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로스의 태양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7월 7일 경기도 일산의 호수공원에서


이카로스(Icarus)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얘기 가운데 하나이지.
신화가 전하는 내용에 따르면 이카로스는
밀납을 이용해 깃털로 만든 날개를 몸에 붙이고
태양을 향해 날아갔다고 해.
이카로스의 얘기보다 더 궁금한 건
구체적으로 날개는 어떻게 만들었는지,
또 그걸 밀납으로 어떻게 몸에 붙이는지 였지만
신화는 그런 것까지 자세히 들려주지는 않더군.
아무튼 그의 아버지 다이달로스(Daedalus)가 몇번 경고를 했다더군.
너무 높이 날아올라 태양 가까이 가면 위험하다고.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태양 가까이 날아갔다가
결국은 밀납이 녹는 바람에
바다 속으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고 해.
난 종종 궁금했었어.
왜 그는 위험하다는 데도 태양 가까이 날아간 것일까 하고.
공중을 난다는 것의 희열에 휩싸여 그렇게 되었다는 얘기가 있더군.
하지만 그건 좀 이해가 되질 않아.
나는 것의 기쁨을 맛보고 싶다면
굳이 태양쪽으로 날아갈 필요가 있을까 싶었어.
사실 나는 것의 희열은 태양쪽을 보며 날 때보다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날 때 더 크지 않겠어.
나도 딱 세 번이지만 비행기를 타본 적이 있었는데
내가 높이 날아올랐다는 것의 희열은
비행기에서 하늘을 올려다 볼 때가 아니라
사실은 이제는 아득하게 내려다보이는 지상에 시선을 두었을 때였어.
날아올랐을 때의 그 아득한 높이가 감지되는 것은
지상을 내려다 보았을 때야.
이카로스도 그 점에선 우리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는 것의 희열이 좋았다면 지상을 내려다보며
지상의 자장권 내에서 날아다니고 말았을 거야.
태양으로 날아갔을 리가 없어.
그러니 그가 태양을 향해 날아간 것은 다른 이유가 있었을 듯 싶어.
이카로스가 태양을 향해 날아간 것을 두고
미지의 세계를 향한 이카로스의 초월적 희구라고 말하는 얘기도 있더군.
이것도 좀 웃겨.
태양이란게 대충 쳐다보면 그래도 짐작이 가질 않나.
태양은 미지의 세계라기 보다 거의 분명한 세계가 아닌가 싶어.
특히 그게 뜨겁다는 것에선 말야.
그럼 위험도 명백하게 감지되었을 텐데
이카로스가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무모함을 보였다는 것은 이해가 가질 않아.
불을 알고 싶어 불속으로 뛰어들었다는 건 좀 얘기가 이상하잖아.
그건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구의 열정이라기보다
무모함의 극치라고 해야 맞는 얘기가 아닐까 싶어.
그러니 그것도 말도 안되는 얘기야.
그래서 말인데 난 혹시 이카로스의 눈에
태양이 탈출구로 보인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해.
실제로 날이 흐린 날,
태양은 마치 터널의 끝처럼 하늘에 걸려있을 때가 많아.
가끔 우리는 우리가 지금 이곳에 속박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곤해.
마치 터널 속에 갇힌 느낌이랄까.
그렇게 보면 우리 사는 세상은 거대한 터널이야.
어디를 가도 터널 속이지.
심지어 날아다녀도 그 거대한 터널을 벗어날 순 없어.
그런데 가끔 태양이 저 멀리 하늘 위로 그 터널의 통로마냥 걸려있지.
어느 날 이카로스의 눈에 들어온 태양도,
그런 탈출의 통로로 보인 것이 아니었을까.
빠져나가면 속박없는 자유의 세상으로 갈 수 있는 탈출구!
아무 생각없이 태양 속으로 날아갔을 거 같지 않아.
가끔 날이 흐린 날,
태양이 터널의 통로처럼 하늘에 걸려있어.
이카로스처럼 떨어져 죽겠지만 그 환시의 통로로 날아가 보고 싶어.
이상(李箱)이 박제된 자신을 버리고 날아가고 싶어했던 세상도 다르지 않을거야.

6 thoughts on “이카로스의 태양

  1. 어른 말씀 들어 손해보지 않는데 그러지 않았네요.
    그리고 아버지는 밀납이 녹는다는 걸 어찌 알았을까요?
    혹시 아버지는 먼저 갔다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뒤를 이어 이카로스도 가출을 했는데 그것이 출가가 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 저 통로로 나가면 어떤 세계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동원님의 태양 저 너머에는 따뜻한 ‘고향’이 펼쳐져 있을 듯…

    1. 사실은 흐린 날의 태양에서 탈출구를 보다보니
      그 바깥의 세상에 대해선 좀 비관적이 되요.
      정말 이 세상에 탈출구는 있을까 하는…
      그냥 탈출을 꿈꾸며 글을 쓰는 순간이 바로 탈출의 세상인 듯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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