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동과 107동 사이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1월 13일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103동과 107동 사이로 길이 하나 흘러갑니다.
길은 103동 옆을 스쳐 흘러가다가
107동 쪽으로 곁가지를 하나 내줍니다.
그 길로 사람들이 다니고, 차들도 다닙니다.
길가에 작은 연못이 있고,
잠시 쉬어갈 의자와 탁자도 있습니다.
비가 오면 잠시 몸을 피하고
내리는 비를 훤히 올려다 볼 수 있는
투명돔의 정자도 있습니다.
103동과 107동에 차곡차곡 쌓여 아득한 높이를 이룬 아파트는
모두 그곳에 사는 사람들 각자의 집이지만
103동과 107동 사이의 것들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면서 그들 모두의 것입니다.
103동과 107동 사이를 내려다보고 있노라니
우리는 우리들 각자의 몫으로 풍요롭기보다
그 사이에 놓인 우리 모두의 것으로 더 풍요롭습니다.
집근처에 새로 아파트 단지가 생기면서
나도 가끔 그 단지로 놀러가서 쉬다가 옵니다.
그 아파트 단지에 아는 사람이 없어
아파트의 집으로 놀러가는 것은 아니고
아파트의 동과 동 사이로 놀러가서 시간을 보내다 옵니다.
우리들의 사이에,
아무의 것도 아닌 것이 놓여있는게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 놓여있습니다.
난 그 우리 모두의 자리로 놀러갔다 오곤 합니다.

4 thoughts on “103동과 107동 사이

  1. 왼쪽 동은 105동? 홀수로 나가는 동인가하는 추축을 하고 있습니디만..
    벤쿠버는 비는 안오고 계속 눈보라만 날리고, 걷기도 힘드네요.
    질펄질펄한게.. 한국도 많이 춥죠?
    여기는 춥기는 한데 그래도 이제 집사람하고 같이 있으니까
    손도 잡고 다닐 수 있어서 훨씬 나은 기분입니다. =)

    즐겁고 편안한 주말 보내시길요.

    1. 수열로 보자면 당연히 105동인데… 여기가 수학마을은 아니어서 장담은 못하겠어요. ㅋ 아파트가 높다보니 멀리 남한산성도 보이더라구요.
      서울은 어젯밤 늦은 시간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어요. 어제 사진찍기 놀이가 있어서 어울렸다가 술좀 마셨더니 속이 좀 쓰리네요.
      아무리 추워도 정님의 올해 겨울은 따뜻했네가 될 것 같아요. 달콤한 사랑의 시간 가지시길.^^

  2. 무심코 지나친 바로 옆에 있는 나무 의자 하나가, 혹은 길가의 작은 연못 하나가 우리 모두의 것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감사하네요. 그것을 귀하게 여기며 고마워 하며 살아간다면 춥고 싸늘한 이 겨울이 조금은 훈훈하지 않을까요. 서로의 마음과 마음 사이에도 누군가를 향한 배려, 나눔의 공간이 있다면 좋을텐데요.

    1. 조 사진은 아는 사람 집에 놀러갔을 때 찍었는데 근처에 들어선 요즘 아파트를 보니까 주차장을 모두 지하로 내려보내고 지상의 아파트 사이 공간은 공원화하더라구요. 덕분에 저희도 가끔 가서 쉬다가 오곤 해요. 꽃필 때는 꽃도 많아서 좋구 그렇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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