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플래시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2월 20일 서울 종로에서

우리는 모두 어둠 속에 숨어 있었다.
그녀의 카메라가 우리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우리들을 사냥하려 하고 있었다.
그러다 드디어 우리들을 발견하고,
우리들을 향해 카메라의 초점을 모았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 정도 안심하고 있었다.
환한 대낮이라면 우리는 아연 긴장했을 것이다.
셔터를 누르는 간단한 동작만으로
우리는 모두 그녀의 카메라 속으로 빨려들어갈테니까.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주변으로 짙게 깔린 어둠을 믿고
그녀의 카메라가 우리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도
키득키득 거리며 웃고 있었다.
우리는 이미 어둠의 위력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빛의 조도가 낮고 어둠의 농도가 진한 곳을 골라
그곳에서 술을 마시며
그녀의 카메라가 우리에게 초점을 맞추는 그 순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었다.
이 정도의 어둠이라면 충분히 안심해도 될 것이다.
아무리 셔터를 눌러대도
그녀는 기껏해야 우리의 희미한 흔적밖에 가져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갑자기 그녀의 카메라가 우리를 향하여
펑하고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다.
바로 그 순간 짧고 강한 빛이 튀어나오더니
우리를 모두 빛의 그물로 낚아챘다.
순식간에 우리는 그녀의 카메라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순식간에 우리를 낚아챈 그녀는
우리들을 모두 챙겨가지고는
그 하얀 섬광의 뒤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찰나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에도
그녀는 자신의 꼬리를 감추진 못했다.
우리에겐 하얗게 사라지는 그 순간에 남기고간
그녀의 꼬리가 남아있었다.
용케도 그 꼬리를 밟아 남겨놓은 것은 나였다.
긴꼬리만 밟히는게 아니다.
때로 아주 짧은 꼬리도 밟힌다.

8 thoughts on “카메라 플래시

  1.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했는데
    이제는 찰나의 꼬리도 밟히는 세상인가 봅니다.
    사진을 보니 저격수 두 사람이 망원경으로 마주보며
    조준하고 있는 장면이 생각납니다.
    2월 20일 종로에서는 누가 살아 남았는지 궁금합니다.ㅎㅎㅎ

  2. 우히히 크크크 …..저 컴이 이상해서. 사진도 못올리고 있어요. 복구에 복구로 간신히 먹고 살아용!!! 쩜만 기다리셩.. 엘지전자야 빨리와서 곤쳐주렴

    1. 완전 명랑 쾌활 소녀시네.
      일단 기다리고 있어 볼께요.
      복구 대신 깨끗이 밀고 새로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예요.
      컴터는 복구하는게 더 어려워요.
      새로 시작하는게 속편하다는.

  3. 메일을 보냈는데, 튕겨나와버렸습니다. 좌절~

    보내주신 모임사진 중 단체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하고 신고합니다.
    NO 하시면, 바로 내릴테고,
    YES 하시면…. 난중에 술한잔 거하게… (는 유리지갑 사정상 어렵고, 적당히!)

    꾸욱~

  4. 저도 알 것만 같은 그녀가,
    펑! 하고 사라질 것만 같은데요?!
    플래쉬와 플래쉬가 만나서 그런가요.
    빛이 사라지게 만든 현상이 묘하네요.

    1. 플래시와 플래시가 만난게 아니고,
      저 카메라만 플래시가 터진 거예요.
      제 카메라는 그냥 No Flash 상태로 상대방의 플래시가 터지는 순간을 잡아낸 거죠.
      플래시가 터지는 순간이 대체로 60분의 1초니까 이걸 잡아낸다는 것이 쉽지가 않은데 어쩌다 제 카메라에 그 60분의 1초가 잡힌 것이죠.
      사진 들여다보는데 신기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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