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녹슨 배

Photo by Kim Dong Won
2005년 8월 31일 춘천 청평사 올라가는 길에서


춘천 청평사 오르는 길에
풀밭에 버려진 배 한 척 있었다.
오래도록 물결 위에 배를 깔고 살다보면
조금만 물을 떠나도 물결의 갈증이 심해진다.
녹슬도록 오래 물을 떠나 있었으니
물결의 갈증은 턱밑까지 오르고도 남아
아마 온몸의 갈증이 되었으리라.
그 갈증을 생각하면
벌써 무너졌을 것 같았지만
녹슬어가면서도 배는 풀밭을 견뎌간다.
계곡을 흘러가는 물소리가
찰랑거리며 배의 뒷전을 스치고 있었고,
웃자란 풀들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초록의 물결이 일고 있었다.
계곡물과 풀들이 잠시 자신들을 버리고
녹슨 배 한 척의 옛꿈이 되어 주었다.

6 thoughts on “버려진 녹슨 배

    1. 물에서 놀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으니 외롭긴 외로울 거예요.
      그렇긴 해도 산새들이 와서 외로움을 달래줄지도 몰라요.
      바로 곁이 나무가 무성한 산이거든요.

  1. 아마 옛날에는 커다란 물길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삽질의 영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급하게 듭니다.
    비가 많이 와도 이제는 너무 오래 쉬었던터라
    다시 물길로 나가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덕분에 배는 물길만 다니다 이제는 수륙양용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1. 그 반대일거 같습니다.
      여기가 소양댐이거든요.
      아마 그 전에는 그냥 작은 강이 멀리 아래쪽에 있었을 것 같은데
      댐을 막는 바람에 물이 많이 불어나면
      여기까지 물이 올라오게 되었죠.
      어쨋거나 물이차서 그 물에서 배가 놀게 되었을 테니
      배가 버려진 것이 삽질의 결과는 분명합니다.

  2. 아주 오래 전, 저 비슷한 배를 타고 소양강댐에서 청평사로 향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제는 옛꿈이 되어버린 초록 물결을 저 배는 기억하고 있을까요? 녹슬어가는 배처럼 옛 기억들이 아스라이 잊혀지고 있습니다.

    1. 청평사는 분명하게 남아있는 기억은 두 번인데, 흐릿하게 갔었는지 말았는지 하는 기억이 한번 더 있어요. 아주 젊었을 때 친구들과 한번 갔었지 않았나 하는 기억이 있는데 확인을 못하겠어요. 가끔 갔었던 곳의 기억도 재생이 잘 되질 않아요. 사진이 있으면 종종 놀랍게 기억이 복원되곤 합니다. 갔던 곳도 많이 변하곤 하는데 사진은 내가 갔던 그 때를 그대로 간직했다 다시 저를 그곳으로 데려다주곤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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