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강변

Photo by Kim Dong Won
2003년 10월 26일 경기도 양평에서


가을엔 사랑하는 연인과
강변을 걷고 싶습니다.
나무들이 단풍잎으로 물들어
붉거나 노란빛으로 절정에 올랐다가
그 잎을 적당히 내려놓을 때쯤이면
더더욱 좋을 듯 싶습니다.
아마 그때쯤이면 나무들이 빈가지를
몇 개 남지 않은 잎으로 가까스로 여미고 있겠지요.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가지에 소름이 오스스 돋고
다소 쌀쌀한 그 찬 기운 때문에
빈가지 사이가 더욱 비어보일지도 모릅니다.
가을엔 아마 우리의 가슴도
잎을 털어버린 나무가지 사이의 텅빈 느낌을
함께 앓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랑도 마냥 푸를 수만은 없겠지요.
아마 절정에 올랐다가 잎을 털어낸 나무처럼
한 계절을 앙상하게 보내야할 시절이 오겠지요.
하지만 강변에 서면
나무들이 빈 가지의 그림자를 아래로 뻗어
강물 깊이 담그고 잔잔히 흔들리곤 합니다.
강물은 그때쯤이면 나무가 빈 가지의 그림자를 내려
털어낸 나뭇잎의 빈자리를 위로 받는 넓고 잔잔한 가슴이 됩니다.
가을엔 나무 그림자가 강물 바닥에 비치는 강변을 따라
연인과 함께 천천히 걷고 싶습니다.
쌀쌀해진 날씨를 맞잡은 손의 온기로 무마하며
천천히 둘이 걷다 보면
곁의 연인이 빈 가지의 그림자를 내린
나의 강물 같아질 것 같습니다.
가을엔 강변에 나가
강물에 빈가지의 그림자를 내리고
그 넓은 가슴에 기대는 나무처럼
사랑하는 연인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걷고 싶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3년 10월 26일 경기도 양평의 양근대교 위에서 바라본
떠드랑섬 풍경

8 thoughts on “가을 강변

  1. 이런, 주제 파악을 못한…ㅎㅎ
    사물을 보는 눈, 심상…모든 것이 멀었는데 카메라 탓만 하고 있었으니요.
    전 아마도 계속 똑딱이로 갈듯해요.
    가끔씩 똑딱이도 여행에 방해가 되서…계륵입니다.
    안가져가면 아쉽고, 가져가면 분위기 방해하고…

    1. 그 똑딱이 카메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곤 해요.
      지금이야 디카없는 사람이 없지만
      제가 구입할 때만 해도 흔치않았던 물건이라
      그걸 들고 대포만한 좋은 카메라옆에서 보란 듯이 사진을 찍었거든요.
      저건 도대체 뭐냐는 사람들 눈초리즐기면서…

  2. 지난번 이 사진 한참 들여다 봤어요. 달려가서 무조건 걸어볼까 하는 충동이…똑딱이도 부담스러워 놓고 다니면서 이런 풍경들 보면 카메라 장만 해볼까 하는 유혹에 가끔 무자비하게 노출되곤 해요.

    1. 이걸 어쩌죠.
      이건 똑딱이로 찍은 건데…
      똑딱이를 한 3년 정도 사용하다가 현재의 카메라를 장만했어요.
      지금 카메라로 찍었다면 아마 도저히 못참으셨을 듯… ㅋ

  3. 강변을 따라서 ‘연인’과 천천히 걷고 싶은 마음…
    왠지 가슴이 부풀어 오릅니다.
    더 깊어지는 물빛처럼 나무도 가을을 바라보는 저의 가슴도
    잔잔히 흔들리고 있습니다.

    1. 단풍과 추수의 계절이라
      이 맘 때의 한국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연인과 함께 하면 그 아름다움이 더욱 아름다워지고…
      혼자하면 더 쓸쓸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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