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블로거의 주말 농장에 놀러갔다.
주말 농장이라 그런지 그에 걸맞게 주말에 불러주었다.
농장이란 말은 넓고 큰 울림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앞에 주말이란 수식어구를 덧붙이면
농장이란 말은 갑자기 그 규모를 아주 소박하게 줄인다.
그러니까 주말 농장은 크고도 작은 농장이다.
큰 것은 그곳에서 밭을 가꾸는 사람들이 가진 땅에 대한 넓고 깊은 꿈이고,
작은 것은 고랑 두 개 정도의 소박한 크기이다.
그 농장에 갔더니 배추와 고구마가 자라고 있었다.
밭가에선 그 작은 농장을 허수아비가 지키고 있다.
머리엔 비닐을 뒤집어 쓰고 있다.
아마 비내리면 빗소리가 머리를 짜작짜작 울릴 듯 싶다.
그러니 비오면 비가 아니라 제대로 빗소리에 젖을 것이다.
처음 보고는 그냥 늘상 보던 허수아비려니 했다.
주말 농장을 하고 있는 이가 그 허수아비의 사연 하나 들려준다.
원래는 예쁜 치마를 구해다 입혀놓았는데
어느 날 와보니 누가 벗겨갔더란다.
-아니, 그럼 허수아비 아저씨가 아니라 허수아비 아가씨였어?
이런 갑자기 민망해진다.
허수아비의 아래쪽으로 상상력이 파고 들고,
비록 다리를 한쪽으로 포개긴 했지만
휑하니 아래쪽을 드러낸 허수아비 아가씨의 모습은 무척이나 야했다.
그 야한 모습은 갑자기 허수아비를 바라보는 시선을 민망하게 만든다.
허수아비의 옷을 벗겨간 사람아,
그게 그냥 아무 것도 아닌 허수아비 같아도 그렇지가 않단다.
옷을 벗겨간 빈자리가 텅비어 있는 것 같지만
사연을 알고 나면 상상력이 곧바로 그 자리를 채운다.
그럼 허수아비 아가씨는 그때부터 들판 가운데 대놓고 벗고 선다.
굳이 옷이 필요하더라도
부탁이니 치마는 좀 벗겨가지 마시라.
빈 자리는 때로 아무 것도 없는 빈자리가 아니다.
9 thoughts on “허수아비”
허수아비는 늙지도 않나 봅니다.
허수는 잘 있는지 모르겠네요.
다음에 또 가면 물어봐야 겠네요.
제가 좋았지요, 뭐.
익어가고 있던 벼의 논이며, 들깨며, 함께 사진에 담았으면 좋았을텐데… 그만 먹고 마시고 노는 재미에 팔려서… ㅋ
이것이 그 말로만 듣던 주말농장이란 것이군요. 🙂
그런데, 치마는 거참 누가 가져갔을까요.
혹시 나중에 우연히라도 알게 되면 제게 좀 알려주세요.ㅋㅋ
이 허수아비가 그 허수아비였군요.
좋으셨겠네요.. 저도 또 한 번 뵙고, 막걸리와 녹두 빈대떡을 먹고 싶네요.
영국가면 녹두 빈대떡은 아니더라도 한 번 만들어 먹어야겠네요.
막거리는 어디가서 구하나…..
술이란 술은 죄다 등장했답니다.
맥주, 복분자주, 막걸리, 소주…
얘기보다는 거의 노래판 분위기였다는…
마지막 지하철을 겨우 타고 집에 왔어요.
저도 상상력 따라서 움직여 봅니다. ㅎㅎ
허수아비 아가씨…
귀여운
김포 들녁을 바라보니 고향 생각이 간절하네요.
내 고향 김포…
고향이 김포시군요.
벼들이 익어가고 있더군요.
군데군데 건물과 아파트들이 시선을 걸고 넘어지긴 했지만
김포는 여전히 너른 논밭들을 펼쳐놓은 평야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