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니 여름에는 별로 산에 간 적이 없는 듯 싶다.
산은 거의 대부분 봄이나 가을에 찾곤 했다.
특히 산을 찾는 걸음이 잦았던 것은 가을이다.
아마도 가을산으로 그리 자주 걸음을 홀렸던 것은 단풍이었으리라.
11월 11일 화요일, 가을볕이 좋은 오후에 북한산에 올랐다.
단풍이 고운 나무 밑을 지날 때마다
마치 물한모금 먹고 하늘 한번 쳐다보는 병아리처럼
고개를 젖히고 한참 동안 단풍 구경을 하다 가곤 했다.
많이 가문 것 같다.
항상 물이 많았던 기억으로 남아있는 우이동 계곡의 물도 쫄쫄거린다.
그래도 쫄쫄거리며 흘러내린 물이 고여 한 깊이를 이루었다.
고여있는 물 위로 낙엽들이 뛰어내려
그 가벼운 부력을 즐기고 있었고,
그 위로 오후의 햇볕이 온기를 보태
가을의 쌀쌀한 기운을 약간 걷어내고 있었다.
도선사로 올라가는 길에
길옆의 담너머로 엿보았더니
바로 아래 단풍의 빛깔이 고왔다.
그 아래 기와가 몸을 세운 채 차곡차곡 쌓여있다.
기와는 때되면 아마 어느 집의 지붕을 덮어 비와 바람을 막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단풍 또한 나무의 집을 지붕처럼 덮어주는 기와 같기도 했다.
바람도 새고, 비도 새는 허술한 기와이지만
가을만 되면 빛깔 곱게 단장을 하는 기와이다.
밑에 서면 그 색이 와르르 쏟아질 것만 같다.
마치 까만 밤에 하늘을 하얗게 채운 별처럼.
단풍은 빛을 머금었을 때 더 화려하다.
그래서 옆에서 보다가 나무밑으로 자리를 옮기곤 했다.
매년 갈색은 별로 눈여겨 보질 않았었다.
색이 바랜 낙엽의 색이 갈색이라고 생각했었다.
올해 보니 그렇질 않았다.
갈색도 색을 잃기 전의 화려한 시절을 따로 갖고 있었다.
여름내 초록빛으로 숙덕거리더니
이제는 모여서 갈색빛으로 숙덕거린다.
가지만 남았을 때의 숙덕거림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진다.
겨울에 한번 와봐야 겠다.
야, 너, 나뭇잎 아니지?
너, 여름내내 나뭇잎으로 위장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꽃이지, 그치?
솔직하게 얘기해봐.
내 어디다가 너가 여름내 나뭇잎으로 위장하고 있었다고 소문내지 않을테니.
너, 꽃맞지?
단풍이 산위에서 산 아래로 흐르는 건 확실한 듯하다.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빈가지의 나무들이 많아진다.
올라가다 아래쪽으로 시선 한번 주었다.
빈가지가 많아진 중턱에서
잎을 부여잡고 끝까지 버티면
완전히 독보적 존재가 된다.
때로 홀로 오랫동안 버티는
그 고독의 미학이 돋보이곤 한다.
늦게 출발했더니 올라가는 동행은 눈에 띄지 않고
모두다 내려가는 사람들 뿐이다.
나무와 길을 동행 삼아 천천히 산으로 올랐다.
내려가는 사람들은 이제 나무와 길을 버리고
훠이훠이 산을 내려간다.
그게 내려가는 길의 재미이기도 하다.
봄에 며칠간 부지런히 산에 다니며
그 얼굴을 익혀놓았더니
이제 잎만보고도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것이 있다.
너, 생강나무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