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와 거미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10월 11일 우리 집에서

거미가 장미에게 물었죠.
—얼굴이 왜 그렇게 수척해. 무슨 걱정거리 있어.

장미가 말했습니다.
—나비를 영원히 내 곁에 두고 싶어.
하지만 나비는 왔다가는
앉았던 자리의 온기가 식기도 전에 가버려.
나비와 영원히 같이 있고 싶어.

다시 거미가 말했습니다.
—걱정하지마.
다음에 나비가 오면
내가 꽁꽁 묶어
네 곁에서 영원히 있도록 해줄께.

거미는 곧바로 나비가 오는 길목에 거미줄을 쳤지요.
떠들면 오던 나비가 도망간다고
장미의 입도 거미줄로 막아버렸어요.

그날부터 장미는
나비야 제발 오지말라고 기도해야 했다더군요.

6 thoughts on “장미와 거미

  1. 자연스럽게 두면 다시 올텐데..ㅉㅉ..저는 맨날 거미줄과 싸우지만 가끔 거미에게 고마워 하기도 합니다. 멀리 출타를 하고 돌아와 화실의 안위를 걱정하며 들어설 때 거미줄이 내 목을 감으면 도 선생은 안 다녀 갔구나..하며 안심을 하기도 합니다.

    1. 거미줄에 그런 센서 기능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어요. 아마 도선생도 들어오다 빈집인줄 알고 그냥 나가기도 하겠어요.
      그나저나 우리집 거미들은 이제 너무 살이 올라 좀 징그럽기도 해요. 장미를 빌미로 너무 사기를 치고 있는 듯도…

  2. 거미줄의 위력을 장미는 자신의 입으로 확인한 후에야 알게 된 건가요?
    집착이, 욕심이 문제가 아닐까요…
    짧은 동화 한 편을 읽는 느낌이었어요…

    1. 거미에게 조금 미안하기도…
      졸지에 장미의 욕심과 집착으로 먹고 사는 녀석이 되어 버렸으니 말예요.
      상징과 은유는 재미나기는 한데 죄없는 희생양도 많이 만드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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