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버리고 만나는 곳, 몰운대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9월 3일 강원도 정선의 몰운대에서


시인 황동규는 그의 시 「몰운대행」에서
“31번 국도”를 타고 가다
“상동 칠랑에서 국도를 버리고
비포장 지방도로로 올라”섰다고 적어놓고 있다.
몰운대 가는 길은
그의 말대로 길을 따라 가는 여행이 아니라
사실은 길을 버리면서 가는 여행이다.
우선 우리는 떠나면서 서울을 버린다.
우리는 그렇게 종종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을 통째로 버리고 싶다.
그러나 서울을 버리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서울의 경계를 벗어났다고
곧바로 우리가 서울을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닌 까닭이다.
서울의 자장(磁場)은 그 폭이 매우 넓어
서울을 빠져나가는 고속도로를 타고 한참을 달린 뒤에도
길옆의 풍경에서 한동안 서울의 도시 냄새가 지워지질 않는다.
몰운대를 가던 날,
우리는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울을 빠져나갔다.
가다가 영동고속도로로 바꿔탄다.
중부고속도로는 110km 도로.
영동고속도로의 표지판에선 그 속도의 제한치가 100km로 낮아진다.
그럼 10km를 더 느리게 갈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영동고속도로로 들어선 순간, 우리는 10km의 속도를 버린다.
영동고속도로에서 중앙고속도로로 바꿔타고
제천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가 국도를 타는 순간,
우리는 다시 20km의 속도를 버린다.
영월을 지나 사북을 거의 눈앞에 둔 증산까지
우리는 빠르고 편한 그 길을 버리질 못한다.
증산쯤에서 우리는 이제 드디어 4차선으로 새롭게 단장된 그 국도를 버리고
산을 넘어가는 지방도로 올라선다.
그 순간 우리는 이제 길에 사탕처럼 달콤하게 발라져 있던 그 빠른 속도를
거의 모두 다 버리고 만다.
그래서 그때부터 우리는 그 지방도를 더듬거리며 길을 간다.
이쪽으로 한번, 저쪽으로 한번 끊임없이 곁눈질을 하며
그 길을 간 끝에서 우리는 드디어 몰운대를 만난다.
몰운대는 그렇게 길을 모두 버리고 나서야 만나는 곳이다.
하지만 아마도 우리가 만난 몰운대는
황동규가 오래 전에 만났던 그 몰운대는 아니지 싶다.
그는 비포장의 도로를 따라간 끝에 몰운대를 만났다지만
이제 그곳에 그가 “순살결, 저 날것”이라고 했던 비포장의 도로는 없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소나무와 전나무의 물결
가문비나무의 물결”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우리는 순살결을 더듬어갈 수는 없었지만
나무들의 그 물결 속을 헤엄쳐 갈 수는 있었다.
그러나 황동규의 몰운대,
그러니까 거의 모든 길을 다 버리고 만나는 몰운대를 만나려면
이제는 몰운대의 길도 버리고 정처없이 또 길을 가보아야 할 것이다.
다행히 강원도엔 아직도 그런 황동규의 몰운대가 여기저기 남아있다.
때로 세상엔 그렇게 길을 모두 버려야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서울을 버리고, 고속도로를 버리고, 국도를 버리고, 지방도를 버리고,
모든 길을 다 버린 그 끝에 우리가 찾아가고 싶어하는 곳,
바로 몰운대가 있다.

4 thoughts on “길을 버리고 만나는 곳, 몰운대

  1. 움켜 쥔 손을 펴야 더 많은 것을 집을 수 있는데
    한 번 잡은 것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대굴빡을 밀고 목탁을 두르리면
    새끼 손가락이라도 펼 수 있을까요?

    1. 말씀 듣고 보니 손을 펴기 위해 출가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유일하게 모든 손을 편 분이 부처님 같기도 하구요.
      그 손바닥에 세상이 다 들었으니까요.
      새끼손가락 하나도 못펴고 살다가
      물운대 가는 날 겨우 잠깐 펴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2. 길을 버리고 또 버리면서 만나는 몰운대…
    저도 그 몰운대 한 번 보고 싶습니다.
    모든 길을 다 버리고서야 만날 수 있는 ‘몰운대’는 아마도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고향과 같은 곳이 아닐까요.
    순 살결로 더듬으며 만날 수 있는 곳,
    존 레논의 ‘Love’가 겹처지는 것은 왜일까요.

    1. 그렇게 되겠지요.
      시인 황동규가 사람이 많은 곳에서 사람 냄새가 나질 않고
      오히려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사람 냄새가 난다고 하더군요.
      아마도 사람 냄새 나는 사람없는 그곳은
      고향의 다른 이름이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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