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 2008 가을 전시회

10월 11일 토요일에 간송미술관에 다녀왔다.
간송미술관은 서울의 성북동에 있다.
일년에 봄과 가을로, 5월과 10월에 딱 두 번만 2주씩 문을 연다.
이번 가을 전시회는 10월 26일까지라고 한다.
문열기를 기다리는 동안 미술관 주변에서 가을꽃과 만난 시간도 좋았다.

Photo by Kim Dong Won

아부틸론.
꽃모양이 예뻐 사람들 눈길을 많이 끈다.
브라질 출신이라고 한다.

Photo by Kim Dong Won

산국.
몇 해 전에도 이곳에서 찍은 산국이 예뻤는데 올해도 여전하다.
남한산성에도 산국이 흔한데 한번 산국만나러 가야겠다.

Photo by Kim Dong Won

왜 너의 가을은 이렇게 붉은 것이니?
—여름내 무더위와 싸우며 잘들 견디다가
가을만 되면 너희들이
마음이 텅빈 것 같다느니 뭐니 하면서
너무 쓸쓸해 하잖아.
그 고질병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이렇게 고운 색이라도 그 빈 마음에 채워주는 거지.

Photo by Kim Dong Won

콩콩콩 콩콩콩.
담쟁이 덩쿨이 머리로 난간을 들이 받으면서
올 한해 길을 찾다 결국은 난간 아래서 걸음을 마무리했다.
내년에는 부디 계속 옆으로만 가지 말고
조금 난간 바깥으로 머리를 내밀어 보시길.

Photo by Kim Dong Won

낙산홍.
낙산홍 나무에 붉은 열매가 달렸다는 생각을 버려 보시라.
나무가 붉은 열매를 가지런히 가지에 얹어
우리에게 내밀고 있다고 생각하면
나무와 우리 사이의 거리가 많이 좁혀진다.
그렇다고 꼬치 요리를 생각하진 마시고.

Photo by Kim Dong Won

미술관 주변의 석상.
나뭇잎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햇볕이
얼굴과 머리 위를 어른거리며
그림자를 손길처럼 뻗어 석상을 쓰다듬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돌로 만든 부처님이니
원래는 단단한 표정을 갖고 계셨을 것이다.
그 표정 조금씩 떼어 나누어준 모양이다.
누구에게 준 것일까.
바람에게 준 것일까,
아니면 비가 찾아올 때마다 조금씩 나누어준 것일까.
부처님 표정을 나누어간 날에는
바람도, 비도, 부드럽고 온화했을까.

Photo by Kim Dong Won

왜 너의 가을은 이렇게 투명하도록 노란 것이니?
—개나리의 정기를 이어받아서 그래.
하하, 농담이구, 사실은 빛에 물들어서 그래.
너희들도 빛을 쐬지 말고 빛에 물들어봐.
그럼 네 안의 색으로 투명해질 거야.

Photo by Kim Dong Won

안녕, 여름이여.
가을옷으로 갈아입을 채비를 하면서
단풍잎이 여름에게 고별의 손을 흔들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간송 전형필 선생상.
아마 선생이 없었다면 우리나라 문화재의 상당 부분은
지금쯤 여전히 제가 태어난 나라를 잃은 채
해외의 어딘가를 헤매고 있었을 것이다.
문화가 수탈되고 뿌리뽑혀 유랑의 운명이 되면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도 뿌리뽑힌 존재가 되고 만다.
신윤복이나 김홍도의 그림, 김정희의 붓글씨 앞에 서서
그 뿌듯함으로 가슴을 채워보면
누구나 문화가 갖는 의미의 소중함을 실감하게 된다.
그건 좋은 작품을 본 뿌듯함에
그것이 우리 것이라는 또 다른 뿌듯함이 더해진 남다른 뿌듯함이다.
전형필 선생이 바로 그것을 지켜주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인건님.
할아버지가 세운 뜻을 손자가 이어가고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잠깐 얘기 나누는 forest님과 인건님.
바쁜 사람이라 얼굴보기가 어렵다.
전시회를 빌미로 잠깐 얼굴을 보았다.
정말 몇년 만에 본 것 같다.

Photo by Kim Dong Won

미술관 2층에서 전시 작품을 둘러보는 사람들.
신윤복의 그림은 1층과 2층에서 모두 접할 수 있었다.
원화가 갖는 위력은 가서 직접 실감들 하시라.

Photo by Kim Dong Won

최완수 학예실장님.
항상 한복 차림이시다.
그는 한복을 입고 있다기보다 한복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문화를 지키고 있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뒤쪽으로 간송미술관의 원래 이름인
보화각의 현판이 보인다.

Photo by Kim Dong Won

이번 가을 전시는 보화각 설립 70주년을 기념하는
서화 대전으로 열리고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석류.
미술관 바깥에선 석류가 영글고
미술관 안에선 풍성하게 영근 우리의 문화가
미술관을 찾은 사람들의 마음을 채워주고 있었다.
사람들이 워낙 많이 찾아 많은 시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항상 기다린 시간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미술관이다.

11 thoughts on “간송미술관 2008 가을 전시회

  1. <10월 18일 토요일에 간송미술관에 다녀왔다.>
    어제 다녀왔어요.
    줄을 아주 길~게 길게 섰다가
    아주 왁자왁자한 곳에서 보고왔어요. ^^

    1. 오호, 다녀오셨군요.
      올해 유난히 사람이 많다고 하네요.
      신윤복 열풍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그래도 아마 뿌듯하셨을 듯.
      교과서에서 본 그림들을 직접 봤으니 말예요.

  2. 꽃도 무지 예뻐요.
    선홍색의 붉은 꽃인데 딱 한번 봤어요.
    가끔 과일로 기억되는 것들의 꽃이 궁금할 때가 있어요.
    모과는 많은데 석류는 드물긴 한 것 같아요.

  3. 이분은 저 몰라요.ㅎㅎ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근무하세요.
    그곳에 가면 늘 간송 선생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도 김정희가 누군지, 세한도가 무엇인지도 모를망정
    간송 전형필 선생이 어떤 일을 했는가를 알고 그걸 가슴속에 간직한재 졸업하지요.
    옆짝궁이 어제 충격받은 얼굴로
    고1 머스마들이 글쎄 추사 김정희를 아무도 모르더라구…

    1. 아드님이 좋은 학교 다니는 군요.
      제일 부러웠던게 학교에서 실내악단을 불러다 연주회를 갖는 것이었어요. 저는 일반 학교가 학생들에게 그런 예술 무대를 마련해 준다는게 너무 부럽더라구요.
      100주년 기념 때 한 학생이 나와서 머리 기르게 해달라고 의견 발표하던게 생각나네요. 원래 전형필 선생님의 이 학교가 일제에 항거했었는데 그 전통을 이어받아 획일화된 규제를 없애가야 하지 않겠냐고 나름 역사까지 공부해서 발표하더라구요. 외부 손님들 있는 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자유롭게 하도록 해주는 것도 조금 놀라웠고… 또 제가 머리가 길다 보니 웃음도 나오고…
      올해 저도 김정희의 작품 명선을 보니 서예 작품이 참 매력적이더군요. 그 작품은 이번으로 두번째 봤어요. 서예가 생활의 한가운데 있었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4. 아부틸론에 잠시 눈이 멎었다가
    (전 원예종에 그리 끌리지 않는데 어제의 동행들이
    너무 예쁘다고 감탄해서 처음으로 똑닥이에 담았지요)
    잠시 어제 전시장 풍경을 떠올리다가
    오이 짊어지고 돌아가는 고슴도치를 떠올리다가
    생뚱맞게 배추밭의 배추흰나비 검은 애벌레를 떠올리다가…
    그러다,
    동원님의 동행, 간송 선생의 손자 인건님을 본 순간…
    저 이분 알아요.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분이시더군요.
    아주 잠깐의 대화였지만 사립학교 행정실에 대한 편견을 좀 바꿔준…

    1. 저는 사진찍으면서 인건님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저 고맙기만…
      아버님은 미술 공부하다 들어와 아버지의 길을 이어가고 인건님도 자기 안의 예술적 열정을 잠시 양보하고 할아버지가 세운 뜻을 이어가는 걸 보면 참 대단하단 생각이 많이 들어요.
      학교에 계시니 아실 듯도 해요. 합리적이고 게다가 소탈하고…

  5. 미술관 옆 가을 나무들의 자태가 눈이 부십니다.
    몸으로 가을을 물들이고 있는 저들의 모습은 늘 변함이 없군요.
    릴케의 <가을날>이라는 시가 저절로 입에서 외어지고 있습니다.

  6. 아름답고, 감동적입니다.
    미드텀까지 끝나서 이제 여유가 좀 있어서 계속 둘러봅니다. ^^
    하필이면 이럴 때 환율이 다시 올라가서 좀 그렇긴하지만요;

    기회가된다면 꼭 가고보싶은데… 아주 가끔씩 문을 여는군요.
    크아. 좀 아쉽습니다.

    1. 바깥엔 가을이 전시되어 있고, 안엔 서화들이 전시되어 있고…
      5월과 10월을 잘 기억했다가 보면 되죠, 뭐.
      저도 이번으로 두번 가봤는데 첫번째는 주로 글씨들이 나와서 한문이 눈에 익지 않다보니 감상에 좀 애로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가서 다시 보니 그것도 이젠 좀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역시 자주 봐야 하는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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