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운대 소나무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9월 3일 강원도 정선의 몰운대에서


몰운대 뼝대 위 소나무 한 그루.
고갯길 오르고 숲길 지나 찾아갔더니
묵묵히 마을만 내려다 보고 있다.
원래 나무는 앞뒤가 따로 없는 것이지만
나무가 마을을 내려다 보고 있다는 느낌 때문인지
내가 마주한 소나무에게선 소나무의 뒤통수 느낌이 난다.
한참 동안 뒤통수만 마주한 몰운대 소나무,
괜스리 그 눈길 한번 얻고 싶었다.
나 멀리서 왔단 말이야, 고개좀 한번 돌려봐.
그렇게 부탁해보고 싶었지만
내게로 눈길 돌리기엔
소나무의 목이 너무 굳어있었다.
마을로 내려가 절벽의 아래로 서면
소나무의 눈길을 얻을 수 있겠다 싶어
절벽 위의 걸음을 거두어 아래로 내려간다.
좀전에 내려다 보았던 물가의 낮은 자리에 서서
몰운대 소나무 올려보고 시선 맞추려 했더니
소나무는 이젠 짐짓 나몰라라 하늘로 팔 벌리고
해 너머가는 서쪽 하늘로 시선을 두고 있다.
절벽 위 소나무 곁으로 가까이 서서 높이를 맞추었을 땐
내 눈길을 아래로 내려 마을 풍경 채워주더니
마을로 내려가 높이를 낮추었더니
그새 몸을 돌려 또다시 뒤통수만 보여주며
해넘어가는 서쪽 하늘만 한가득 내 눈길에 건넨다.
끝끝내 나는, 몰운대 소나무, 그 눈길은 얻지 못했다.
아무래도 눈길을 나누어 줄 사람은 따로 있나 보다.
내가 그래도 눈치는 있는지라
몰운대 소나무, 그 눈길을 얻어보겠다던 고집은 이내 버렸다.
그 뒤로 나오는 길에 같이간 그녀와 간간히 눈을 맞추긴 했다.
흥, 나도 있다, 씨.

**뼝대: 바위로 이루어진 높고 큰 낭떠러지를 뜻하는 강원도 말.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9월 3일 강원도 정선의 몰운대에서

11 thoughts on “몰운대 소나무

  1. 눈이 엄청 내렸을 때 가보면 또 다른 맛이 느껴질 것 같습니다.
    몰운대 소나무는 갈아입을 옷이 없는 것 같은데
    겨울이 되면 하얀 바바리 코트를 입고 서 있을 것 같습니다.

    몰운대는 왜 모른대!!
    비탈출신인데도 몰운대를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동해안에 사는 사람이 휴가는 서행안으로 가는 이치와 같겠지요.ㅜㅜ

    1. 저는 황동규의 시 때문에 이름은 많이 듣고 있었죠.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의 하나구요.
      제 고향 영월의 바로 곁인데 교통이 워낙 험해 여전히 엿보기가 쉽지가 않더군요.
      시간 나는대로 자주 가고 싶어요.

    1. 저도 검색을 하다가 부산에 몰운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는 처자가 고향이 정선이란 걸 알고 한번 갈까요, 그래볼까, 에이 가보자하고 떠난 여행이었어요.
      부산에는 꼭 가봐야죠.
      기회가 되면 꼭 가겠습니다.
      플라치도님의 추석에 즐거움이 넘치길 빌겠습니다.

  2. 나무의 뒤통수라니!! 재밌습니다.
    단한번도 나무는 보이는 모습 그자체로만 느껴졌을뿐 전후가 있으리라 생각 해 본적이 없었는데 집요하게 눈맞춤 해보시니 어떠시던지용~ ㅋㅋㅋ

  3. 황동규 님의 시집을 끼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시 갈피 갈피 마다 바람 냄새가 묻어 있는 시집…
    자동차를 몰고 무작정 어디론가 훌쩍 떠다니는 시인의 모습이
    몰운대의 소나무를 닮은 듯 휑한 바람소리가 느껴집니다.
    동원님의 카메라 렌즈에도 그 바람 소리가…

    1. 몰운대 갔더니 몇몇 시인들의 시도 마련해 놓았더군요.
      하지만 황동규 시인의 시는 없었어요.
      최근에 마련한 것인지 표지들이 반짝반짝 했어요.
      좀 오래되었어야 몰운대에 어울리는데 말이죠.
      세월이 흐르다 보면 몰운대에 어울리게 되겠지만요…
      오늘은 가까운데 나가보려구요.

  4. 핑백: fore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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