오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언젠가는 찾아갔다가 동네의 시장에서 만났는데
      지금은 거동이 불편하셔서 잘 다니질 못하시더라구요.
      딸이 많이 안타까워 하고 있지요.

  4. 요즘 집사람하고 사이가 별로라서 덕분에 처가집에 전화도 안드렸는데…
    오늘은 전화드려야할 듯 싶네요.
    즐거운 주말 보내셨는지요?
    왠일로 이번 주말은 날씨가 좋았는데,
    꼭 날씨 좋은 날은 이상하게 방에만 있게 된다는..

    1.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집사람하고는 같이 있지도 못하는데 별로일 여지가 있나요? 갸우뚱. 오직 그리움밖에 없을 듯 한데… 합류하신 건가…
      주말은 아주 즐겁게 보냈어요.
      사람들만나 술잔부딪치면서…
      여긴 날씨가 아주 좋네요.
      이곳의 좋은 날씨처럼 정님 부부의 하늘도 맑고 화창하길 빌겠습니다.

    2. 합류를 못하고 계속 떨어져있는게 문제가 되는 것 같네요. 하루 이틀 이런 것도 아닌데.. 참 신기하게도..

    3. 그러면 사이가 별로인게 아니고
      서로 그리움에 사무치시는 중입니다.
      그리움은 나중에 만나시면
      그게 사랑의 다른 이름이란 걸 아시게 될걸요.
      빨리 합치게 되시길 비나이다.

  5. 딸에게 차려주는 따뜻한 밥 한 그릇…
    눈물이 핑 도네요.
    이번 가을 학기부터 홀로 보스톤에서 생활하고 있는 딸이 떠올라서…
    어머니의 얼굴 위로 딸을 향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어머니, 어머니…..

    1. 요즘 들어 함께 밥먹고 함께 잠자며
      아이낳고 살아간다는 것이 참 남다르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지루하도록 사소한 일상 속에
      삶의 가장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어머니란 그 삶의 가장 사소한 것들을 붙잡고 계신 이름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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