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에 올라 밤에 산을 내려오다

11월 11일 화요일, 북한산에 오르는 길은 오후에 시작되었다.
우이동 계곡에서 백운대로 오르는 길은 특히 잘 정비가 되어 있어
늦은 시간에 산으로 걸음하면서도 그다지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지척에 서울이 보이는 것도 걱정을 덜게 되는 이유의 하나이다.

Photo by Kim Dong Won

백운대로 곧장 가질 않고
중간에 잠깐 영봉으로 샜다.
인수봉을 마주 볼 수 있는 좋은 장소 같았고,
게다가 200m라는 표지판의 거리 안내도
그리로 발걸음을 이끄는데 한몫했다.
영봉으로 오르다 보니 경관이 트인다.
바위에 앉아 고사목과 함께 서울을 내려다 보았다.
산아래로 저녁 그림자가 밀려내려가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영봉으로 오르자 이제 해는
인수봉과 백운대 사이로 걸려 있었다.
오늘의 마지막 햇볕을 세상에 모두 쏟아붓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멀리 남산타워가 보인다.
그냥 산너머로 겹쳐져 있었다면 남산인지 뭔지 몰랐을 텐데
남산타워 때문에 저기가 남산이구나 한다.
북한산에 올랐을 때는
남산타워가 여기가 남산임을 알려주는 거대한 조형물이다.

Photo by Kim Dong Won

누가 거대한 바위를
산과 하늘 사이에 쐐기처럼 박아놓았다.
땅과 하늘 사이에 숨쉴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일까.
곁을 지나는데 바람이 시원하긴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인수봉.
나무처럼 가늘고 섬세한 손을 가졌다면
바위 틈을 비집어 틈새를 찾아내며
로프없이도 저 산을 오를 수 있을텐데…

Photo by Kim Dong Won

영봉에서 내려와 다시 백운대로 가는 길에
그 턱밑에서 올려다 본 인수봉.
나무들이 중간중간 그 섬세한 뿌리로
바위 사이의 틈을 찾아내 삶의 둥지를 마련하고 살고 있는게 보인다.

Photo by Kim Dong Won

중간에 백운산장에서
국수 한그릇으로 배를 채우며 시간을 좀 보냈더니
일몰을 길게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인 태양과
그 태양 위로 떠 있는 구름 세 점의 그림은
한참 동안 내 시선을 가져가기에 충분했다.

Photo by Kim Dong Won

북한산은 삼각산이라 불리기도 한다.
산의 모양이 삼각형 모양이라 그렇게 불렀다고 들었다.
정말 삼각형이다.
백운대 아래쪽 위문을 나와 조금 가다가 올려다 본 모습이다.

Photo by Kim Dong Won

백운대에서 대동문쪽으로 가다가 바라본 구파발쪽 풍경.
절에서 울리는 종소리가 은은하게 골짜기를 채우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나무들 사이로
불을 환하게 밝힌 서울이 보인다.
서울은 낮보다 밤의 모습이 더 볼만한 것 같다.
가는 길에 자꾸 주변을 맴도는 짐승 하나를 만났다.
낙엽밟는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내 신경을 곤두세우더니
뒤쪽에서 나를 졸졸 따라온다.
모르는 척하고 가다가 휙 뒤를 돌아섰더니
왠 개 한마리가 나를 쳐다보고 서 있다.
이 산중에 먹을 게 어디 있다고 여기까지 올라왔는지 모르겠다.
“야, 지금 나도 먹을 게 하나도 없어.”
그렇게 말했더니 개는 뒤를 돌아서서 가버렸다.
뭔 개가 사람말을 알아듣냐.

Photo by Kim Dong Won

수유아카데미로 내려가는 길목인 대동문.
달빛을 지붕에 이고 서울을 지키고 있다.
옛날 같았으면 함부로 들어갈 수도 없었던 서울을
호젓한 달빛을 친구삼으며 대동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Photo by Kim Dong Won

숲길을 걸어 내려가는데
나뭇가지 사이로 달이 숨었다 나타났다 한다.
숲은 대부분 달빛을 시커멓게 삼키는데
이상하게 길은 달빛에 환하게 빛을 냈다.
수유아카데미 쪽으로는 처음 내려가는 길이었지만
달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는 길 덕택에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 눈에는 환했지만
카메라로 사진 한장 찍는 데는 20초가 넘게 걸렸다.
눈에는 환한 달빛이었지만 카메라로 사진찍는 데는 많이 부족한 빛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내려오다 보니
나뭇가지가 걷히고 서울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 나타났다.
계곡을 끼고 있어 물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오히려 산길은 달빛에 환했는데
다 내려오니 수유아카데미 옆길이
담벽의 그림자에 가려 더 어두컴컴했다.
오후 2시 30분쯤 산으로 들여놓은 걸음이 8시쯤 산을 벗어났다.
야간산행이 금지되어 있어 내려오는 사람은 보내주지만
그 밤에 산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막고 있었다.
내려오니 수유아카데미 바로 앞에
지하철 역으로 가는 마을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수유역까지 혼자 타고 가서 지하철로 갈아탄 뒤 집으로 돌아왔다.

10 thoughts on “북한산에 올라 밤에 산을 내려오다

  1. 북한산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네요.
    서울에 있어서 더욱 더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동네 뒷산이나 국립공원 아니면 일부러 찾아가야 가는 곳일텐데,
    북한산 가 볼 일이 있을려나..요;;

  2. 저는 반대로 수유리에서 출발해서 도선사 방향으로 내려온 적이 있습니다. 산행의 제1의 목적이 안전산행인지라 꼭 해지기 전에 내려와야 합니다.

    일몰을 좋아하지만 바닷가 보다는 산에서 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길도 밤에는 쉬어야 한다며 길을 내주지 않을 것 같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모세가 아닌 다음에야 바다에 길을 낼 수 없는데도 바다를 두려워하질 않네요.

    태생이 비탈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1. 사진이 사실은 해뜨기 전과 해지기 전이 가장 빛이 좋아요. 좀 환상적인 색이 잡히죠. 그 색에 맛을 들이다 보면 종종 산꼭대기에서 해지는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밤길을 간 것이 설악산, 월악산, 대관령 등등 몇번 있었는데 저의 경우엔 더더욱 위험한 것 같아요. 혼자서 가니까요. 가다 사고나면 구해줄 사람도 없죠. 그 밤에 지나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엄청 조심하는데 그래도 이번에는 한번 뒹굴고 말았죠. 잠들만 할 때 쉬는 길을 건드렸더니 화가 났나 봅니다.

  3.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홀로 산행… 제가 참 좋아하는 일이지요.
    백운대에서의 국수 한 그릇, 군침이 돌고 있어요.
    부럽습니다.

    1. 원래 백운산장에 샘이 있어 중간에 목도 축일 수 있는데 그 샘이 말랐더군요.
      국수 한그릇 먹었더니 쌀쌀하던 산기운도 곧바로 사라져 버렸어요. 배가 비면 몸이 추워진다는 것도 처음 알았어요. 국물도 하나 남김없이 깨끗이 모두 해치웠지요. ㅋ

    1. 백운대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아름답기로 소문이 나 있다고 하더군요. 저는 처음 봤어요. 아무래도 해지는 풍경을 보고 나면 내려오는데 무리가 따르다 보니 그동안은 해지기 전에 산을 내려오곤 했거든요. 처음본 북한산의 일몰은 아주 좋았어요.

  4. OSX다시 인스톨했더니, 이제는 동원님의 블로그에 댓글 달때
    한영 전환이 정상적으로 되는군요.
    두번째 사진은 꼭 좀 있으면 ‘신’이 등장할 것 같은… ‘산신’이라도..

    동원님은 북한산과 올림픽 공원을 자주 가시는 듯.. =)

    1. 맥이든 윈도든 이상하다 싶으면 밀고 새로까는 것이 가장 속편한 듯 싶어요.
      “산신령”이 보호하사 무사히 산을 내려왔는지도… ㅋ

      자주 간다기 보다 한번 갔다와선 열흘 다녀온 것처럼 써먹지요.
      특히나 이번 북한산은 느낌 좋은 풍경들이 많았어요.
      계속 우려먹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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