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백남준의 작품을 직접 마주한 것은
양평에 있는 바탕골 예술관에서 였다.
「거북선」이란 작품이었다.
한층의 전시관을 온통 모두 차지하고 있어
거북선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구경을 했었다.
모양은 거북선 모양이었지만
가운데의 허리춤을 텔레비젼 스크린으로 장식하고 있었고
스크린 속에선 끊임없이 0과 1이 흘러가고 있었다.
거북선이 이제 디지털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상당히 인상적이었고,
그때 처음으로 백남준이란 이름이 그냥 얻어진 것은 아니란 느낌을 받았다.
두번째로 백남준의 작품을 직접 접한 것은
여의도의 산업은행 건물에서 였다.
그 은행에 근무하던 친구를 만나러 간 길이었다.
로비에서 서성거리다 백남준 작품인줄도 모르고
그냥 백남준 작품에 걸터앉아 친구를 기다렸다.
아래쪽이 상당히 앉기 편안하게 되어 있었다.
잠시후 수위 아저씨가 기절할 듯한 표정으로 달려왔다.
젠장, 그제서야 알았다.
그게 백남준의 작품이란 것을.
비디오를 켜놓지 않으면
고물쌓아놓은 것과 잘 구별이 가지 않는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비디오를 켜놓지 않은 백남준의 작품은
완고하게 눈을 감은 채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어쨌거나 그때까지도 나에게 백남준은 비디오 예술가였다.
9월 23일, 뮤지컬 「명성황후」를 보러 세종문화회관에 갔다가
로비에서 세번째로 백남준의 작품을 만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작품의 느낌이 다른 두 번의 경우와 확연하게 달랐다.
보통은 백남준의 작품을 비디오 예술로 소개를 하는데
작품을 소개하는 명판에 이번 작품은 비디오 조각으로 되어 있었다.
작품명은 「호랑이는 살아있다(Tiger Lives)」라고 되어 있었고
중간에 한국 민화 속의 호랑이 그림이 나오고 있었다.
나를 사로 잡은 것은 비디오 조각이란 말이었다.
백남준의 작품은 마치 탑처럼 솟아 있었다.
혹시 백남준이 꿈꾼 것은 비디오 예술이 아니라
살아있는 조각이 아니었을까.
조각은 굳어있다.
아마 그가 호랑이 조각을 했더라면
그 호랑이 조각도 굳어있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조각 「호랑이는 살아있다」에선 호랑이가 움직인다.
그가 비디오에서 본 것은 새로운 예술의 매체가 아니라
혹시 굳어있던 조각에 동적 움직임을 불어넣어줄 일종의 숨결이 아니었을까.
세번째로 본 백남준의 작품은 그렇게 살아서 움직이는 조각이었다.
그렇게 보면 그의 예술은 살아 움직이는 조각에 대한 한 예술가의 꿈이었다.
생각해보면 시인 오규원도 그랬었다.
말년에 그도 살아있는 시를 쓰고 싶어했다.
그는 살아있는 그 시를 날(生)이미지의 시라고 명명했었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시가 아니었다.
실제로 세상의 모든 것들은 살아있는 것 같아도
사실은 살아있다기보다 일상적 이미지 속에 굳어있다.
내가 사는 세상에선 떡갈나무가 잎과 줄기를 무성하게 피운 상태로 굳어있지만
그의 날이미지 세상에선 떡갈나무가
“잎과 줄기를/잎의 자리와 줄기의 자리에/모두 올려놓”고 살아 있다.
“아무 것도 말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말하는” 세상,
“내 마음이 아무 것도 안 가진 채,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은 채 그득”한 세상,
그가 날이미지의 시로 꿈꾼 세상이었다.
아마도 오규원은 등기된 현실 속에 묶여 굳어 있는 세상을
살아서 펄펄 뛰게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백남준이나 오규원이나 둘 다 꿈꾼 것은 같은 세상이었다.
굳어있지 않고 살아 숨쉬는 세상, 그게 그들의 꿈이었다.
2 thoughts on “백남준의 비디오 예술과 오규원”
백남준님이 표현 하고 싶었던 것은
만주벌판을 호령하던 호랑이의 기개가 아니었을까요?
한편의 시로 살고 싶었던 오규원님
모두 뜨겹게 생을 살고 싶으셨던 분 같아요
그 분들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이전에 동원님의 날이미지 글도 인상깊게 읽었답니다^^
백남준 작품도 난해해서 한번 봐선 곧바로 알기가 어렵더라구요.
그렇다고 매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구…
호랑이 영상은 아주 잠깐 나와요.
그나저나 그런 예술가가 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이란 건 참 뿌듯한 일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