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기다리며 잠시 앉아 있는 사이,
눈 앞에서 두 여자가 스친다.
잠시 눈은 마주쳤지만 둘은 모르는 사이이다.
나도 그 여자들을 모른다.
우리들은 모두 스쳐 지나갔다.
매일매일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치지만
도시에선 거의 대부분 이름을 모른다.
서울은 거대한 익명의 도시이다.
서로의 이름과 얼굴을 모르는 도시.
때로 사람들은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아는 이가 하나도 없다는 이유로
이 도시에서 홀로 있을 때보다 더 심한 고립감을 앓기도 하지만
나는 가끔 상상한다.
아는 사람과 말도 하지 않고
지하철을 기다리거나
오랜 시간 지하철을 같이 타고 가는 경우를.
그것만큼 시간과 공간이 어색하게 굳는 경우도 없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익명의 존재들은
아무리 오래 함께 차를 타고 가도
그런 어색함을 강요하는 법이 없다.
익명의 존재들은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지워준다.
나도 그들의 바로 옆에, 혹은 앞에 있으면서도
내 존재를 지워준다.
그래서 익명의 도시에선 함께 있어도 자유롭다.
내 앞에서 두 여자가 스친다.
모르는 사이이다.
둘이 서로 스치면서 자신들의 존재를 지워
서로 자유를 주고 받는다.
너는 나의 자유이고,
나는 너의 자유이다.
10 thoughts on “서울, 그 익명의 도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익명의 존재들…
이 시대의 새로운 모습들이 아닐까요.
우표의 소인이 찍히지 않아도 어디선가 메일이 날아 드는…
참으로 새로운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그 익명의 존재들이 가꾸어가는 풍경이
꽤 괜찮다는 생각이 자꾸 들곤 합니다.
조용히 관찰해 보면 삐걱거리는 측면도 있지만
은근히 남들 배려하는 경우도 눈에 띄곤 하거든요.
그게 서로 익명의 존재라서 가능하다는 느낌이 들곤 해요.
아는 얼굴이면 너 왜 그렇게 하고 다니냐고 금방 타박할 스타일도
익명의 존재가 되면 그냥 보고 씩 웃으면서
지나가 줄 수 있는 여유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가끔 그 익명의 바다가 더 편안하게 느껴지곤 해요.
선배님 안녕하세요…저 경제학과 87학번이고 예전에 성권이형이랑 학교신문사에서 일했던 임화인입니다. 기억하시죠.. 세월에 묻혀 살다보니 지난 시간은 추억이란 이름으로만 남아있네요…저도 이제 불혹의 나이인데, 늘 마음속에 물혹만 가득 담고 사는것 같습니다. 우연히 선배님 블로그를 알게 되어 요즘 매일 아침에 접속해서 재미나게 읽고 있습니다…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시네요…이게 선배님께 보내는 최대의 찬사겠지요…늘 건강하시고,,,이렇게라도 선배님과 소통하게 되어 기쁘고 흥미롭네요…
오, 화인씨.
정말 오랜만이네요.
화인씨도 여전할 것 같아요… 전 정말 말대로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냥 그저 그렇게… 점용씨랑 모두 함께 모여 언제 술이나 한잔 합시다.
이 느닷없는 연락의 행복감이란… 오늘 아침 갑자기 기분이 업되네요. 좋은 내 후배님, 항상 행복하고… 그리고 건강하기예요.
55년동안 일기를 쓰신 분이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고하죠.??
동원님의 블로그도 날마다 쌓여가는데.. 아침마다 보는 글들이 참 시각이 다양해서 좋아요.. 카메라 너머로 바라보는 일기같다고 할까??
가끔 글 남기지만 댓글도 잘 달아주시고.. 오늘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졌어요.
건강하시길…
전 아이키우는 사람들에겐 꼭 블로그를 권하죠.
아이들 일상만 잘 기록해도 아마 보석같은 블로그가 될 것 같아요.
며칠 전에 그녀랑 얘기하다가 웃었어요.
처음엔 댓글 달아준 사람이 자신밖에 없었는데 이제 블로그 많이 컸다며…ㅋ
타자의 존재가 나의 존재를 살려주기도하고,
타자의 부재가 나의 존재를 살려주기도하고…
어찌보면 모순적인 것이 ‘타자’인게 아닐까 하네요.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정말이예요.
안다는 게 오히려 굴레처럼 느껴질 때도 많고… 처음 만나는 잘 모르는 사이에서 오히려 자유롭게 얘기 나누면서 즐거울 때도 많고… 모든 관계가 획일화된 규정을 거부하는 시대같아요.
익명의 존재들은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지워준다.
정말 그런 것 같네요. 🙂
아마 그 밤에 지하철이 들어오는데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면 두렵기까지 했을 듯…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 두려움도 지워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