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자 나뭇가지에서 새잎이 돋았다.
어지럽게 얽혀 배경을 채운 나뭇가지들은
지난 가을 제 스스로를 비운 뒤로
여전히 스스로를 비워둔채이다.
스스로를 비우긴 했지만
나뭇가지가 얽힌 배경은 색이 어둡다.
비우면 투명해지기도 하지만
그 투명의 뒤로 탈색된 낙엽이 깔린 산의 품이 그대로 비치면서
가지 사이의 색은 아직 어둡기만 하다.
어두운 배경 때문에
갓나온 새로운 잎들이 더욱 확연하게 눈에 띈다.
아니 분명 가지 끝에 붙박혀 얼굴을 내민 것이건만
마치 가지 사이를 날아다니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나는 잠시 그 착각을 그대로 용인한채
연두빛을 머금은 갓나온 잎들을 눈앞에 두고
나비떼의 군무를 상상했다.
이제 시간이 지나 초록이 짙어지면,
이른 봄 세상에 갓나왔을 때
연두빛 날개를 펴고 가지 사이를 날아다니던
그 환상의 순간은 사라지고
잎은 모두 넓게 초록의 손을 벌려
가지끝에 굳건하게 정착을 할 것이다.
가을까지 바람이 아무리 흔들어도 거의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어쩌면 내가 이른 봄의 갓나온 잎에서
나비떼의 군무를 본 것은
아직 삶에 물들기 전 누구나 그려보았던 우리들의 꿈일지도 모른다.
이른 봄 이제 막 잎을 뿜어낸 나무 밑을 지날 때,
연두빛 나비들이 가지 사이를 꿈처럼 날고 있었다.
2 thoughts on “새잎이 돋은 나무 밑을 지나다”
마른 나뭇가지에 연두빛 나비가 떼로 몰려 와 있네요.
나비는 점점 자라 초록빛 꿈을 키워내겠지요.
올해도 잊지 않고 찾아 온 저들에게 ‘고맙다’ 는 말 전하고 싶어요.
좋아하던 노래 중에 ‘하늘색꿈’이라고 있었는데 나무들의 노래는 ‘초록색꿈’인 셈이예요. 특히 봄에는요. 봄날 여리게 시작해서 여름에 목소리를 진하게 높게 뽑아올리는 아주 긴 호흡의 노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