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자금성

Photo by Kim Dong Won


가끔 어머니 때문에 웃는다.

오래된 기억 속의 일이다.
함께 텔레비젼을 보고 있는데 화면에 아프리카 사람들이 나왔다.
내가 한마디 했다.
“어이구, 저 녀석들 말이야, 게을러 터져 가지고.
씻지를 않아 가지고 매일 시커멓다니까.”
옆에 계시던 어머니, 이렇게 받으신다.
“아니, 그런 거냐?
난 원래 시커먼줄 알았다.”
우리는 모두 뒤로 넘어갔다.
막내 딸이 한마디 했다.
“엄마는 좌우지간 오빠 얘기라면 뭐든 믿는다니까.
오빠는 엄마 앞에서 실없는 소리좀 하지마.”
맏딸도 한마디 했다.
“야, 오빠 얘기가 저러다 가끔 맞는 얘기가 있다니까.
아주 헷갈려.”

근래의 일이다.
식탁에서 짜장면 얘기를 꺼냈다.
짜장면의 춘장이 사실 우리의 된장과 거의 똑같은 것인데
캬라멜 녹인 것을 넣어서 색이 검게 되었다는 얘기였다.
그러자 어머니가 중국 여행 갔을 때
천안문 광장 뒤쪽에서 엄청나게 큰 중국집을 보았다고 하신다.
그런데 그 중국집 이름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밥 드시고 마루로 가시던 어머니,
드디어 그 중국집 이름을 기억해 내셨다.
몸을 돌리더니 이렇게 말씀하신다.
“얘, 생각났다, 그 중국집.
그게 자금성이다, 자금성.”
그녀와 나는 허리 끊어지는 줄 알았다.
내가 알려주었다.
“엄마, 그건 중국집이 아니고
중국의 황제가 살던 궁궐이야.”
어머니는 또 말씀하신다.
“나도 그런 설명이야 들었지.
그런데 우리 동네에 자금성이라고 중국집 있지 않냐?”
어머니는 이름 하나로
우리 동네 중국집 자금성과 중국 천안문 광장의 자금성을
모두 중국집으로 꿰어 버리는 신공을 가지셨다.

생각해보니 우리 딸도 어렸을 적 그런 적이 있었다.
그녀의 친정에 갔다가 오는데
갑자기 딸이 이제 집에 다왔다고 하는 것이었다.
아직 집은 한참 먼 곳이었다.
그래서 왜 집에 다왔다고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딸은 이렇게 말했다.
“주택은행 나왔잖아.”
딸은 어렸을 적엔 서울의 모든 주택은행을
우리 집 근처로 가져다 놓는 놀라운 신공을 갖고 있었다.

어머니와 딸은 막상막하이다.
딸은 자라면서 그 신공을 잃었는데
이름으로 모든 것을 꿰어 버리는 그 신공,
어머니는 여전하시다.
간만에 어머니 때문에
허리가 끊어지도록 웃었다.

8 thoughts on “어머니의 자금성

  1. 전에 블로그에서 올렸던 글 찾아읽고 다시 실실 웃다가 좀 길지만 붙입니다.

    작은 강새가 걱정스런 얼굴로 안 좋은 소식이 있다며 나를 안방으로 끌고간다
    딸 : 역사셤을 봤는데 1개 맞았어. 난 역사에 소질이 없어
    나 : 역사에 소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고
    외운 사람과 안외운 사람이 있는거야

    ‘백제문화의 특성을 쓰시오’에서
    부.온.섬. 하고 힌트를 주셨는데 ‘부드럽고 온화하고 섬세하다’가 정답인데
    난 ‘부드럽고 온화하고 섬섬하다’라고 쓸 수밖에 없었어

    그리고, 무슨 지명을 쓰는 건데 중국집 이름과 비슷하다고해서
    ‘동보성’이라고 썼어(동보성은 우리 아파트 상가에 있는 중국집 이름이다)
    꽈당~! 모두 몇 문제였니?
    20문제
    끄응~~!

    담날 아그덜이 셤을 너무 못봐서 다시 재시험을 보기로 했단다
    그래서 물었더니
    중국집이름과 비슷한 지명은 ‘청해진’이란다
    나 : 차라리 ‘장순루’를 쓰지그랬니(광장동 일대에서 무쟈게 유명한 중국집이다)
    날 째려보며 자기는 확신에 차서 썼단다
    중국에 동보성이란 이름이 있으니 중국집에서 이름을 붙였을거 아니냐며….
    그렇지 북경반점이 그냥 붙여졌겠어…ㅋㅋ

  2. 난 아직도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
    뭐, 어머니 앞에서 대놓고 웃을 수도 없어서 참느라 죽는 줄 알았다.
    우리 자금성에서 짜장면 시켜먹자~^^

    1. 저는 아직 그 중국집은 구경을 못했지 뭡니까.
      나중에 갔다올 기회가 있으면 어머니께 그 중국집이 크긴 크데하고 말해드리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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