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만약 당신이 그녀를 사랑한다면,
그리고 당신이 사랑하는 그녀가 서쪽에 살고 있고, 당신은 동쪽에 살아,
당신들 둘 사이에 사랑하는 사이로선 감내하기 어려운 아득한 거리가 가로놓여 있다면,
그리고 당신들이 결코 함께 지낼 수 없는 사이라면,
당신은 그녀에게 문자를 보내면 된다.
문자를 보내기 전에 우선 당신이 해야할 일은
그녀의 습관 하나를 알아두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녀가 잠자는 시간이다.
그녀가 직장을 다닌다면 그녀의 잠자는 시간은
아무리 편차를 가진다고 해도
밤 12시를 가운데 두고
한두 시간 정도 늦거니 빠르거니 하면서
매일매일 어느 일정한 시간에
반복적으로 그녀를 잠으로 끌어들이고 있을 것이다.
그녀가 프리랜서라면 그녀의 잠자는 시간은 그와는 전혀 다를 수 있다.
내가 물었더니 당신의 그녀는 보통 새벽 네 시에 잠에 든다고 했다.
만약 그녀가 밤 12시에 잠이 든다면, 당신은 12시 50분쯤에,
만약 그녀가 새벽 4시에 잠이 든다면, 당신은 4시 50분쯤에,
당신의 그녀에게 문자를 보내면 된다.
문자의 내용은 간단하게 하라.
“보고 싶다. 나올 수 있겠니? 어쨌거나 나는 오늘 너를 보러 가겠다.”
다행스러운 것은 문자라고 하는 그 요상한 것이
당신의 몸은 실을 수 없어도
당신의 마음은 싣고 바람같이 내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자는 당신의 마음을 싣고
단 3초만에 그 아득한 당신들 사이의 거리를 내달아 그녀의 곁으로 도착한다.
중요한 것은 문자가 그녀의 곁에 도착했을 때
그녀가 잠들어 있다는 것이다.
당신의 문자는 그녀가 잠든 뒤 50분을 기다렸으므로
당신의 그녀는 분명 잠 속으로 아주 깊이 빠져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당신의 마음은
잠든 그녀의 옆에 누워
다음 날 아침 그녀가 눈을 뜰 때까지
한밤을 고스란히 그녀와 함께 보낼 수 있다.
그 이외에는 그녀에게 문자를 보내지 말라.
한낮에 보내는 문자로는 그녀의 옆으로 몸을 눕히고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행운을 기대할 수 없다.
한낮에 보낸 문자는 그녀의 옆이 아니라 손아귀 속으로 날아간다.
손아귀 속의 당신 마음은 아마도 짐작컨데 숨이 막힐 것이다.
물론 전화를 걸어도 안된다.
사랑하는 사이라면 시도 때도 없이 통화를 해대며
목소리라도 서로를 나누어야 할 것 같지만
그런 사랑은 너무 일상적이고 습관적이다.
당신이 그녀를 사랑한다면
그렇게 곧바로 확인이 되고, 곧바로 귓전에 담았다가 흘려버리는
한낮의 문자나 통화는 당신들 사이의 그 아득한 거리만을 확인시켜 줄 뿐이며,
그렇게 확인된 거리는 사랑에 대한 당신들의 갈증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런 갈증나는 사랑은 버리라.
대신 그녀가 잠든 시간을 알아내고
그녀가 깊은 잠에 빠졌을 즈음에 그녀에게 문자를 보내라.
그러면 문자에 실어보낸 당신은
당신의 그녀가 다음날 눈을 뜰 때까지
그녀의 곁에서 밤새 그녀의 잠을 들여다보며 그녀와 함께 지낼 수 있다.
그녀의 곁에서 그녀의 잠을 보살피며
밤새도록 깨어있는 사랑만큼 행복한 것도 없다.
(그녀)
만약 당신이 그를 사랑한다면,
그런데 당신의 사랑이 동쪽에 살고 있고, 당신은 서쪽에 살고 있다면,
그래서 당신들 사이에 마음을 먹고 집을 나서도 한두 시간이 족히 걸리는 아득한 거리가 가로놓여 있다면,
그리고 당신들이 결코 함께 지낼 수 없는 사이라면,
당신에겐 그저 핸드폰이 하나 있으면 된다.
그렇다고 그 핸드폰으로 그와 시도 때도 없이 통화를 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냥 그 핸드폰은 보통 때는 일상적 용도로 사용하시라.
하지만 당신이 잠잘 때면
항상 그 핸드폰을 당신의 숨소리나 당신의 체취가 느껴질 거리에
곱게 눕혀놓으라.
그리고 잠자는 시간을 일정하게 가져가시라.
세상사는 일이 호락호락하지 않으므로
그날그날의 일에 따라 잠자는 시간도 출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므로
어찌 잠자는 시간을 일정하게 가져갈 수 있겠냐마는
가급적 당신은 일정한 시간에 잠자리에 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당신의 그가 당신의 잠자는 시간을 묻는다면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곧바로 가르쳐 주시라.
그러면 어느 날,
핸드폰의 문자 신호음이 당신의 어깨를 흔들어
당신의 잠을 깨우는 아침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보게 될 것이다.
당신이 사랑하는 그가 밤새도록 당신의 곁에 함께 있었음을.
당신이 그를 사랑한다면
그가 제 핸드폰의 문자판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눌러 제 무게를 싣고,
그렇게 하여 그의 무게로 그의 마음을 문자에 얹고,
지난 밤 당신의 잠이 깊은 꿈속으로 빠져들었을 즈음에,
그의 마음을 당신 곁으로 보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내 짐작으로 보자면,
그 아침만큼 기억에 남을 눈부신 아침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당신은 당신의 그가 그의 마음을 당신의 곁에 눕힐 수도 있도록
당신의 밤을 배려해야 한다.
그리고 당신이 깨어났을 때,
그가 어디에 있는가를 물어 이제 그를 만나러 나가면 된다.
그는 결코 서두르거나 조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당신 곁에 그의 마음을 눕혀둘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떨어져 있는 사랑은 갈증으로 목마르나
이 시대의 사랑은 떨어져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2 thoughts on “문자의 사랑”
정말 아침에 그런 문자를 확인한다면 참 행복하겠어요.
이럴땐 주말부부라면 시도해봤을걸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도 자주 생각지도 못한 문자를 받곤해서 남편에게 참 고마워요.
가령 지난 주일날 같이 예배를 드렸는데 남편은 먼저 차를 가지러 갔었고
천천히 나오면서 핸드폰을 보니 문자가 와있더군요.
오늘이 부부의 날이래. 미안하고 사랑해..라고.^^
뭐가 미안하단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좋더군요.^^
남자들은 보통 여자를 데려다 고생시켰다는 생각이 들 때면 미안한 생각이 가장 많이 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