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의 휘닉스파크로 내려간 것은 3월 13일 금요일이었다.
여장을 푼 뒤 깜깜한 밤에 나가 스키장 구경을 했다.
그 밤에 스노보드와 스키를 타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찌나 바람이 찬지 얼마 견디진 못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살짝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은근히 다음 날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14일 토요일 아침에 일어났을 때 바깥의 풍경은 어제 그대로였다.
눈발은 그냥 어제 살짝 날리며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한 것으로 끝이었다.
그러나 온 눈이 녹지 않고 덮여 있던 풍경은 여전했다.
토요일 아침에 혼자 휘닉스파크 스키장의 뒷산을 올랐다.
오늘은 눈풍경 가까이 시선을 들이밀어 본다.
조릿대가 눈속으로 잎을 들이밀고
눈의 깊이를 재보고 있다.
아마 눈이 많이 왔을 때는 눈속에 파묻혀 있었을 것이다.
여전히 산에 눈이 덮여있긴 했지만
나뭇가지에서 눈이 녹으면서 떨어진 흔적으로
눈의 표면은 무수히 파여있었다.
눈이 녹으면서 얼어붙어 산길이 미끄럽긴 했지만
밟을 때마다 내려앉으며 내 무게를 받아주고 있었다.
한때는 조릿대의 손이 다들어 갔었을 눈도
이제는 마디 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깊이가 얕아졌다.
또다른 조릿대는 아예 잎을 V자로 펼쳐들었다.
우리 승리하는 한해가 되는 거야.
야구 이길 걸 예감한 것이었나.
가끔 자명한 사실이 우리들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이번 산행에선 눈이 녹는 것이 그랬다.
오르는 길에 보았더니
가랑잎을 묻고 있는 눈이 녹아
가랑잎의 여기저기를 적셔놓고 있었다.
난 놀라운 듯 말했다.
“눈이 녹고 있어.”
겨울눈은 세상을 하얗게 덮어
계절이 겨울임을 증명하지만
산길에서 녹고 있는 눈은
봄이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산길에 빈틈없이 눈이 덮여 있었지만
겨울을 붙들고 있지는 않았다.
나무들이 산길에 그림자를 걸치고
사다리 놀이를 하고 있었다.
사이가 너무 넓어
도저히 내 걸음으로는
나무들이 걸쳐놓은 그림자 사다리를 타고 오를 수가 없었다.
커다란 바위 두 개가
눈으로 만든 납짝한 호떡 모자를 쓰고 있다.
평생을 민머리로 살아가니까
겨울에 해쓰는 하얀 눈모자가 좋았을 것이다.
아이고, 봄이 가까워오니까 이제 눈도 무겁다.
이제 그만좀 내려오거라.
그래도 눈 때문에 허리가 휜 건 아닐꺼다.
눈의 주사기 놀이.
겨울 추위에 지친 심신을 부드럽게 녹여주는 신비의 주사다.
한방 맞으면 감기도 안걸린다.
거짓말 아니다. 그렇지만 뻥일 수는 있다.. ㅋ
그녀는 여행 가기 전에 감기걸렸고,
딸은 감기 걸려갔고 돌아왔다.
나만 멀쩡하다.
눈 주사의 효과가 아닐까 싶어진다.
주사 맞으러 산중턱까지 올라가야 하는게 좀 흠이긴 하다.
나무 꼭대기에 눈이 찢어진 휴지처럼 걸려있다.
휴지는 물에 녹는데 눈은 햇볕에 녹는다.
아침 햇볕이 물처럼 나무 꼭대기까지 찰랑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오는 봄을 꽃에서 찾아다닌다.
하지만 실제로는 봄은 눈속 땅밑에서 가장 먼저 꿈틀대고 있을 것이다.
나뭇잎 하나가 손을 활짝 펴 눈위에 대고 있다.
눈속 저 밑에서 전해오는 미세한 봄기운을 감지했을 것이다.
나뭇잎에게서만 가능한 봄맞이이다.
봄에 떨어진 낙엽들은 손을 활짝펴고
땅에서 전해오는 미세한 봄기운을 감지하면서 봄을 맞는다.
숲 사이로 겨울이 히끗히끗하다.
가끔 바람이 나를 거쳐 나무들 사이로 몰려간다.
바람이 아주 차다.
겉의 온기만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옷속을 파고들어 속의 체온까지 꺼내간다.
바람은 아직은 겨울과 놀고 있었다.
바람은 어느 계절과 놀고 있느냐에 따라 느낌이 완연히 다르다.
눈길이 아주 좋다.
발등까지 폭폭 빠지는 길이다.
그러나 등산로를 조금 벗어나 봤더니 갑자기 무릎까지 푹푹 들어간다.
산을 보호하기 위해 등산로로만 다니라고 하는데
강원도의 눈길에선 길 아닌 곳으로는 다니라고 해도 다니기가 어렵다.
산꼭대기의 긴의자에
눈이 길게 누워 휴식을 청하고 있다.
겨울 한 철을 하얗게 보낸 눈이
봄으로 가는 길목에서 청하는 마지막 휴식이다.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산에 온통 눈이었지만 봄이 오고 있었다.
***이 글의 1편
평창 휘닉스파크 스키장의 뒷산을 오르다 1
6 thoughts on “그래도 봄은 오고 있다 – 평창 휘닉스파크 스키장의 뒷산을 오르다 2”
강원도 스키장들이 모두 폐장하면 맥주사서 김치찌게 얻어 먹으로 갈께요. ^^
스키장 끝나면 좀 한가할 테니
그때는 남친도 같이 와요.
이곳은 봄을 너머 벌써 초여름으로 줄달음쳐 가고 있는 듯 낮은 덥습니다.
평창의 눈덮인 산과 하늘, 나무들을 기억하면서 봄을 건너야겠어요.
여기도 서울과 봉평은 확실하게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봉평의 삼양목장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니 강릉은 또 눈이 하나도 보이질 않더군요. 내려가던 날 들으니 그날 한계령에는 엄청나게 눈이 왔다고 했어요. 그리로 가고 싶었지만 가족 여행이라 참았지요.
평창 뒷산에서 봄을 가지고 상경하셨나 봅니다.
갑자기 늦봄 날씨가 됐습니다.
우리야 끝내 봄이 오면 좋지만
평창은 늦게까지 겨울일 것 같아 미안한 맘이 생깁니다.
올라올 때 서울 가까이 오니 벌써 더운 느낌이더라구요.
평창이야 그 추위가 매력이 아닐까 싶어요.
어찌나 바람이 심한지 썰매에 아이를 앉혀두면 가만히 두어도 미끄러져 나갈 정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