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가을에 자기 색을 땅으로 내려
땅속에 묻어 두었다가 봄에 다시 길어올린다.
나무의 색은 이상해서
땅 속에 묻어두었다가 봄에 꺼내면
거의 초록빛으로 세상에 나온다.
나무는 세상에 나온 초록빛을
가지끝에서 여름내 익힌다.
나무의 색은 이상해서
가지끝에서 계속 익혀가면
가을에 땅으로 내릴 때쯤
다시 지난 해 그 나무의 색으로 영근다.
나무는 매해 색을 묵히고 익힌다.
한번은 땅속에서 묵히고, 한번은 가지 끝에서 익힌다.
겨우내 땅속에서 묵힌 색은 봄의 초록이 되고,
여름내 가지 끝에서 익힌 색은 가을의 단풍색이 된다.
6 thoughts on “나무의 색”
답장이 왔는데, 자기네 누나가 미디어 쪽에서 일한다고
물어보고 답장 준다네요. 요즘 먹고 살기 힘들어서 다들
답장이 느린듯.
별로 큰 일 아니니,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때 도와드려야죠.
저도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따님께 좋은 소식이 있다니.. 축하드립니다~
저도 빨리 좋은 소식을 저희 부모님한테 전해드려야하는데.. =)
좋은 학문하고 있는 것만해도 이미 자랑스러우실텐데요, 뭐.
국내에 자리잡아서 자주 얼굴보면 더욱 좋긴 하지만요.
한국이 사람을 제대로 알아주질 않는 곳이라서… 좀 그렇긴 해요.
박남준도 그렇고… 한국에서 작품활동했다면 아마 그렇게 큰 인물은 못되었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곤 하니까요.
세계 무대를 누비시길.
시골 땅 좀 미리 사두고,
논이랑 밭도 좀 개간해둬서 자급자족 하지 않으면 안될 시대가
올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시작되는 도시에서 움직이기만 해도 돈이드는 별
시답잖은 정책이 점점 더 자연으로 돌아가게만드네요.
아~ 타샤의 정원처럼 꾸미고 살고싶은데, 이 게으름이..
그저 다 자란 나무들에 둘러쌓인 허클베리핀이 되고싶습니다.
저도 그 타샤의 정원을 다큐로 봤어요.
완전히 전기도 안쓰고 살았더구만요.
저도 시골서 호롱불밑에서 큰 사람이라
그거보니 그 여자 참 대단해 보였습니다.
제가 그 불편을 잘 알거든요.
도시를 겪고 보니 그 불편한 과거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듯 싶기도 하고,
그래도 도시에서 사는게 낫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습니다.
살수록 자꾸만 인생이 덧없어 져서 큰일입니다.
어린시절, 크레용의 색깔이 기억이 나네요.
12 가지 색깔로도 도화지에 그럴듯한 그림을 그렸었지요.
그때 크레용에 써 있던 색깔 중에 ‘나무색’이 바로 지금 동원님이 표현한 ‘나무의 색깔’인 것 같아요. 땅 속에서 묵혔다가, 봄 여름 가을 가지 끝에서 익혀 낸, 원래의 나무의 빛깔이었다는 것… 새로운 깨달음을 ‘나무’에게서 배웁니다.
예전에 장석남이란 시인이 친구들과 깨밭을 지나다 깨가 땅속에서 그 고소함을 길어올리는 것을 보면 참 놀랍지 않느냐는 얘기를 했다는 게 기억나요. 가을나무도 그 점에선 놀랍긴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어떻게 알고 땅속에서 색들을 길어올리는지 말예요. 가을날의 산길을 가다보면 색의 대지를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곤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