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서울 가까운 곳에서 그대를 기다리겠어요.
날씨가 너무 추워 그대가 바깥 걸음을 주저한다면
먼저 화창한 햇볕을 보내 그대를 꼬드기도록 할 거예요.
아마 햇볕은 창을 어른거리며 일단 그대의 시선을 잠깐 빼앗아 갈 거예요.
그리고는 이내 그대 모르게 슬쩍 방으로 새어 들어가
그대의 발바닥을 간지를 거예요.
그대가 햇볕의 충동질에 못이겨 부랴부랴 짐을 싸고 집을 나서면
난 경기도 덕소의 도곡리에서 올라가는
새재고개 들머리에서 그대를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대의 발걸음이 무엇에 홀린 듯 그리로 향했다면
그건 그대를 기다리는 내 마음의 자장에 휩쓸린 거예요.
그대가 덕소역이나 도심역에서 내려
건물들이 시야를 어지럽히는 마을을 지나고
이제 막 새재고개로 오르는 숲길이 시작되는 곳에 들어섰을 때쯤
난 나무로 변장을 하고 숲속에 서 있을 거예요.
사람들은 그게 말이냐 되냐고 나올지도 모르지만
몸과 달리 마음은 그 거처를 어디에나 둘 수 있어요.
사랑할 때는 더더욱 그래요.
사랑이 마음의 거처를 구하면
나무는 아무 말없이 자신의 몸을 그 사랑의 자리로 내주죠.
그러니 나무를 마음의 거처로 삼아 잠깐 나무가 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예요.
그렇게 나는 나무가 되어 가지를 팔처럼 벌리고 서 있을 거예요.
그렇게 하고 있으면
멀리 산을 오르던 그대가 잠시 시선을 내게 주었을 때
그 시선이 모두 내가 뻗은 가지에 걸릴 거예요, 하나 빈틈없이.
여름엔 그대의 시선을 얻기가 너무 어려워요.
그대가 시선을 주어도 가지끝의 나뭇잎들이 모두 가로채거든요.
그대도 시선의 신비를 알고 있을 거예요.
눈길을 맞추었을 때의 그 짜릿함은 바로 그 시선의 신비에서 오는 것이죠.
가지끝에 걸리는 눈길은 잠시지만 그 순간 난 숨이 멎듯 짜릿해요.
그대는 잠시 내게 눈길을 주곤 다시 길을 걸어 고개로 향하죠.
그대가 고개를 넘던 그 시간,
나는 바람같이 그대를 앞질러 고개를 넘고
그대가 내려올 산자락 아래서 다시 그대를 기다릴 거예요.
이번에도 난 나무로 변장을 하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이번엔 가지를 팔처럼 벌리기 보다
발꿈치를 들고 몸을 꼿꼿이 세울 거예요.
숲길에 묻혔다 드러났다 하면서 길을 내려오는 그대를
더 오랫 동안 눈에 담아두기 위해서이죠.
무성한 나뭇잎으로 숲길이 빈틈없이 덮이는 여름과 달리
겨울은 듬성듬성 비어있는 가지 사이로 숲길이 비치는 계절이예요.
하필 이 겨울에 숲의 아래쪽에서 그대를 기다리는 것은
바로 그 듬성듬성한 사이로 언듯언듯 보이는 그대 때문이죠.
또 내가 키를 한껏 키운 나무로 변장을 한 것도 순전히
그대를 더 오랫 동안 내 눈에 담아두기 위해서예요.
나는 오늘 그대가 오는 길목과
그대를 보내는 길목에 나무로 서서
그대를 맞고 보내겠어요.
혹 오늘 산길을 가는 내내
누군가의 설레임 속을 가는 느낌이라면
바로 산길의 초입과 끝에 나무 두 그루를 세워
그대를 맞고 보내는 내 마음의 속을 갔기 때문이예요.
4 thoughts on “나무 두 그루로 엮은 사랑 연서”
예전에, 젊던 시절, 산행의 목적은 나무보기였어요.
오직 나무를 보려고 산을 오르다 보면 저멀리 보이는 정상은 의미가 없었지요.
오를 만큼 올라가다가 내려가자… 그것이 나의 모토였다고 할까요.
그래서인지 정상 꼭대기에서 들려오는 야호~~ 소리가 부럽기도 했지요. 지금도 가끔 이곳에서 산을 찾을 때가 있는데 한번도 산의 피크에 서 본 적이 없어요.
저 겨울나무를 보면서 꿈 하나 가슴에 심어 보네요.
산에 오르고 싶다는…
전 강원도에서 자란 관계로 특히 산과 친했어요.
산이 놀이터였으니까요.
산 정상에 간다는 건 별 의미가 없었죠.
그냥 올라가서 놀다오는 곳이 산이었으니까요.
지금도 그런 편이어서 저도 그냥 옛친구만나듯이 산에 가곤해요.
입구에 선 나무는 정말 온 몸으로 팔을 다 벌리고 기다리고 있는 것 같으네.
지나가면서 손을 내밀어 좀 잡아주지 그랬어.
겨울 산 찾아오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발뒤꿈치 다 들고 기다리고 있었을텐데 말이야..^^
사람은 많어.
워낙 서울에서 가까운데다가 전철이 생기는 바람에
아무리 추운 날도 사람이 꽤 다닌다.
남한산성 보다는 먼데 남한산성보다 더 좋은 듯도 해.
나무는 남한산성의 나무들이 훨 좋기는 하지만 여긴 산에 올라가면 한강이 보여서 좋아.
담에 쉬운 길로 걸어서 두물머리까지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