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승이와 채윤이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3월 10일
현승이

알고 있던 분이
가까운 이웃 동네로 이사를 왔습니다.
딸은 티라미수 케익을 만들고,
그녀는 베이글을 챙기고,
나는 포도 쥬스를 손에 들고 놀러갔습니다.
사실은 블로그 이웃이어서
그 집의 아이들 얘기를 자주 듣고 보고 있었습니다.
종종 블로그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우리에게 즐거움을 안겨주곤 하지요.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느낌이 있는 남자라고 feel님이라 부르는 그 분과
실없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그 분만은 실있는 분이라고 실님이라 부르는 분보다
바로 그 집의 아이들, 현승이하고 채윤이하고 놀게 되었습니다.
뭘하고 놀았을까요?
음악 퀴즈를 내고 맞추면서 놀았습니다.
이런 경우는 난생 처음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아이들하고 음악 퀴즈를 내고 놀 수 있는 집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아마 다섯 손가락도 꼽기 어려울 겁니다.
일단 처음에는 채윤이가 문제를 냈는데
노래 제목을 맞추는 문제였습니다.
작곡가로 하이든인가를 댔는데
작곡가 이름을 대자마자 현승이가 맞추는 바람에 소란이 빚어졌습니다.
현승이가 맞추는 것은 거의 음악퀴즈 진행을 방해하는 행위였거든요.
우리는 이건 말도 안된다며 강력하게 항의를 했습니다.
어떻게 작곡가 이름만 나왔는데 맞출 수가 있냐며
혹시 미리 짜놓은 각본아니냐고 주최측에 항의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쨌거나 현승이는 맞추면 안되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습니다.
채윤이는 궁리궁리 하더니
헨델에게 또다른 이름이 있는데 그게 무엇일까를 묻더군요.
그래서 제가 잽싸게 대답했습니다.
“음악의 킹왕짱!”
이런, 비슷했는데 틀렸다고 했습니다.
갖가지 답이 쏟아져 나왔지만 딩동댕은 나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힌트좀 달라고 했지요.
헨델이 남자였는지 여자였는지 물어봤더니 남자라고 하더군요.
그럼 남자니까 음악의 어머니는 아닐꺼고…
재빨리 머리를 굴려서 음악의 아버지라고 했더니 이번에도 땡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제가 버린 음악의 어머니를 냉큼 줏어다
음악의 어머니라고 했는데 딩동댕이 울렸습니다.
나는 말도 안된다고 했습니다.
남자라고 했으면서 어머니라니 말도 안된다는 얘기였지만
그만 제 항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음악계에서는 음악을 낳고 기르는데 있어 남자와 여자를 가리질 않는가 봅니다.
채윤이에 이어 이번에는 현승이 차례가 되었습니다.
물론 또 한바탕 소란이 일었지요.
왜냐하면 현승이가 문제를 내자마자 채윤이가 맞추면서 김을 빼버렸거든요.
현승이는 좀 세게 나왔습니다.
feel님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거든요.
이번에는 채윤이에게 진행 방해를 않기로 단단히 다짐을 받고
다시 퀴즈를 내게 되었습니다.
현승이가 낸 문제도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호두까기 인형을 작곡한 사람이 누구일까요를 묻는 것이 문제였거든요.
그녀가 가장 먼저 손을 들었습니다.
‘차에 치인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잠시 머리가 띵했습니다.
난 그건 아닌 것 같다며
내가 알고 있기로 그 사람은
차에만 타면 좀 지저분 해지는 사람이라고 정정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차에서 코푸는 사람’이라고 정리를 했지요.
현승이가 땡을 치더군요.
어, 이거 점잖게 맞추려고 했는데 그게 안되는 군요.
할 수 없이 ‘차에서 코푸는 시키’라고 세게 나갔습니다.
그래도 땡이더군요.
결국은 현승이가 들려준 답에 굴복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차이코프스키라고 하더군요.
물론 퀴즈가 이것으로 끝나진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음악이나 만화 영화 퀴즈를 풀면서 노는게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feel님하고 실님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우린 유치원다니는 현승이랑 초등생인 채윤이랑
음악 퀴즈랑 만화 영화 퀴즈를 풀며 노는 시간이 가장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사실만큼은 밝혀두지 않을 수가 없군요.
바로 대접받는 저녁 얘기입니다.
보통 맛으로 배를 채우기는 어려운데
어찌나 맛있는지 그저 수저 한번뜨는 것만으로
벌써 뱃속에 맛이 그득 차던걸요.
대개의 식사는 맛보다는 양의 포만감으로 배를 채우면서 끝나는데
해주신 저녁은 맛으로 배를 채운 흔치 않은 경험이었습니다.
아, 그리고 그녀에게 붙여준 그 호칭,
그러니까 현승이의 털보 부인도 압권이었습니다.
즐거웠던 그 시간을
현승이와 채윤이의 사진 두 장으로 여기에 남겨놓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3월 10일
채윤이

19 thoughts on “현승이와 채윤이

  1. 오늘 이 사진 좀 제 블로그에 써요.
    애들 얘기 포스팅 하면서 늘 사진이 아쉬운데…
    간만에 뽀대나는 사진으로…. ㅎㅎㅎ
    감사합니다.

    1. 옥이 한테 이멜이 있다고 하니까 옛날에 찍었던 사진도 정리되는대로 보내 드릴께요.
      저도 읽어봤는데 사진이 뽀대가 나긴 나네요. ㅋㅋ

    1. 뭐 거의 성남, 덕소, 양수리 등등이 모두 저희 활동 반경인 걸요. 아마도 너도바람님하고 많이 겹칠 듯 싶어요. 수달도 아닌데 활동 반경이 상당히 넓은 듯 싶습니다. 이제 꽃피는 시절이 왔으니 남한산성에서 부딪칠지도 모르겠어요. 그녀가 특히 너도바람님 보고 싶어 하더군요. 저는 복수초찾아 남한산성을 뒤져볼까 생각중입니다.

  2. 오늘 강의 중 쉬는 시간에 들어와서 이 글과 사진 봤어요.
    (요즘엔 강의실 교탁에서 인터넷이 되드라구요. 참 좋은 세상이죠?)
    저도 모르게 키득대는데 학생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봐서 잠시 뻘쭘했고요. ^^;;

    저 진짜 놀랬어요. 저희 애들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대답도 크게 못하거든요.
    많이 보고 친해져야 대답도 길어지고 가끔 한 두 마디 먼저 말을 걸기도 하는 정도지요.
    헌데, 애들이 무슨 약 먹은 애들처럼 뛰고 오버하고 흥분하고….
    두 분이 타코양만 자유롭게 키우신줄 알았더니 아마도 ‘아이를 자유롭게 하는 비법’을 가지고 계신 게 분병해요. 아니고선 애들이 어쩜 그럴 수 있을까요?
    덕분에 저희도 정말 유쾌한 시간이었어요. 그 시간이 가장 즐거우셨던걸 모르고 괜한 걱정을 했어요. 헤헤.

    현승이는 어제 갑자기 뜬금없이 ‘털보아저씨! 우헤헤헤….’하면서 웃기도 했었어요.
    사진들 너무 예쁘고요. 여러 가지로 감사드려요.

    1. 사랑스럽기 이를데 없던 걸요.
      저도 우리가 옛날부터 이렇게 친했던가 마구 헷갈렸어요.
      아이를 그렇게 키우기도 쉽지 않은데 두 분도 대단해요.

    1. 저야 항상 나이에 관해선 철저하게 공동체 주의죠.
      모인 사람들의 평균 년령으로 나이를 계산해서 저도 슬쩍 그 나이를 함께 쓰니까요. 유치원 다니는 현승이 덕택에 나이를 아주 크게 낮출 수가 있었으니 이번에는 특히나 혜택이 컸습니다. 현승이 모르게 저만 그렇게 계산하긴 했지만요.
      어쩌다 좋은 이웃이 생겨 이게 왠 굴러온 복인가 하고 있습니다.

    1. 경건함과 진지함, 자유, 즐거움, 유쾌함이 절묘하게 조화와 균형을 이룬 집이랄까.
      근데 이거 차씨께서 항의하지 않을까 갑자기 걱정이 되고 있어요.

  3. 이야~ 재밌당.
    저두 재밌게 읽다가 ‘차에서 코푸는 시키’에서 팍 터졌습니다.
    애들이 털보아저찌.아줌마랑 자주 놀고 시퍼하게 될거같은 예감이..
    옛날 어렸을때 보면 미국드라마 ‘털보아저씨’가 생각나네요.
    참 마음 따뜻하고 애들의 마음을 잘 읽는 좋은 아저씨였거든요.

    1. 재채기만 해도 웃어주는 아이들은 처음이었어요.
      돌아오면서 그집 엄마 아빠는 평생 재채기도 안하나 하고 우리들끼리 의심을 했습니다. ㅋ

  4. 나는 채윤이가 천정에 닿을만큼 펄쩍 뛰는 모습을 봤을 뿐이고,
    문지언니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섬세한 음악선곡에 고마울 뿐이고,
    현승이가 지어준 별명, 털보부인이 너무나 너무나 마음에 들 뿐이고…^^

  5. ‘차에서 코푸는 시키’ ㅋㅋ 한참 웃었습니다.
    요즘 아이들과 놀수 있는 동원님이 부럽네요.
    맛나는 저녁까지…
    ‘마실’이라는 정겨운 단어가 생각이 나는 글이었어요.

    1. 게임도 없고, 텔레비젼도 없고… 책과 음악만 거실에 가득한 완전 청정 문화지대였어요. 아마 그래서 아이들과 놀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저희도 결혼하고 한동안 텔레비젼 없이 살았는데 이 분들은 10년 동안 이렇게 살고 계시니 저희보다 한참 위인듯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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