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어요.
당신을 처음 만나는 설레임으로
빈가지 끝으로 새순을 내밀어
당신을 기다릴 수 있었으니까요.
아직 남아있는 쌀쌀한 기운도
그 설레임을 꺾을 순 없었어요.
여름에 당신을 기다리는 것도 어렵지 않았어요.
푸른 잎을 무성하게 펼쳐 짙은 그늘을 만들고
산을 올라온 당신이 그 그늘 아래 이마의 땀을 식히며 쉬어갈 때면
당신을 한참 동안 내 품에 둘 수 있었으니까요.
가을에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힘겨운 일이었어요.
가장 아름답게 치장하고 마치 꽃인양 서서
곱고 화려한 낯빛으로
당신의 시선을 뺏을 수 있었지만
생전처음 맞댄 당신의 시선은 이내 다른 곳으로 흩어졌어요.
설레임으로 당신을 기다리고
그늘 아래 든 잠깐의 당신이 마냥 좋던 계절엔
당신은 당신도 모르게 나의 사람이었지만
짧은 순간 시선을 맞댄 가을의 당신은 나의 것이 아니었어요.
난 어느새 당신의 시선을 조금 더 잡아두려
다른 잎들이 모두 손을 놓고 대지로 돌아간 늦가을까지
조바심과 안간힘으로 가지를 붙잡고 있었죠.
그러나 당신과 시선을 맞대고 보내는 가을날의 시간은 길지 않았어요.
가을은 당신의 시선을 가질 수 있었는데도 힘들기만 했어요.
겨울은 아마 여느 나무처럼 잎을 다 털어내고
그래도 나뭇잎 몇 개는 가지 끝에 남겨놓고 보내게 될 것 같아요.
잎을 털어낼 때 당신에 대한 조바심과 안간힘을 털어내겠어요.
몇 개 남긴 잎에는 당신에 대한 추억을 담아두겠어요.
당신이 다시 나의 사람이 될 것 같은 느낌이예요.
이제 다시 겨울에 당신을 기다리는 것도 어렵지 않을 듯 싶어요.
8 thoughts on “단풍과 가을”
나무의 사계의 느낌을 너무나 잘
표현했군요.
사계는 역시 선생님 그림 속에서 만난 사계가 가장 매력적이었어요. ^^
아~ 북한산이 내미는 손을 잡고 다니신 동원님.
부럽기 그지없습니다.
북한산은 그다지 힘들지도 않고… 그러면서도 여기저기 볼만한 것은 많고… 갈 때마다 참 많은 것을 얻어오는 산 같습니다. 이번에도 단 하루 갔다가 와서 거의 일주일 넘게 북한산으로 블로그 도배질을 한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구파발쪽으로 올라갔다가 도선사로 내려가 볼까 생각 중입니다.
나무가 저리도 아름다울 수가…
반듯하고 균형잡힌 몸매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옷 매무새가 참으로 곱습니다. 빛나는 순수의 절정이라고 할까요. 아무도 보아주지 않다가 갑자기 터트리는 사진 세례에 나무가 놀라지는 않았을까요…
나무도 아름다웠지만 잠깐 동안 가운데를 어른거린 저녁빛은 더욱 눈길을 떼기 어렵게 만들었어요.
사진은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찍기는 했어요.
기린 같은 나무들이 이마를 맞대고 서로 귀엣말을 하고 있는것 같기도 하구요..
참 신기 해요..남자들이 가진 감성에 대해 믿기지 않는 구석이 있을 정도로 신기 하기만 합니다. 혹시 제가 뚫어져라 바라 보더라도 이상하게 생각진 말아 주세예~~
조오기, 나뭇잎의 가운데가 약간 밝잖아요. 그게 막 산을 넘어가고 있는 햇볕이 길게 산등성을 넘어와서 나무 한가운데를 비추고 있는 거랍니다. 요게 북한산 오르던 날 가장 아름다웠던 나무였어요. 저도 이 나무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정신없이 사진을 찍어댄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