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과 빛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2월 2일 서울 명동성당


아직 빛이 넉넉한 오후의 시간이었고,
세상은 여전히 환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종종
세상은 환하게 밝은데도 어둡다.

사람들은 종종 성당 건물을 돌아보다
그 안으로 발을 들여놓곤 했다.

사람들 따라 들어가보니
두터운 벽을 높게 쌓아올려
그 속을 꽁꽁 싸매둔 성당의 안은
빛의 걸음이 가로막혀 조도가 낮고 어두웠다.
한참을 서서 동공이 충분히 열리길 기다린 다음에야
희미하게 앉을 자리의 윤곽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냥 한참 있다보면
그 어두운 성당 안이 오히려 환했다.

빛은 풍족하지 못했지만
작은 빛이 어둡고 낮은 곳으로 깃든 느낌이었다.
안에 있는 동안, 그 안이 환했다.

8 thoughts on “어둠과 빛

  1. 어두운 교회에서 사진찍기란 정말 힘들지요.
    저번 연주회 때 찍은 사진만봐도….생각만해도 아찔하네요. 에고고.

    세상이 교회 안으로 점점 들어간다고 하신 사과나무님 말씀처럼
    교회가 그러면 안되는데, 세상에 흡수당하는 것 같달까요.

    세상이 썩지 않도록 소금의 역할을 하고,
    어둠을 비추는 빛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사명일찐데.
    어째 더욱 더 썩어서 냄새나고 어두워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동원님 말씀에 백번이고 동의해요.
    밝고 환한 세상에 기도로 나아가는 건 추운 겨울에 따뜻한 집에 있는거죠.

    1.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두 가지인 듯 싶어요.
      말끝마다 하느님을 입에 올리는데 정작 그 사람에게선 하느님이 전혀 보이질 않고, 하느님 얘기는 한마디도 없는데 어떤 사람에게선 하느님이 보이는 경우랄까요. 장단점이야 있겠지만 저로선 후자쪽에 자꾸만 표를 주게 되네요.

  2. 교회는 조금 어두운 것이 좋은데, 요즘 사람들은 더 밝게 더 더 밝게 외치고 있지요. 세상을 향해 그 빛을 보여야 할텐데, 오직 자기들 있는 곳만 밝히려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으로 나가기 보다는 세상이 점점 교회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할까요.

    1. 몇번 교회에 가서 사진을 찍은 적이 있는데… 기도할 때는 보통 조명을 끄고 어둡게 하더라구요. 사진찍는 사람으로선 아주 고역이예요. 빛이 없으면 사진찍기가 아주 어렵거든요. 그런데 집중하기 좋게 그렇게 하는 것 같지만 알고보면 기도로 가야할 곳이 밝고 환한 행복한 세상이 아니라 어둡고 낮은 세상이란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생각은 사진찍으면서 해두었던 것인데 벌써 올해초의 일이네요.

  3. 정말 아름다운 건물이예요.
    어둠에 익숙한 저는 그믐달빛 아래서도 한참을 서 있다 보면 달빛을 느끼게 되더라구요. 조명이 밝아도 볼 수 없다면 차라리 어둠이 좋아라..어둠 속에서도 마음의 문을 열지다. 어디서 본듯한 글귀를 적어 보다 도망 갑니다…ㅎㅎ

    1. 보수 공사 중이어서 뒤뜰에서 찍었습니다.
      카메라들고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더군요.
      너무 조용해서 아주 조심스럽기는 했어요.

  4. 성당이나 교회를 설계하는 이들이 고민하는 것이
    빛과 어둠의 조화라고 하더군요.
    빛이 너무 들어 경박해 보이지 않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어두우면 구원의 느낌이 없어 보인다네요.

    명동성당에 녹아있던 지난 시절의 열망이 다시 부활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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