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앞에 설 때면
내 마음은 항상 이중적이야.
우선 난 네 앞에 설 때면
네 눈 속을 모두 나로 가득 채우고 싶어.
하지만 네 눈을 나로 가득 채우면
넌 처음엔 나를 눈 속에 담고 행복해할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생각이 달라질거야.
아마도 서로 눈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좋아죽는
그 짧은 시기가 지나고 나면
넌 내가 네 눈을 가득채우고 있으면
내가 앞을 가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할 거야.
나도 알고 있어.
내 등뒤로 종종 구름이 좋은 날이 있고,
석양이 곱게 물드는 날이 있다는 것을.
나는 네 눈 속을 나로 채우고 싶은 한편으로
내 등뒤의 그 아름다운 세상을 가리고 싶질 않아.
그렇게 네 앞에 설 때면
나는 항상 이중적이야.
네 눈 속의 세상, 그 모두가 되고 싶은 한편으로
또 내 등뒤로 펼쳐지는 세상을 가리고 싶질 않아.
나도 잘알고 있어.
그 두 욕망이 서로 같은 자리에 동시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어떨 때는 네 앞을 모두 가릴 수밖에 없고,
그렇게 네 앞을 가린 내가 내 스스로 못견디게 싫다면
네 앞을 비켜주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하지만 내가 꿈꾼 건 그건 아냐.
나는 네 앞에 서서 너를 마주하면서
동시에 내 등뒤도 보여주고 싶었어.
난 오랫 동안 그 이루어질 수 없는 불치의 욕망 속에서 살았어.
그런데 오랫 동안 그 욕망 속에서 부대끼며 뒹굴다 보니
어느 날부터 내 몸에 구멍이 하나둘 뚫리기 시작했어.
그리고 어느 날 난 드디어 구멍으로 이루어진 인간이 되어 있었어.
오, 오해하지마.
그렇다고 내가 심각한 골다공증 환자는 아니야.
난 다른 건 다 버렸어도 뼈대하나 만큼은 착실하게 챙겼다구.
뼈대만 남았지만 그러나 난 내 불치의 욕망을 드디어 이룩했어.
하지만 고백컨데 내 욕망은 아직도 이중적이야.
그래서 네 눈속을 나로 채우고 싶은 욕망이 강한 날엔
구멍이 좀 촘촘해지고,
구름이 좋은 내 등뒤의 하늘을 네게 보여주고 싶을 땐
거의 몸 전체가 모두 구멍이 되다 시피해.
동시에 같은 자리에 설 수 없는 두 가지의 욕망을 꿈꾼 나는
그 욕망의 끝에서 드디어 이렇게 구멍으로 이루어진 인간이 되었어.
6 thoughts on “구멍으로 이루어진 인간”
뺄 거 다 빼니까 더 자유로워 보입니다.
뼈까지 다 빼면 이제 도사가 되는 일만 남았습니다.
뱃살도 못 빼고 있는 1인은 참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완벽 다이어트의 표상이 투명인간이란 소리는 들어보았습니다.
내 욕망의 모든것을 그냥 ‘슝슝’ 통과해 버리리다…
욕망을 체우기보다 더 어려운것이 ‘패쑤~’하기 인듯하지요~ ^^
그래도 뼈대는 그대로 유지한 것을 보면 다 버린 것은 아닌 것 같어요. 다 버리기는 아무래도 어렵죠.
덩실덩실 춤을 추는 모습 같아요.
바람을 담을 수 있는 몸이면 참 자유로울텐데요…
너무 멋진 생각이네요.
바람을 담을 수 있는 몸이라니…
가서 몸에 바람을 담은 사람을 다시 찍어와야 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