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길과 눈의 길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1월 11일 경기도 도곡리의 새재고개 올라가는 길에서

날씨가 추워지자
계곡을 흘러내려가던 물이 얼어붙었다.
하얗게 물의 길이 드러났다.
어제도 그제도 물이 내려갔을 길이다.
물은 그냥 내려가는 것 같아도
항상 제 길을 꼭 붙들고 내려간다.

눈이 내린 날,
눈은 세상을 하얗게 칠하면서
계곡을 내려가던 물의 길을 모두 지워버렸다.
그리고 속삭였다.
“그 어떤 길에도 구속되지마.
세상에 네가 항상 다녀야할 정해진 길이란 없어.
넌 어디든 갈 수 있어.
네가 가면 그곳이 바로 물의 길이 되는 거야.”
길이 지워진 세상에선
길이 끊긴 것이 아니라
어디나 길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1월 16일 경기도 도곡리의 새재고개 올라가는 길에서

사실은 물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니던 길에서 얼어붙은 뒤로 물이 어제 갔던 물의 길을 고집하자
그 뒤의 물들은 곧바로 어제까지 다니던 물의 길을 버리고
평상시 사람들만 다니던 등산로로 새롭게 길을 텄다.
눈이 덮어 새로 내놓은 물의 길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곳의 눈밭을 디뎌본 사람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곳이 이제 매끄러운 물의 길이 되었다는 것을.
그 미끄러운 발밑이 위험스러워
눈을 조금 헤쳐본 사람들은 누구나 그 자리에서
새로 내놓은 투명한 물의 길을 볼 수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1월 16일 경기도 도곡리의 새재고개 올라가는 길에서

10 thoughts on “물의 길과 눈의 길

  1. 그 어떤 길에도 구속되지 않고 산다면
    나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봤어요. 그런 편이 아니라서.

    눈 내린 산에 가본지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덕분에 따뜻한 방안에서 눈내린 산길을 이리저리 잘 보고 있습니다만
    이젠 차가운 눈길을 정말 밟아보고 싶군요.
    저 백설기 잘라놓은 듯한 산길 가져가도 되겠죠?

    1. 가져가셔도 되지요.
      근데 조건 길이 아니고 물이 내려가는 계곡이예요.
      사람들은 조기로는 안다닌답니다.
      사실은 다리 위에서 찍은 사진이예요.
      막 본격적으로 산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다리가 하나 있는데 그 위에서 찍었어요.
      물길을 눈이 덮어버린 사진을 찍으려 했는데 마음에 두었던 곳은 아래쪽이라 얼음이 녹아서 눈도 그 위에서 녹아버렸더라구요. 그래서 찾아낸 곳이 바로 저기 였습니다.
      사진으론 들을 수가 없는데 사실은 물이 흘러가는 소리가 졸졸 들려요.

      산보다 눈내릴 때 계시는 곳의 한강변 거니시면 더 운치가 있을 듯한데요.
      언젠가 눈내릴 때 그 동네의 한강변에 나가 사진찍다가 결국은 검단산 꼭대기까지 올라갔던 적이 있었어요.
      그날 밤늦게 전등불 밝히면서 내려왔었지요.
      좋은 곳에 사시니까 그게 참 부럽습니다.

  2. 맛깔스런 글들…
    잠시 얼어 붙은 물들을 흔들어 깨울 것 같아요
    제 영혼도 맑아 지는 것 같네요
    글과 사진을 보면서 호사하는 것 같아서 늘 죄송하네요
    새해 행복하세요~~~!

    1. 가끔 산에 갈 때마다 자연이 놀랍곤 해요.
      잠시 내린 눈발과 추위로 어떻게 그 많은 느낌을 주는지…
      전철이 연장되는 바람에 자주 찾게된 한강 건너의 산이 참 좋네요.
      즐거운 한해가 되시길 빌께요.

  3. 명절, 가족분들과 잘 보내고 계신지요? ^^
    요즘 블로그 관리하기가 참 힘들어서 이웃 블로거님들께 안부도 묻기 힘드네요~

    정말 멋드러진 곳에도 몇 군데 다녀왔는데 사진기도 안가져가서
    올릴 사진도 얼마 없는 것 같아요; 끙끙;

    여기선 참 눈 볼 일이 없어서 사진으로나마 꽁꽁 얼은 얼음과
    눈 보니까 참 좋습니다. 그래도 역시 추운 것보다 더운게 나은지
    뜨거운 햇살이 그리워집니다! (집도 학교도 추워서 횡설수설하네요; )

    1. 공부 열심히 하시는가 봐요.
      영국의 jeongism님은 신혼의 단꿈에 빠져 블로그를 내팽개치셨더구만요. 미국의 암행님도 빨리 재회의 단꿈에 빠져 블로그를 팽개치셔야 하는데…

    2. 내팽게진게 아니라 잠시.. 움… =)
      맨날 집에만 있다보니, 블로그에 글 소재가
      잘 없어서 그러네요.

      즐거운 구정 보내셨나요?
      결혼전에는 밥해주면 잘 먹더니,
      결혼하고나서 집사람이 제가 하는 요리를
      별로 안좋아하는 듯…. 집사람이 꼭 반찬 투정하는 남편같아요.

      맨날 둘이 장보러 다니는데, 지금은 처음으로 집사람 혼자
      장보러 갔네요. 그 사이에 저는 동원님 블로그에 댓글을~

      즐거운 한주 보내세요~

    3. 이런 호박씨까고 있는데 나타나시다니…

      지금이 둘이 있는 것만으도 한없이 좋을 때인데 블로그 같은 거 하면 안되요.

      명절을 별로 안좋아해서 그냥저냥 보냈어요.

      정님은 둘이서 두배로 즐거운 한주 보내시길요.
      아, 여긴 벌써 화요일이예요.

  4. ‘그 어떤 길에도 구속되지 마’ 물의 자유로움과 물의 편안함과 물의 유연함을 배울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들도 추운 겨울에는 잠시 길을 버리고 쉬고 있는 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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