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소의 새재고개와 예봉산 자락을 걷다

2008년에는 남한산성과 가장 친하게 지낸 것 같다.
매번 마천동쪽에서 서문이나 연주봉 옹성만 들락거리다가
지난 해는 북문과 남문, 남쪽의 옹성 바깥쪽을 두루 섭렵했다.
올해는 한강을 건너 북쪽으로 걸음을 하며
팔당의 예봉산과 급속도로 친해지고 있다.
찾는 산의 이름을 예봉산으로 손에 꼽았지만
사실 이곳은 여러 산이 맞물리며 이어지고 있어
딱히 예봉산을 가고 있다고 말하기도 뭣하다.
예빈산, 예봉산, 철문봉, 적갑산, 운길산으로 이어지며
산들이 C자형으로 엮여 있기 때문이다.
4월 5일 일요일,
여느 때처럼 덕소에서 새재고개를 오르는 것으로 걸음을 뗀 나는
이번에는 예봉산 방향으로 향했다.
하지만 중간에 샛길로 산을 내려와 운길산역으로 향했다.
길을 걸으며 항상 그랬듯이 이것저것 기웃거렸다.

Photo by Kim Dong Won

덕소에서 새재고개로 가는 길에
길옆에 있는 주차장에서 작고 노란 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꽃다지이다.
커다란 차 한대가 바로 턱밑까지 와서 서 있다.
꽃들이 자리를 잡은 것을 보면
차가 꽃들의 자리까지 밀고 들어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매번 삶이 아슬아슬하게 긴장될 것 같다.
문명은 자연에겐 항상 위협이 되는 듯하다.
그러나 밟히고 짓눌리면서도
꽃은 끈적지게 살아남아 봄을 맞고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활짝 핀 매화가 봄을 하얗게 칠하며 부풀어오를대로 부풀어올랐다.
집앞에 심어놓은 파와 부추도 초록빛을 내밀어 봄의 채색을 돕는다.
겨울에 지나칠 땐
피로가 뭉친 쾡한 눈처럼 보였던 마을이
매화가 피자 화사하고 따뜻한 품으로 바뀌어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논에 물이 들어와 있었다.
냇가의 나무들도 푸르게 기지개를 펴고 있었다.
아직 겨울잠을 깨끗이 걷어내진 못했지만
뿌리를 한껏 들어 발돋움을 하고 있는게 분명했다.
나무들은 곧 잎들을 하나하나 엮어 푸른 옷으로 치장을 할 것이고
논에선 목까지 찰랑거리는 물을 한껏 들이키며
푸른 모가 황토빛 논을 덮을 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겨울에 지나칠 땐
밭가에 그냥 가지가 앙상한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을 뿐이었다.
봄이 되니 노랗게 매단 꽃으로 미루어
멀리 지나치면서도 나무의 이름을 곧바로 짐작할 수 있다.
산수유이다.
매년 밭에서 산수유와 함께 봄을 맞았을 농부는
꽃이 있으나 없으나 산수유의 이름을 챙길 수 있었겠지만
봄으로 보자면 올해 처음으로 그 밭을 지나는 나는
꽃을 보고서야 드디어 나무의 이름을 챙긴다.
봄은 모두 가지로 두루뭉수리 묶여 겨울을 난 나무들이
처음 마주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꽃과 잎만으로 제 이름을 찾는 계절이기도 하다.

Photo by Kim Dong Won

난 항상 쑥이 제일 반갑다.
다른 이유는 없고 낯이 익어서 그렇다.
가끔 낯이 익고 이름을 알고 있는 것들이
내겐 반가움의 가장 큰 이유가 되곤 한다.
꽃이나 풀의 이름을 새롭게 알아가는 즐거움도 좋긴 한데
아는 얼굴을 보는 반가움이 더 클 때가 있다.
어릴 때 고향 냇가에서 지천이었던 쑥은
특히나 언제보아도 반갑다.

Photo by Kim Dong Won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가
물속에서 개구리 알을 만났다.
무수한 올챙이들이 깨어날 것이다.
그리고는 자라서 개구리가 될 것이다.
커서는 아마도 올챙이 시절은 까먹어 버릴 것이다.
실제로는 그런지 확인할 수 없지만
사람들은 흔히 어려웠던 옛시절을 까먹으면
항상 개구리를 입에 올리며 올챙이 시절을 까먹었다고 탓을 했다.
그렇지만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까먹으면 어떻게 되는지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올챙이 시절을 까먹은 개구리는 뱀을 잡아먹으려 들기라도 할까.
당췌 모르겠다.

Photo by Kim Dong Won

소금쟁이도 만났다.
물위를 걷는 벌레.
물위를 걷는다고 하면 퍼뜩 생각나는 것이 예수.
그래서 소금쟁이를 영어로는 예수 벌레(Jesus bug)라고도 한다.
영어 명칭은 water strider이다.
stride가 크게 성큼성큼 걷는 것을 뜻하니까
소금쟁이의 걸음이 종종걸음이 아니라 큰 걸음으로 보인 듯하다.
우리나라에선 왜 소금쟁이란 이름이 붙었는지 알 수가 없지만
혹시 소금장수는 절대로 물에 빠지면 안되니까
절대로 물에 빠지는 법이 없는 소금쟁이를 보고
소금장수를 떠올린게 아닐까.
소금은 어디 두었는지 보이질 않고
그냥 가뿐하게 보이는 몸뚱이만 하나 들고
소금쟁이가 계곡의 물 위를 걷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요건 도룡뇽의 알이다.
이 계곡에는 도룡뇽도 살고 있다는 뜻이 된다.
지율이란 스님은 꼬리치레도룡뇽을 살리겠다고
목숨까지 걸었던 적이 있었으니
이 산 또한 목숨을 걸고 지킬만한 소중한 산일 수도 있다.
갑자기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진다.

Photo by Kim Dong Won

처음에는 누가 이 산 속에서 조개를 구워먹다 갔나 했다.
자세히 보니 잘려진 나무 둥치를 보금자리로 삼은 버섯이다.

Photo by Kim Dong Won

누가 안경을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갔다.
주변에 사람이 있나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새순 나오는 걸 잘 보라고 걸어놓았는지도 모른다.
하긴 꽃이나 새순이 나오는 것을 하나둘 구경하고 다니는 것이
봄날의 큰 행복인 것을 보면
나무도 안경을 걸치고 좀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기는 할 것 같다.

Photo by Kim Dong Won

좀전엔 안경이더니 이번에는 코다.
돼지코 같기도 하고, 영화에서 많이 본 용의 코 같기도 하다.
자연의 향취를 호흡하고 싶어
가지 두 개를 뽑아내고 코로 삼은 건가.
하긴 숲의 채취는 없는 코도 만들어 호흡하고 싶을 정도이긴 하다.

Photo by Kim Dong Won

생긴 건 버들강아지랑 비슷한데
너무 통통하고 색깔도 좀 다르다.
혹시 비만증에 걸린 버들강아지?
이런 나무에게 비만이 있을 수가 있나.
자꾸만 나오는 내 배 걱정이나 해야겠다.

Photo by Kim Dong Won

한 가족이 산행을 하고 있다.
새재고개에 있는 약수터까지는 그다지 길이 험하질 않아
덕소에서 그곳까지는 걷는 사람들이 많다.
아이들도 종종 눈에 띈다.
아이와 함께 나온 가족들은 걸음걸이에 여유가 있다.
발걸음을 아이에게 맞추기 때문일 것이다.
아내가 앞서고 아빠는 딸의 손을 잡고 뒤를 따른다.
봄날의 따뜻한 기운이 이들 가족을 졸졸 따라가는 느낌이다.
예쁜 딸이었다.
새개고개 약수터에는 몇가지 간단한 운동기구들이 있는데
이 가족의 예쁜 딸은 그곳에 도착해선 운동을 하고 있었다.
단란한 가족은 그냥 보기만 해도 흐믓하다.
봄에 그냥 바깥으로 나서기만 해도 따뜻하듯이.

Photo by Kim Dong Won

예봉산으로 가다가
사람들이 너무 많아 번잡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길을 버리고 한적한 샛길로 들어섰다.
그 샛길에서 나뭇가지를 버리고 땅으로 내려와
열심히 낙옆을 들추고 있는 새 한마디를 만났다.
연신 낙옆 속에서 벌레를 집어낸다.
우리 보기엔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봄의 땅은 새에겐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맛난 밥상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예봉산 정상으로 가다가 버린 능선길이
이제는 저만치 아득하게 보인다.
예봉산으로 가다보면 중간에 물푸레나무 군락지가 있다.
잎이 나왔나 보려고 그곳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선 뒤 샛길을 택하여 산자락 아래로 내려왔다.
가끔 산이 무슨 거대한 주점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사람들을 스칠 때마다 술냄새가 함께 확 밀려들곤 한다.
산에 와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즐기는게 자연이 아니라 술이 아닌가 싶다.
이 날따라 기타까지 갖고 와서 떼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도 가끔 술을 마시는 처지라 달리 할말이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술냄새 풍기면서 몽롱하게 걷다 보면 산에게 좀 미안하다.
아, 이 날은 술은 안 마셨다.
한잔할까 싶었지만 혼자 술을 마시고 산을 간다고 생각하면
몸이 주저스러워 한다.
여럿이 오면 그때는 한잔 걸칠 때가 많다.
산의 능선으로 언듯언듯 사람들 모습이 비친다.
내가 가는 샛길에선 갑자기 인적이 끊겨 버렸다.

Photo by Kim Dong Won

샛길로 들어서길 잘했다.
노루귀도 만나고 괭이눈도 보았기 때문이다.
산에 있을 때는 생강나무가 노란 빛을 흔들어 눈길을 사로잡더니
산을 다 내려오니 이제 노란색은 산수유가 제 몫이라고 챙겨두고 있다.
산수유가 보인다면 산 아래쪽의 인가로 내려왔다는 소리가 된다.
꽃과 나무를 잘 알면 어느 만큼 내려오고 올라왔는지도 알 수 있다.
나무는 그냥 서 있는 게 아니라 때로 그 자리에 서서 높이도 일러준다.
나무나 꽃에게서 높이의 언질을 받으면 상당히 자연과 친한 느낌이 든다.

Photo by Kim Dong Won

물을 빨아올린 나무는 색이 다르다.
나무는 빨아올린 물로 나무끝에서 물결을 그린다.
이럴 때는 나도 물 한모금 삼키고 싶어진다.
물을 한모금 삼키고 나면
나도 푸르게 물결을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은 계절,
바로 봄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산을 다 내려오니 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아직 겨울 느낌이 완연한 빽빽한 빈 나뭇가지들 사이로
진달래의 분홍빛이 언듯언듯 비치고 있다.
산으로 오를 때라면 어서오라는 인사가 되었을 진달래가
산을 내려온 뒤 산행을 마무리하는 길목에서 보았더니
가는 걸음이 아쉽다며 손을 흔들어주고 있었다.

***산길을 걸으며 만난 꽃들은 다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덕소의 새재고개와 예봉산 자락에서 꽃들과 놀다

8 thoughts on “덕소의 새재고개와 예봉산 자락을 걷다

  1. 고로쇠 물이라는 걸 처음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쌀쌀한 기운이 있는 3월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온음료 맛이 나는 물을 고스톱 치며 오징어와 함께 먹었더랬습니다.
    그 시절은 봄이 고로쇠와 같이 왔었습니다.
    봄에 꽃이 핀다는 걸 안 것은 한참 뒤였습니다.
    그렇게 무심하거나 혹은 쿨(?)했던 시절도 있습니다.ㅜㅜ

    1. 전 올해 처음 마셔봤어요.
      평창에 놀러갔다가…
      근데 그때는 아직 쌀쌀했는데 고로쇠물이 봄과 함께 온다고 하니 그 물이 어디서 왔는지 덜컥 의심이 가긴 합니다. 동생이 좋다고 오빠한테 사주길게 그냥 마셔두었지요. 아무래도 강원도의 봄은 가장 늦게 오지만 고로쇠물은 성급하게 봄맞이를 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1. 뭐 배낭 꾸리실 필요도 없는 낙원에 사시면서 그러세요.
      슬리퍼끌고도 갈 수 있는 한강과 검단산을 지척에 두시구선.
      두 분이 손잡고 검단산 자락으로 저녁 산책만 나가도 그림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림 만드시면 블로그로 쏘아주세요.

    2. 슬리퍼 끌긴 그렇구요..^^

      팔당대교 아래 산책길이나 검단산 가려면 지나야 하는
      아파트 옆 산곡천 산책로 벚꽃들이 한창이긴 합니다.

    3. 저는 미사리 한강변으로 사진찍으러 나갔다가 어느덧 팔당까지 가서 결국 검단산을 올랐던 적도 있었죠. 반대로 검단산에서 한강쪽으로 내려와 한강변에서 사진찍다가 온 적도 있었구요. 이 만한 산과 강이 지척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2. 봄이 깊숙하게 산 속으로 스며들지 않은 듯 아직은 메마르고 건조해 보이는 모습이에요. 지금 산불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지요.
    봄비가 촉촉하게 내려서 봄동산이 푸르고 싱싱하게 피어났으면 좋겠어요.

    1. 계곡에는 물소리가 요란했는데 그래도 많이 가문듯 싶습니다. 요즘은 날씨가 가물 때는 가물고 퍼부을 때는 또 너무 많이 퍼붓고 그래서 적응이 힘듭니다. 아마 봄비가 한번 지나가고 나면 푸른빛이 더욱 확연해 질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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