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는 백색의 포식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하얗게 집어 삼킨다.
금속성의 뼈대로 단단하게 각을 세운 철탑을
씹지도 않고 소리없이 집어 삼킨다,
바로 우리의 눈앞에서.
목구멍에 걸리지 않을까 염려스러웠지만
벌써 철탑은 반넘어 안개 속으로 녹아들고 있었다.
철탑의 비명마저 안개 속에 하얗게 묻혀 버렸다.
동쪽에서 얼굴을 내밀다
안개의 손아귀에 걸려든 아침 태양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있다.
차들은 마치 무엇에 홀린 듯 길을 달려 안개 속으로 질주한다.
안개는 꾸역꾸역 몰려드는 차들을 남김없이 삼켜버린다.
안개는 세상의 모든 것을 하얗게 집어삼키는
백색의 포식자이다.
4 thoughts on “안개 3”
인천공항이 지리학적으로 보면 안개가 자주 끼는 곳이라
공항으로는 부적격이라는 반대의 글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예전 새벽에 도착했는데 안개가 너무 많아 착륙을 못하고
부산으로 회항해서 두 시간 정도 기다린 적이 있습니다.
기내에서 대기했지만 안개 덕분에 부산까지 뽀너스 여행을 했습니다.
그런 안개지만 시간 앞에서는 기운이 빠져 사라지더군요.
시간. 시간이 문젭니다.
그렇습니다.
버티면서 시간을 넘겨야 합니다.
한수산의 <안개시정 거리>라는 소설이 떠오르네요.
춘천의 안개와 안개가 벗어진 소양강댐의 한가롭고 평화롭던 빛깔도…
금속성의 단단한 철탑도 일시에 삼키는 포식자인 안개를 보기 위해 청량리에서 경춘선을 타고 춘천으로 달려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전 세계가 ‘안개정국’이라서… 어디 숨을 때가 없다는 답답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시험끝난 딸이 청량리서 경춘선 열차타고 친구들과 놀러간다고 하는 군요. 우리 시대의 낭만이 세대를 달리하여 계속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