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고 가는 여자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9월 7일 서울의 밤거리에서


자정을 넘겨 시간이 깊어지자
밤은 거리에 어둠을 짙게 한 겹 깔았습니다.
어둠을 짙게 깔아놓으면 그때부터 길은
짐작할 수 없는 심연의 깊이를 갖기 시작합니다.
어둠의 깊이를 짐작할 수 없으면
아무도 그 길로 발을 떼지 못합니다.
밤새도록 길을 오가야 하는 도시에선
아무리 밤이 깊어도 길에 어둠을 너무 짙게 깔아두진 못합니다.
그래서 어둠의 시간에도 어둠을 쫓아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둠을 쫓아내는 일은 가로등이 맡습니다.
가로등이 눈을 부릅뜨면
한떼의 어둠이 거리를 쫓겨납니다.
지나는 차들도 눈을 부릅뜨고는
차앞의 어둠을 좌우로 쫓아내며 길을 갑니다.
불빛이 눈을 부릅뜨고 어둠의 한떼를 쫓아버리면
밤늦은 시간의 짙은 어둠은 크게 묽어집니다.
어둠은 묽어지면 그때부터 길 위를 엷게 찰랑거립니다.
어둠이 엷게 찰랑거리는 늦은 밤의 길 위로
노란 옷을 입은 한 여자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습니다.
내가 탄 버스는 무심히 그녀를 팽개치고 앞으로 가고,
그녀가 탄 자전거도 무심히 버스의 차창 속 나를 팽개치고 앞으로 갑니다.
하지만 엇갈리는 잠시의 순간에 내 시선은
노란 옷을 입은 그녀의 자전거를 따라갑니다.
밤늦은 시간, 노란 옷을 입은 한 여자가 자전거를 타고
어둠이 엷게 찰랑거리는 거리를 지나가면
그녀는 지나가면서 내 시선도 앗아가 버립니다.
시선을 빼앗기고 나면 그 뒤로 한참 동안
세상이 온통 깜깜합니다.

4 thoughts on “자전거를 타고 가는 여자

    1. 전 집에서 자전거 타고 나가 여의도까지 갖다 오곤 했지요.
      처음 자전거가 생겼을 땐 거의 매일 자전거를 타고 한강에 나가곤 했는데… 지금은 시들.
      요즘은 자전거보다 그냥 한강에 나가 걷는 걸 더 좋아해요.

  1. 사진속은 대낮처럼 환하게 느껴집니다.
    그녀의 노란 옷이 어둠을 흡수했기 때문일까요.
    버스 차창으로 언듯 스쳐 지나가는 한 여자…
    그녀는 어둠을 뚫고 어디로 가고 있었을까요…

    1. 아마 집에 들어가 남편곁에 누웠지 않았을까 싶어요.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그 집 남편은
      밤길을 달려와 세상을 환하게 밝혀놓고 곤히 잠든
      그만의 아침을 보았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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