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일 종로의 보신각 앞.
원래는 오후 두 시부터 촛불집회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정작 그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눈에 들어온 것은
촛불 시민 아니라
보신각 광장을 빈틈없이 둘러싼 경찰버스와
자리를 선점한채 줄을 맞춰 앉아있는 전경들이었다.
나는 처음엔 이제 경찰들이 정신차리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와
거국적으로 촛불 시위에 동참한 줄 알았다.
제기랄,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직 그런 즐겁고 신나는 일이 벌어지는 세상은 아니었다.
현대적 건물은 높고 우람하긴 하지만 권위적이고 뻣뻣하다.
권력도 그런 듯하다.
높고 커질수록 뻣뻣해지는 권위적이 되는 권력이 있다.
이명박 정권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경찰들도 앉아있지만 자세는 뻣뻣하게 굳어있다.
얼마나 기다려야 대통령이란 지위에서
낮고 작은 겸손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시민들이 촛불에 열광하고 동참했던 것도 알고 보면
그런 낮은 어울림이 촛불에 있었기 때문이었지 않나 싶다.
권력자들은 그런 낮은 어울림을 제일 두려워한다.
한 시민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말한다.
“아니,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입니까.”
옆의 시민이 말했다.
“이게 이른바 그 치사한 땅따먹기 게임이란 거지요.”
화를 내기도 뭐한 한편의 개그같았다.
갑자기 누군가가 “이거 누가 시켰을까”라고 말했다.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황현희의 “누가 그랬을까”의 변형 버전이다.
난 옆에서 킥킥 대고 웃었다.
도대체 누구일까.
한 시대의 젊음을 이렇게 웃음거리로 만드는 그 몹쓸 인간은?
웃다가 슬그머니 그 인간에 대한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경찰들, “애국 촛불 전국 연대”의 깃발 아래
모두 동참하셨다. 마음은 전혀 달랐지만.
경찰과 경찰들의 사이를 뚫고
한 여자분이 든 “퇴진! 이명박 정권”의 구호가 선명하다.
방패로 막은 경찰들의 너머로
“분쇄!! 공안 탄압”의 구호 또한 선명하다.
자리는 선점해도 구호는 하나도 지우지 못한다.
한 여자분이 “분쇄!! 공안 탄압”의 구호를 들고
경찰들 앞에 서서 얘기나눈다.
방패와 온갖 보호 장구로 무장한 경찰이 오히려 초라해 보이고,
약간의 웃음을 베어 문 그녀가 우뚝 선 거인처럼 보였다.
경찰은 가끔 일어나서 사람들에게 위협감까지 준다.
슬픈 일이다.
나중에 죽어도 꺼내기 싫을 추억을
이명박 정권이 공공연히 이 땅의 젊은이에게 강요하고 있다.
조금씩 조금씩 경찰들을 밀어내고
모인 사람들이 조촐하게 행사를 가졌다.
그리고 촛불을 밝혔다.
한 여자분이 밝힌 촛불이다.
그녀의 촛불은 2MB 나가라고 했다.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아이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아이 엄마는 아이가 먹을 간식거리를 다양하게도 챙겨왔다.
간간히 아이를 먹이면서
구호도 외치고 노래도 따라부른다.
난 아이에게 주는 교육 가운데 자유를 호흡하게 해주는 것보다
더 가치있는 교육은 없다고 본다.
대한민국의 엄마는 아이에게 자유의 호흡을 시키면서 민주주의도 지킨다.
놀라운 엄마이다.
행사의 마지막으로 폭죽 놀이를 했다.
작은 불꽃들이 경찰 버스로 막아놓은 보신각 앞 광장을 날아올라 하늘을 수놓았다.
사람들은 이젠 막으면 하늘로 날아오르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인도로 행진하려고 했지만
경찰은 그마저도 막았다.
열어주고 소통하는 정권이 아니라
막고 등돌리는 정권임을 스스로 증명한다.
촛불 하나가 아주 우람하다.
촛불은 이제 길고 오랜 싸움에 대비하고 있는 듯하다.
바람에 촛불이 눕는다.
그러나 촛불은 언젠가 바람보다 빨리 일어나리라.
6 thoughts on “난 경찰이 이제 정신차린 줄 알았다 – 11월 1일 토요일 종로 보신각앞”
이심전심의 세상이지만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촛불이 있어
바람보다 빨리 일어날 겁니다.
누가 되든 경제만 살리면 되는 세상이 아니라
이명박이 살리는 경제 속에서
누가 살아남게 될지를 좀 알았으면 싶습니다.
또 경제가 좀 후퇴해도 살만해진다는 느낌을 주겠다는 사람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아무 말 안하고 있으면 바보인 줄 아는 멍청한 똑똑이들이,
참아주고 참아주고 또 참아줘도 자기가 잘난 줄 아는 존재들은
어떻게 이렇게 하는 짓거리가 유치한지요.
민주주의 개념부터 다시 교육시켜야 될 것 같습니다.
이명박이라는 작자는.
만수, 청수 갖고 꼼수부리다 뒤통수 쥐어박힐 운명이죠.
풀이 눕듯이 촛불도 눕지만 바람이 불면 빨리 일어나는 것이 풀들이지요.
보이는 촛불은 시간이 지나면 꺼지지만 사람들 마음속에서 타오르는 촛불은 꺼지지 않으리라… 여자분의 용기에 박수를 드립니다.
여자분들이 더 많더군요.
경찰과 입씨름하는 것도 여자분들이고…
한국에서 이명박 정권은 단순한 정파의 하나가 아닌 듯 싶습니다.
이승만에서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과거 정권들의 속성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청산해야할 대한민국의 모순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