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출근을 하고 하루종일 집에 있다보면,
그렇다고 내 일이 없는 것도 아닌데,
하루의 시간이 모두 기다림으로 수렴되는 느낌이 들곤 한다.
그러고 보면 출근하는 남편을 둔 여자들이 늦게 들어오는 남편에게
하루 종일 기다린 사람은 생각도 않고
어떻게 매일 이렇게 늦냐고 잔소리를 하는 것은
그냥 하는 소리는 아니다.
집에 있으면 집의 하루가 모두 기다림의 시간으로 바뀌어 버린다.
남편을 출근시키고 난 아내들에게도 일이 있을 것이다.
집안 청소도 할 것이고,
빨래도 일과의 하나일 것이며,
잠시 장에 나가 찬거리를 장만해 오는 것도 그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 점에서 보면 그녀가 출근한 뒤의 나에게도 나의 일이 있다.
나는 번역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혹은 글을 쓴다.
그런데도 잠시잠깐 짬이 날 때마다
내가 내 일을 하고 있는게 아니라
하루 종일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이 나의 하루를 간단없이 파고든다.
사실 그녀도 나의 이런 느낌을 이해할지 모른다.
언젠가 딸아이가 수학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 집엔 버젓이 그녀와 나 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둘은 그때의 며칠 동안을 기다림으로 보내야 했었다.
도대체 왜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왜 집은 도대체 그녀가 출근하고 나면 기다림의 공간으로 뒤바뀌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그 연유는
그녀가 함께 있다 집을 빠져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 순간 그녀의 자리가 텅비어 버린다.
빠져나가는 사람은 뒤에 남은 사람이 앓게 되는
그 빠져나간 사람의 빈자리에 대한 느낌을 알리가 없다.
그 느낌은 오직 집에 남은 사람에게만 체감이 된다.
그리고 그 텅빈 공허감은 집을 수동적 위치로 바꾸어 버린다.
다시 말하여 그녀가 없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체감이 되는 순간,
집에 있는 나는 자꾸 바깥으로 고개를 기웃거리며
그녀를 기다리는 수밖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녀의 빈자리는 그녀밖에 채울 수가 없으므로
집에 있는 나는 그저 목을 빼고 그녀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집이란 태양과 비슷한 위치에 있으며,
출근하는 사람은 수성이나 금성, 또는 지구와 같은 행성의 분위기를 갖고 있다.
그러니까 집은 바깥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내내 한자리를 지키는 안정감과 빛의 따뜻함을 동시에 지닌
태양과도 같은 둥지이다.
물론 그 둥지가 따뜻하려면 그 안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아니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비로소 집이 안정감과 따뜻함을 갖는다.
그러고 보면 집의 안정감과 따뜻함은
그 안에서 기다리는 사람의 무게와 체온으로 지탱이 되고 덥혀지고 있는 셈이다.
바깥에서 일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바로 그 안정감과 따뜻함에 대한 믿음으로
바깥일의 힘겨움을 견딘다.
하지만 집에 남겨진 사람은 조금 처지가 다르다.
바깥에서의 일은 그것의 힘겨움을
집의 안정감과 따뜻함에 대한 믿음으로 채울 수 있지만
안에 남겨진 사람의 기다림은 나간 사람이 돌아올 때까진 채워지질 않는다.
대체로 그 기다림은 기다릴만하지만
어느 날 그 기다림이 견딜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런 날 기다리는 사람은 그 빈자리를 채울 사람을
1초라도 더 빨리 만나야 한다.
그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원래 나는 항상 굽은다리역에서 그녀를 기다렸으나
어느 날은 그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고
그녀가 회사를 나설 때
그와 똑같이 집을 나섰다.
그리고 그녀가 충무로역에서 지하철에 올랐을 때
나는 굽은다리역에서 지하철에 올랐다.
그렇게 그녀는 회사에서, 또 나는 집에서 동시에 출발을 하면
우리는 딱 중간쯤에서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그냥 중간에서 만나자는 밋밋한 약속으로는
하루의 기다림을 제대로 보상해 줄 수가 없다.
그런 식으로 중간에서 만나면
그 중간까지 가는 절반의 시간도 그저 지루하고 길기만 할 뿐이다.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지하철에 오르면서 핸드폰을 꺼내든다.
그리고 역을 지나칠 때마다 문자를 보낸다.
“난 지금 천호역”
“난 동대문운동장”
“난 지금 아차산”
“난 청구”
이렇게 문자를 보내면서 그녀는 오고, 또 나는 간다.
그러면 그녀와 나 사이의 간격이 기하급수적으로 좁혀지면서
서로를 향하여 다가서는 둘의 속도감이
눈에 완연하게 보이며,
그 속도는 몸에 분명하게 체감이 될 정도로 급격하게 빨라진다.
그리고 그렇게 다가선 둘은
드디어 어느 순간
내려야 할 역이 어느 역이란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린다.
그 역에서 내렸을 때
내린 지하철이 마치 거대한 문이 열리듯
하나는 이쪽으로, 또 하나는 저쪽으로 비켜나고
그리고 그러면 저편에 그녀가 있고, 이쪽에는 내가 있다.
우리는 손을 한번 흔들어 서로를 확인하고
그곳에서 나는 그녀를 만난다.
그곳에서 만난 그녀는 바로 내가 하루 종일 앓았던 그 기다림의 실체이다.
기다림의 갈증이 못견디게 깊을 때는
그렇게 그녀와의 사이를 기하급수적으로 좁혀가며
손에 잡힐 듯한 속도감으로 빠르게 서로를 향하여 다가가고
그렇게 마치 충돌할 듯 서로를 만나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때로
서로의 사이를 그렇게 기하급수적으로 좁히며
충돌하듯 부딪쳐야 한다.
때로 그 빠른 속도감 이외에는
아무 것도 그녀에 대한 하루의 기다림을 보상해주지 않는다.
사랑이란 참 묘한 것이다.
어느 때는 지루한 기다림이 사랑이 되고,
어느 때는 1초도 못견디는 급한 마음이 사랑이 된다.
7 thoughts on “그녀는 오고 나는 가다 – 그녀의 퇴근 2”
건대입구에 살때 새벽마다 지하철을 타고 출근했어요.
졸지 않으려 무진 애를 썼었는데.^^
그때는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었고 이어폰 꽂고 음악이나
라디오를 들었죠.
지금처럼 핸드폰이 있었다면 참 재밌었을텐데.^^
그런면에서 김동원님이랑 통통이님이 부러워요. 재밌으시겠어요.^^
우리도 성수동에서 한동안 살았었는데…
매일 건대입구에서 지하철 타고 출근했었죠. 건대도 자주 놀러가고…
일하고 이제 방금 들어 왔어요~~
자발적 출근~~
이번주 일이 넘 마나서!!! ㅜㅜ
잘 지내고 있어요…여튼!!
로즈님 일하는 동안 나는 그녀랑 강원도에 있었네요.
내린천따라 구룡령으로 갔다가 오색온천에 가서 하루 묵고 새벽 4시반에 출발해서 서울로 왔어요.
이번에 그림같은 길을 하나 발견했네요.
사진 정리해야 겠네요.
부럽땅~~“`
그러게여~~~
잘 지내고 있죠?
오늘 모두 쉬는 날인데 오늘도 일하는 건 아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