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여행의 목적을
연꽃으로만 잡은 적도 있었으니
연꽃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것 같다.
연이 꽃이나 잎, 뿌리, 열매까지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던데
사진을 찍을 때도 그 점은 마찬가지였다.
잎이나 꽃, 가리지 않고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여행의 흔적을 살펴보다 보니 꽤 오랫동안 연꽃과 함께 해왔다.
모아서 연꽃 여행에 나서본다.
초록의 파도가 이는 바닷가가 있다.
그 바닷가에 초록 파도에 실려
연꽃 한송이 밀려왔다.
속은 열어보지 않았다.
때로 스스로 속을 열어 보여줄 때까지
기다려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니까.
오, 건너가고 싶어.
푸른 연잎을 징검다리처럼 밟고.
욕심과 아집으로 가득찬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으면
훌훌 바람처럼 연잎을 딛고
가볍게 저 곳으로 건너갈 수 있을까.
가시연은 아픔을 딛고 핀다.
낮엔 아픔이 심한지 꽃을 닫고 종일 그 아픔을 견딘다.
아픔이 많이 가라앉은 이른 아침에만
잠시 꽃을 열어 놓는다.
연잎은 항상 뿌리를 닻삼아 물속으로 내리고
거의 같은 자리를 지키며 흔들릴 뿐이다.
그러나 가끔 잎을 말아 배를 만들고
잔잔한 수면에 띄운 뒤 뱃놀이를 즐기기도 한다.
배엔 종종 물방울 손님들이 타곤 한다.
물방울 손님은 동그랗게 뜬 눈만 눈에 들어오는
아주 심성이 맑은 손님이다.
잉어들아 어디가니?
–연꽃이 피어서 꽃구경가요!
연꽃은 꽃이 아니라
분홍의 춤이다.
난 너무 아름다운 것은 싫어한다.
너무 아름다우면 말을 잃기 때문이다.
가끔 난 연꽃 앞에서 말을 잃는다.
사진찍는 것도 잊은채
그냥 잠시 그 앞에서 멍하니 서 있곤 한다.
그런 순간이 자주 오진 않는다.
연꽃의 색은 맑다.
노란색일 경우에는 노란색이 맑고
분홍색일 경우에는 분홍색이 맑다.
색을 정화하여 내놓는 꽃임에 분명하다.
난 네가 내 눈앞에 섰을 때
한눈에 알 수 있었어.
네가 그냥 노랑어리연이 아니란 것을.
넌 네 사랑을 징검다리 삼아
그걸 딛고 내게로 온 노란 사랑이었지.
난 물위에 남아있는
너의 푸른 발자국을 보고
한눈에 알 수 있었어.
내게로 오는 네 마음에 수줍음과 주저함이 있었는지
네 발자국은 어지러웠지만
결국 너는 내 앞으로와 그 노란 꽃을 내밀었지.
네 속에 혹시 빛이 담긴 거 아니니?
잎술을 벗기면
빛이 요정들처럼 튀어나오는 거 아니니?
어떤 사람들은 우담바라라 부르고
어떤 사람들은 널 풀잠자리알이라 부르더구나.
그치만 연꽃에 핀 너는 우담바라라 불러주고 싶더구나.
연꽃이 피워올린 분홍의 불꽃은
비가 와도 꺼지지 않는다.
연꽃이 보여준다.
분홍빛 춤사위를.
내 카메라가 아니라
그녀의 카메라 펜탁스 K100D로 찍었다.
이 날 카메라 두 대 들고 나갔는데
DSLR 두 대를 둘러매고 다녔더니
정말 뽀대나기는 나더라.
펜탁스가 확실히 니콘보다 색의 대조가 강하다.
한때 연꽃이 가득했던 자리.
그러나 꽃은 이제 아득한 기억이 되버린 자리.
그 자리에서 알게 되었다.
연꽃의 추억은 짙은 갈색이다.
연꽃을 만나려면 다 때가 있다.
때를 놓치면 꽃은 볼 수가 없다.
그러나 때를 놓친 당신,
꽃대신 초록의 아우성이 맞아준다.
바람이라도 한번 불면 그 환영이 갑자기 하늘을 찌른다.
넌 아래로 비친 내 그림자,
그리고 넌 위로 비친 내 그림자.
그물 저 편에 연꽃이 있다.
시선은 그까짓 성긴 그물코쯤이야
바람처럼 거칠 것 없이 뚫고 나가
연꽃에 닿을 듯한데
그 가는 그물코에 그대로 걸리고 만다.
사람들은 연꽃의 주인이
그물 뒤로 연꽃을 가두어 두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뭘 모르는 생각.
그물에 걸린 시선을 걷어내
옆으로 들고 가보면
그곳에 연꽃으로 가는 길이 있다.
연꽃을 가꾼 연화산방의 아저씨는
꽃 옆에 일일이 이름을 적어 작은 표식을 꽂아놓았다.
혹시 자신이 없을 때 연꽃 구경하는 사람들이
꽃의 이름을 몰라 답답해 할까봐이다.
그물은 여기저기 마구 짓밟지 말고
길로 오라는 길안내이지
시선을 막고 꽃을 가두어두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의 마음에 그물을 치고는
그 그물이 마치 바깥에 쳐져 있는 것인양
바깥의 그물만 탓한다.
10 thoughts on “연꽃 여행”
따님은 지금쯤 열심히 학업에 매진하고 계시겠군요.
저는 통 집중을 못하고 있네요..
어쩔려고.. 에효.
연꽃 사진 참 이쁘네요. 동원님은 참 못하는 게 없으셔서 부러워요.
무슨 말씀을요.
운전을 못해요.
돈도 잘 못벌고.
딸은 공부는 안하고 일본 아덜하고 어울려 노는데 정신을 팔고 있는 듯 합니다. 여전히 우리의 굳건한 믿음 속에 말이죠.
집중이 안되는 건 이해가 갑니다. 원래 혼자일 때는 혼자인데 둘이 하나가 되고 난 뒤엔 함께 하는 사람이 옆에 없으면 반쪽이 됩니다. 그 빈자리로 논문으로 채우겠다는 일념으로 마무리하셔야죠. 머리띠 매고 하셔도 됩니다.
그물 저편에 연꽃이 있다는 것- 마음에 닿는 귀절..
동원님의 글과 사진들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가끔 제가 씨를 뿌리고 날려드리기도 합니다.
일일이 .. 허락도 없이..
괜찮으시죠?
동원님의 예쁜 따님 잘지내고 있겠죠?
여름방학에 만나시리라.
저에겐 고마운 일이죠.
딸이 많이 보고 싶어요.
메신저로 거의 매일 안부는 묻고 살고 있습니다.
가시연꽃을 보면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슬그머니 동정심이 일어나데요.
누가 그랬나 모르지만 오죽했으면 가시를 돋았을까 하며 측은해 지기도 합니다.
겁나게 뜨거운 연꽃의 계절이 다가오네요.
가시연은 거의 해뜨기 전에 나가야 꽃이 핀 모습을 찍을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아직 한번도 활짝 핀 가시연은 보질 못했어요. 올해는 인연이 닿을까 모르겠네요.
그러고 보니 제가 연꽃을 제대로 보기 시작한 게 두물머리가 아니라
이 공간이네요.
슬며시 왔다 가던 시절에 연꽃시리즈 보면서 감탄 했었거든요.
한창일 때의 꽃잎은 정말 환상적이 색깔이네요.
참, 고려산 사진 한 장 말도 없이 가져가서 지금 작업중이예요. 미리 말씀 드렸어야 하는건데…
경주 안압지를 빼면 규모 큰데는 대충 다 가본 듯 싶어요.
개인들이 가꾸는 작은 연못의 연꽃들이 더 예쁠 때가 많은데 그런 곳은 재수가 좋아야 볼 수 있는지라 몇 곳을 줏어듣긴 했는데 가보지는 못했어요.
다음 달 중순쯤이면 또 연꽃의 계절이 시작되겠네요.
그림이 될 수 있으면 그건 제 사진의 영광이죠.
마지막 글말 참 와닿게 좋은데요!
정말 그러게요 ㅎ
연꽃 잔뜩 좋아하셔서 찍어서 그런지,
사진 또한 그 마음에 화답을 하네요 ♥.♥
연꽃 사진은 무더위 속에서 그 햇볕을 다 받고 다니며 찍은 사진들이라 느낌이 좀 남다른 것 같기도 해요.