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가끔 그곳의 의자에 앉아 그대를 기다리겠어요.
진한 초록빛이 칠해진 철제 의자죠.
의자의 색으로 보면 한창 때의 여름이지만
그곳의 의자는 언제나 가을 위에 놓여있어요.
그곳에선 한해내내 발밑으로 갈잎이 밟히거든요.
5월에 찾았더니 벌써 주변으로 온통 초록이 밀려와
그곳의 가을을 섬처럼 둘러싸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어디나 할 것 없이 초록을 채우는 봄과 여름도
갈잎을 깔아둔 그곳의 가을은 넘보는 법이 없어요.
그곳에선 공원의 여기저기에 널렸던 가을을 모두 거두어
그곳에 모아 두는 듯 보였어요.
의자는 그대가 오는 길목에서 등을 돌리고 있어요.
아마도 다른 곳이라면 나는
자주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을 거예요.
등뒤로 올 그대가 궁금하기 이를데 없으니까요.
하지만 가을 위에 의자를 놓아둔 그곳이라면
그럴 필요가 없어요.
내가 그곳의 가을을 좋아하는 것은
순전히 갈잎이 밟히는 소리 때문이예요.
그대가 밟으면
아무리 발끝을 조심해도
그대는 자신을 숨길 수가 없죠.
갈잎은 바스락대면서 알려줄 거예요.
그대가 온다는 것을.
아니면, 갈잎들은 날 놀려먹을지도 몰라요.
바스락 소리로 내 귀를 세우며 아무 사람이나 하나 슬쩍 데려와선
엉뚱한 얼굴을 내밀며 나를 놀리는 거죠.
그럼 그때부터 그 사람이 끌고 가는 발끝에서 바스락 소리로 일어난 갈잎은
헛물켠 나를 보고 웃음을 참지못해 킥킥댈 거예요.
하지만 난 개의치 않아요.
나는 가끔 그곳의 의자에서
그대를 기다리겠어요.
그곳은 언제나 눈으로 맞던 그대를
바짝 귀를 세워 마중나가는 자리예요.
나는 소리에 가슴이 뛰고, 귀가 일어서는,
가을의 섬, 그 한 귀퉁이에 앉아
가을을 밟고 오는 그대를 기다리겠어요.
귀를 가득 채우며 등뒤로 와서
내 곁으로 앉는 그대를 기다리겠어요.
앞을 보고 있으면서도 온통 뒤로 쏠려가는 기다림으로
그 의자에 앉아 그대를 기다리겠어요.
4 thoughts on “가을 위에 놓인 의자”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건 참 행복한 일입니다.
기다리다 망부석이 된다 한들 변치않고 그 자리에 있으니까요.
그러면 기다림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공간의 문제가 되니까요.
그것참 멋진 생각인 걸요.
기다림의 시간이 아니라 기다림의 공간을 하나 만들어놓고… 가끔 그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말예요. 사진찍을 때 기다리기에 적당한 공간을 눈여겨 봐야 겠어요.
기다림은 희망을 갖게 하지요.
언젠가는 꼭 올 것이라는 희망의 빛깔, 초록 의자네요.
초록이 한창인데… 여긴 항상 이렇게 가을 낙옆이 깔려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색깔의 대비가 아주 좋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