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을 내내 같이오다
마천가는 열차와 상일동가는 열차가 방향을 나누는 지하철역, 강동역.
홍대에서 아는 사람들 만나 술마시고 집으로 가는 길,
마천가는 열차를 보낸 사람들이 강동역에 내려 다음 열차를 기다린다.
함께 열차를 내린 중년의 한 남자가 눈을 감더니
조심스럽게 시각장애인용 유도 블록 위에 선다.
그는 블록 위를 벗어나지 않기 위해 조심하면서
천천히 뒤로 걷기 시작한다.
발로 바닥을 더듬거리며
멀리 출구의 계단까지 천천히 뒤로 걸어간다.
잠깐 점자 블록을 벗어날 기미를 보이면
그가 몸을 휘청거리다가 다시 균형을 잡곤 한다.
출구의 계단에 도달한 그는
다시 몸을 돌려 또 뒤로 천천히 걸어 내 앞까지 왔다.
늦은 밤엔 열차가 아주 뜸하게 온다.
열차가 오기까지 그는 두 번 반을 그 길을 뒤로 왕복했다.
그가 천천히 뒤로 걷는 동안
몇몇 사람이 걸음을 급하게 떼어놓으며
그의 옆을 스쳐 앞으로 걸어갔고,
건너편으로 들어온 열차도 잠깐 역에 머뭇거리다가는
이내 빠른 속도로 앞으로 달려나갔다.
천천히 뒤로 걷고 있는 그의 걸음 때문에
앞으로 걷는 걸음들은 더욱 급해보였다.
그래, 그도 두 눈을 부릅뜨고 앞을 달려 오늘에 이르렀으리라.
우리 모두가 그렇게 두 눈을 부릅뜨고 앞으로 달리고 있으리라.
그러나 이제 그가 두 눈을 모두 감고 천천히 뒤로 발을 옮겨놓으며
부릅뜨고 앞으로만 달리던 우리의 삶을 뒤로 돌리고 있었다.
뒤로 걷는 동안 내내 그의 표정이 편안해 보였다.
마침내 열차가 오자 그는
눈을 감고 뒤로 걷던 그 편안했던 느린 보행을
강동역의 시각장애인용 유도 블록 위에 내려놓고
다시 나와 함께 같은 열차에 몸을 실었다.
열차는 여전히 급한 속도로 앞으로 달려가고 있었지만
이 도시에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천천히 뒤로 걸어
삶의 속도를 뒤로 돌리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자
모두가 눈을 부릅뜨고 앞으로만 달리는 이 도시에서도
살아갈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차에서 내리고 난 뒤
발걸음이 기분좋게 나를 싣고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2 thoughts on “뒤로 걷는 남자”
요즘 세상에 뒤로 걷는 남자도 참 대단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세상에서 유심히 살펴 본
그 한 분도 못지않게 대단하십니다.
그럼 그 분과 저의 합작품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