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계단에 푸른 풀을 그려놓았다.
그 풀밭 위에 파랑새와 노랑새도 그려놓았다.
계단의 풀은 사시사철 푸르지만 더이상 자라진 않았다.
계단의 새는 언제나 날개를 펴고 있었지만
한번도 날아오르질 않았다.
새는 계단에 그려진 뒤로 그곳에 붙박혀 버렸다.
한 여자가 그 계단을 올라간다.
아마도 이 동네에 사는 여자인가 보다.
걸음은 느리다.
여자는 천천히 계단을 오른다.
시간은 저녁으로 저물고
저녁해는 집들의 처마 그림자를 동쪽으로 눕히며
점점 기울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거의 계단을 다 올랐을 즈음,
계단의 새가 그녀에게 속삭인다.
“천천히 계단을 오르는 당신,
계단을 따라 집으로 걷고 있다고 생각하는 당신,
걷는 걸음이 오늘따라 무겁다고 생각하는 당신,
당신은 걷고 있는게 아니라
사실은 매일매일 천천히 이 곳을 날아오르고 있는 거예요.
이곳을 오를 때마다 당신의 발은 사실은 발이 아니라 당신의 날개예요.
거짓말 말라구요?
아니예요.
우리를 봐요.
우리가 날고 있잖아요.
우리랑 같이 날고 있는 걸 보면
당신은 발의 날개로 우리와 함께 날고 있는 게 분명한 거예요.”
그녀가 새와 함께 발의 날개로 천천히 날아 계단 너머로 사라졌다.
조금 더 내려와서 보니
계단엔 하얀 새도 있었고, 분홍새도 있었다.
눈길을 잡아 끈 것은 분홍새였다.
아마도 처음엔 머리를 온전히 가진 새였을 터인데
계단이 망가져 수리를 하면서
분홍새는 머리와 한쪽 날개를 잃었다.
남은 것은 이제 다른 한쪽 날개와 꼬리.
그렇지만 머리를 잃었어도 분홍새의 날개는 여전했다.
아무도 없는 그 골목의 계단에서 분홍새가 속삭였다.
“다리를 잃었다고 팔을 잃었다고 절망하지 말아요.
그래도 당신들은 여전히 날 수 있어요.
거짓말 같다구요?
나를 보세요.
난 머리를 잃고도 여전히 이렇게 이 계단을 날고 있어요.
당신들의 남은 팔, 남은 다리는 이제 모두 날개가 될 거예요.”
머리를 잃고 날개만 남은 분홍새가
남은 꼬리와 날개를 모두 날개 삼아 쭉 펴더니 계단을 흔들었다.
작은 바람 하나가 일더니 순식간에 계단을 쓸며 위로 달음질 쳐 올라갔다.
저녁 해가 기울며 그림자를 골목으로 길게 눕히는 계단 위로
푸른 하늘이 보였다.
바람을 따라
우우, 어지럽게 얽힌 전선줄들이
푸른 하늘로 달려가고 있었다.
9 thoughts on “새와 계단”
이런 상상력으로 살아가시면
잡수고 싶은 것도 많으실것 같아요..ㅋ
계단에서의 새의 비상…을 꿈꾸시니 멋지시네요
또 전기줄 위로 보이는 골목길의 푸른 하늘이 인상적이에요~!
같이사는 그녀가 그러긴 했어요.
참, 이런 상상력이라니… 어딜가나 심심하진 않겠다.
그런데 이날 사진찍는데 좀 아쉬운 건 많았어요.
공간이 협소하니까 자리잡는게 쉽지를 않아서
생각대로 사진이 잘 안나오더라구요.
다시 가보고 싶은 동네예요.
베더랑 지난 봄에 요기 갈라고 나섰다가
결국 못찾고 성벽만 둘러보고 왔습니다.ㅎㅎ
대학로가 하도 많이 변해서… 어딘지 알려주기도 힘든거 같어요.
옛날 마로니에 다방 뒤쪽으로 올라가서 동대문쪽으로 가다가 내려오면 되는 거 같아요. 좌우지간 대학로에서 산쪽으로 무조건 올라가면 어디나 사진찍을만 했어요.
예쁘고 늘씬한 모델 한명 데리고 가봤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아주 현대적인 이미지의 여자를 그곳에 세워놓으면 어떤 느낌이 들까 많이 궁금하더라구요.
서울 풍경 같지가 않습니다.
날개가 없이도 날 수 있는 동네가 있었네요.
치마 입고 날 때는 조심해야겠습니다.
언제 한번 가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다가 올해 드디어 가게 되었는데 상당히 놀랐습니다. 뭔 서울에 이런 동네가 다 있나 싶었습니다. 서울에선 참 사진찍기가 힘든데 어디에 카메라를 들이대도 사진이 나오더군요. 밤에 다시 한번 가보려구요. 밤엔 사진찍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그게 걱정이긴 합니다만.
한 편의 사진 동화를 읽습니다.
잘 계시죠.
사진 올려야 하는데 워낙 많이 찍는 바람에 중간까지 정리해놓고는 이번 달 일을 하고 있어요.
언제 한번 이 동네 놀러가죠.
서울인데도 어디나 카메라를 들이대도 사진이 되는 동네는 처음이었어요.
낙산 나들이, 좋죠.
강화도 갔다오는 시간이면
낙산에서 혜화동-성북동 나들이도 할 수 있을 것 같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