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꽃의 잎과 줄기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9월 30일 서울 인사동의 쌈지 갤러리에서

나팔꽃이 그 가는 줄기로
꽃밭 가장자리의 나무 울타리를 말고 올라갔습니다.
나팔꽃이 감고 올라가자
푸른 색이 칠해진 울타리의 나무는
누군가의 기다란 목이 됩니다.
나팔꽃은 그 목을 감고 올라가선
그 목에 목걸이를 걸어줍니다.
푸른 잎사귀 하나와
꽃을 떨어뜨리고 난 뒤
씨방을 키워 만든 씨앗 두 개는
그 목걸이의 장식이 되었습니다.
그 목걸이를 걸어주기 위해
그렇게 울타리의 나무를
감싸고 올라갔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나팔꽃 줄기가 위로 올라가면서
중간중간 이파리를 남겨두곤 합니다.
남겨두고 간 이파리 두 개가
가을 햇볕을 받으며 소근댑니다.
오늘 햇볕에선 유난히 가을 냄새가
진하게 나는 듯 하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 둘의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중간에 남겨놓은 나뭇잎은
위로 끊임없이 올라가야 하는 삶의 길에서
나팔꽃이 걸음을 멈추고 호흡을 고르는 시간입니다.
나팔꽃도 그저 위로만 올라가는 것은 아니고
잎을 남겨 호흡을 고르곤 합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9월 30일 서울 인사동의 쌈지 갤러리에서

5 thoughts on “나팔꽃의 잎과 줄기

  1. 또 하트를 발견하셨네요.
    저 같으면 뭥미~~하면서 지나쳤겠지만 역시 사랑의 눈을 가지고 계셔서
    그런지 하트만 보이시나 봅니다.

    1. 잎들은 대게 다 하트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사실은 쉽게 발견할 수 있을 듯 싶어요.
      가장 끝내주었던 것은 역시 조개 껍질 속에 모래로 담아놓은 거였지요.

  2. 다 시인들에게 배워서 그렇게 되었죠.
    시인들은 대개 세상의 전복을 꿈꾸면서
    항상 그 전복의 힘으로 작고 여린 것을 내세우곤 하니까요.

  3. 나뭇잎 두 장의 소곤소곤 나눔이 들리는 것 같아요.
    지난 가을볕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요.
    가을 빛깔을 곱게 머금은 나팔꽃 두 장 참으로 다정해 보이네요.

    1. 사실은 위의 사진을 찍을 때는 사랑하는 사람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있는 연인이 떠올랐고, 아래 사진에서도 벤치에 앉아 햇볕을 받으며 소근소근 얘기를 나누고 있는 연인이나 부부가 떠올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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