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심사가 편치 않다.
예전에도 그랬긴 했지만
뭘보든 자세가 삐딱해진다.
하늘에 낀 먹구름을 보고 있어도 못마땅하다.
누군가 그랬었다.
구름 위에선 항상 태양이 빛난다고.
하지만 하늘에 잔뜩 낀 먹구름을 보고 있노라니
그럼 비행기타고 먹구름 위로 날아올라가서
거기서 살란 말이냐 뭐냐라는 생각이
분통처럼 치밀어 오른다.
물론 말그대로
구름의 위쪽엔 항상 태양이 빛나고 있다.
눈앞의 상황이 아무리 암울해도
희망을 잃지 말라는 뜻으로 그 말이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단순한 말로 들리질 않는다.
구름의 위쪽에 누군가의 한달치 월급을 윗도는 고액 과외가 있고,
구름의 위쪽에 같은 일을 하고도
비정규직보다 훨씬 두둑한 액수를 챙겨가는 정규직의 봉급이 있고,
구름의 위쪽에 이명박 정권이 더 챙겨주지 못해 안달을 하는
1퍼센트의 가진 자들이 있다.
구름의 위쪽에서 빛나는 태양은 항상 그들의 것이다.
구름의 위쪽에 항상 태양이 빛나고 있다는 말은
우리들로 하여금 모두 먹구름이 걷히길 기다리게 만든다.
먹구름 앞에서 어쩌겠는가.
그저 먹구름이 걷히길 기다리는 수밖에.
그 말은 교묘하게 우리를 수동적 자세에 묶어 놓는다.
심사가 뒤틀리다 보니 그런 말 한마디에도 영 심기가 불편하다.
차라리 그 말은
먹구름을 걷어내면 구름 위의 태양을
우리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다고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다.
차별의 먹구름, 왜곡된 분배의 먹구름을 걷어내면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태양빛이 돌아갈 것이다.
그 모든 차별과 왜곡의 정권,
바로 이명박 정권이라는 검은 먹구름을 걷어내면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태양빛이 돌아갈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뜻을 모으면 먹구름도 걷어낼 수 있다.
촛불을 드는 이유이리라.
6 thoughts on “먹구름 단상”
옛날에 단종된 담배 ‘SUN’을 다시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래서 먹구름 낀 날에도 태양을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꺼내볼 수 있게 말입니다.
그게 담배갑도 빨간 색이었었죠, 아마.
그 동화의 이름이 뭐였지요? 태양과 구름의 대결을 그린 페어리 테일말여요.
남자의 외투를 벗기기 위해서 막- 대결을 하는… 제목이 기억이 안 나네요. ㅎㅎ
그 당시의 구름은 태양을 멋드러지게 이긴 영웅이었는데 말입니다.
현 정권. 그것도 돈을 먹구름에 비유를 하니 이미지가 확 틀어지네요.
촛불이 태양인데 말입니다. 꼭 이겨야할텐데.
램프의 요정 …이름이 뭐였더라, 지니였던가요? 바바였던가.
소원을 빌 때는 바람돌이 아니면 램프의 요정이었었는데,
언제부턴가 드래곤볼의 용신이 대체되어버려서 안타깝습니다…
(청와대에서 일본 만화책을 대거 구입했다는 기사를 읽고난 후라서 문득..^^; )
지니든 바바든 바람돌이든 용신이든, 이 동화같은 명박 먹구름을
확 그냥 만화같이 날려버렸으면 좋겠네요.
구름이야 뭔 죄가 있을까 싶어요.
2MB 정권의 세상에서 살다보니 영 심사가 뒤틀려서 그게 문제죠, 뭐.
나중에 좋은 세상오면 먹구름 얘기 다시 써서 미안했던 거 속죄해야지요.
구름 위에서 정말 태양이 빛나고 있더군요.
구름이 잔뜩 낀 날,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아가는데, 구름층을 뚫고 나오니 거짓말처럼 그곳에는 구름 한 점 없었어요.
차별의 먹구름, 분배의 먹구름이 진정 걷어지길 기도합니다.
가장 힘든게 돈과의 싸움인 듯 싶어요.
한 언론인이 시사저널 사태 때 이전의 선배 기자들이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걸 증명했으니 이제부터는 펜이 돈보다 강하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더군요. 기자들이 증명하는게 아니라 이땅의 촛불들이 증명해가려 하는 것 같아요.
희망을 걸고 싸워가는 수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